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

인니 최대 명절, 르바란 기간에 귀향한 인니인들은 뭘 할까?

명랑쾌활 2024. 4. 5. 07:26

2024년 르바란 휴일은 4월 7일부터 15일까지다.

7~10일 간의 휴가 기간 동안 귀성길 정체를 뚫고 고향에 가서 친구나 친지를 만나고, 이틀 간의 명절을 지내고, 일터가 있는 도시로 귀경하는 일정인 거야 딱히 한국과 다를 거 없다.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은 정체를 피하기 위해 명절 첫날만 지내고 서둘러 귀경길에 오르기도 하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고향의 가족, 일가친척, 친족과의 유대감은 (한국과 달리) 여전히 두텁다.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 명절 후 떠나야 할 때를 하루 이틀 일주일 미루다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한국과 좀 다르다.

심지어 귀경을 포기하고 고향에 눌러앉는 사람들도 그리 드물지 않다.

대부분 일반 생산직이나 식당 종업원, 막노동꾼 등 힘들고 보람은 적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도시로 돌아가봐야 비좁은 숙소와 각박하고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고향이 편하고 좋을 거다.

그래봐야 어차피 한두달 뭉개다 보면 현실에 밀려 다시 도시로 떠나야겠지만.

초반에야 도시에서 고생하며 돈 벌어다 집에 부쳤던 착한 자식이니 딱하고 대견해서 잘대해주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휴가 기간은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지만, 휴가의 중심인 이틀 간의 명절, 이둘 피뜨리 Idul Fitri 동안엔 그럼 뭘 할까?

제사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모여서 윷놀이 같은 걸 하는 건 아닐텐데.

서민 무슬림 기준으로 보고 겪은 걸 적어본다. (이둘 피뜨리는 이슬람 명절이라, 타 종교 신자들에겐 그냥 연휴다.)

당연히 사람마다 가족마다 각각 다르다.

인니는 다종족인데다, 같은 종족이라도 지역별 문화 차이가 상당히 크다. 그리고 빈부격차도.

 

 

이둘 피뜨리 첫날 동트기 전에 집 인근의 이슬람 사원에 간다.

가족 단위로 같은 색과 디자인의 옷을 맞춰 입는다. 보통 르바란 연휴 시작 전 2~3주 전에 시장에 가서 산다.

같이 못맞출 경우 형태를 전달해 주고 각자 마련한다. 약간 달라도 괜찮다.

강제 사항은 아니라서 형편이 안되거나 취향 상 싫다면 맞춰 입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대부분 그렇게 한다.

경험상 인니인들은 대체적으로 같은 옷을 입어 유대감을 느끼는 걸 선호하는 거 같다.

공장 관리 하던 시절에 직원들 요청 사항 청취하는데, 왜 유니폼이 없냐고 요청하는 경우가 잦았었다.

 

동트는 시간에 맞춰 명절을 축하하는 예배를 한다. (자카르타 지역 기준으로 보통 6시 ~ 6시 반 경)

예배 후에는 '대가족'이 모두 모일 때까지 큰집(집안 가장 웃어른의 집)에 있는다.

먼 곳에 사는 가족 일원이라면 이미 전날부터 큰집에 묵고 있었을테고,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면 자기 동네 사원에서 새벽 예배 후 큰집으로 간다.

음식이 차려져 있고, 먹고 싶은 사람은 아무나 접시 하나에 밥과 명절 음식들을 담아 자유롭게 먹는다.

반드시 둘러 앉아서 먹고 그러지 않는다. 어디 앉아서 먹든, 서양식 파티처럼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기도 한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얘기하는 곳에 음식 담긴 접시를 들고 와서 끼어 앉아, 먹으면서 대화에 동참해도 된다.

둘러 앉은 사람에게 배고프지 않냐면서 가져다 주기도 한다. 보통은 주부들이 챙기지만, 주부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막 시키지 않는다. 기분 상하지 않게 부탁하거나, 남자라도 스스럼 없이 직접 가서 음식을 챙겨 담기도 한다.

