찌까랑 싱아라자 거리 Jalan Singaraja Lippo Cikarang
한식당에서 한 잔 하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나가 보니 지역 순찰대원들이 한국인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국인은 못해도 50대 후반은 되어 보였고, 술에 잔뜩 취해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큰 소리 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혀가 꼬였다.


근처에 마침 오다가다 안면이 있는 싱아라자 거리 담당 경비원이 있길레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오가다 눈인사만 했던 친분이지만 인니인들은 이럴 때 신이 나서 줄줄 말해준다.
한국인이 현지인 여자 - 아마도 야간 업무에 종사하는 - 를 차에 태우고 가려는데, 다른 차가 애매하게 가로막아 주차를 해서 차를 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불가능하지는 않았다고 함)
술에 잔뜩 취한 한국인이 차에서 내려 차 빼라고 소리를 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인니는 차에 연락처 남겨두는 에티켓이 없다. 아니, 그런 에티켓은 한국에만 있을 거다.)
급기야 한국인은 가로막아 주차된 차를 세게 탕탕 내리치고 발로 찼다.
구역 경비원이 와서 제지했지만 소용 없었다.
구역 경비원은 순찰대를 불렀다.

자초지종을 들으며 살펴보니, 한국인 것으로 보이는 차량 안 조수석에 여성 하나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었다.
저런... 오늘 장사는 종치셨군요...
결국 한국인은 순찰 트럭 뒷칸에 태워져 순찰대원들에게 둘러 쌓인 채 어디론가 실려 갔다.
강력 사건은 아니니 아마도 순찰대 본부로 갔을 거다. 심각했으면 경찰서로 인계한다.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중 하나가 인니 경비원들의 위상이다.
한국 같으면 경비원은 만만하게 봐도 되는 을 중의 을 민간인이겠지만, 인니는 다르다.
경비원은 스스로 경찰의 부하 조직이라 인식하고 있는 일종의 '준 치안 조직'이다. (실제로 리뽀 빌리지 구역은 리뽀 그룹 소속 사설 경비대가 순찰을 돌며 치안을 관리한다.)
경비원만 그렇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니겠지만, 문제는 경찰도 경비원을 부하라고 인식하고 있고 시민들도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법적 근거 따위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상호 동의를 함으로써 발생한, 일종의 관습법이다.
심각할 경우 재량에 따라 제압 조치도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뭐 그딴 게 다 있냐 싶겠지만, 한국도 80년대까지만 해도 남편이 아내를 패고, 두집 살림을 해도 잡혀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명백한 범죄라도 모두가 그러려니 동의하면, 그래되 되는 '당연한' 일이 된다.
본 적도 느낀 적도 없는 신도 수많은 사람들이 실재한다고 믿는데, 그에 비하면 그깟 경비원의 치안 권한 따위야 별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