 

대가족의 기준은 한국과 비슷하다. 조부모를 중심으로 자식들과 손주들까지다.

가문(?)에 따라 조부모의 형제자매들과 그 가족들까지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 역시 한국과 비슷하다.

 

웃어른 중 종손이 아닌데 특출나게 부유한 사람이 있다면, 그 집으로 다 모이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고위 공직자나 엄청 부잣집일수록 모여드는 친척의 범위가 넓어지는 거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한국과 아주 다른 점은 시댁과 처가는 선후경중의 차별이 전혀 없다는 거다. 완벽히 동등하다.

두 집 다 방문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한 곳만 방문하고 나머지 한 곳은 다른 기회에 따로 찾아 뵙기도 한다.

처가에만 방문할 수 있는 상황에, '원래는 시댁에 방문해야 하는 게 맞지만...'이라는 정서가 저어어언혀 없다.

자기 가문이 더 잘나가고 우위에 있는데 방문하지 않았다고 탐탁치 않아 할 수는 있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 일원들이 하나 둘 모이는 동안, 먼저 온 사람들은 큰집 일대의 이웃집들을 방문한다. 일제히 모여서 가야 하는 규칙은 없다. 자유롭다.

도시 지역이 아닌 이상, 마을은 보통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친족 관계다.

한국과 달리 이름에 성이 없기 때문에 집성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집성촌이나 다름없다.

방문하면 인사와 함께 보통 모혼 마앞 라히르 단 바띤 Mohon maaf lahir dan batin 이라는 말을 건낸다.

'혹시 제가 (지난 1년 간) 잘못된 언행으로 마음 상하게 한 게 있다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모일 사람들이 다 모였다면 성묘를 한다. 아직 안온 가족친지를 기다렸던 건 다 같이 성묘를 하기 위해서다.

묘지는 마을과 멀지 않다. 한국처럼 주거지에서 떨어진 야산 같은 곳이 아니다. 마을 안에 있기도 하다.

인니는 한국에 비해 죽음에 대한 터부가 그리 강하지 않다.

한국식(?) 추모공원처럼  주거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대단위로 조성한 곳도 물론 있는데, 그런 곳은 99% 중국계 인니인들의 장소다.

만약 새벽 예배 때 이미 모일 사람이 다 모였다면, 예배를 마치고 바로 성묘를 하러 가기도 한다. 묘지가 붐비기 때문이다.

큰 묘지 인근은 일대에 하루 종일 교통 정체가 있다.

 

묘에 도착하면 우선 주변 청소를 한다.

준비해온 꽃다발이나 꽃잎, 장미수를 뿌리기도 묘에 뿌리기도 한다. (묘지 입구에 파는 좌판이 있다.)

다 준비되면 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무릎 꿇지 않는다. 적당한 곳에 엉덩이를 붙여 쪼그려 앉는다.

옆 묘지에 참배객이 없다면 그 묘석에 앉기도 한다. 면전에서 대놓고 앉는 게 아니라면 결례가 아니다. 멀리서 봤어도 쫓아와서 화내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그러는 건 아니다. 묘석에 발을 올리거나 이유 없이 밟고 서는 행위는 당연히 무례다. 어디까지나 상황 상 어쩔 수 없어서, 양해를 구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빌리는 거다.

아이들이 장소가 협소해서 성묘 대상인 조상의 묘석에 걸터 앉기도 하는데 어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손주가 증조부모 무릎에 걸터 앉는 정도로 여기는 거 같아 보였다.

코란 구절 암송. 상당히 오래 한다. 5~10분 가량. 딱히 정해진 자세나 행동은 없다.

잘 모르면 앉은채로 정중한 태도만 취해도 된다. 웃거나 떠드는 행동만 자제하면 된다.

참석하지 못한 사람은 영상 통화로 온라인 참석(?)을 하기도 한다.

기도가 끝나면 큰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상황에 따라 바로 떠나기도 하고,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돌아가기도 한다.

 

이제 가족 친목의 시간이다.

배고픈 사람은 또 먹어도 되고,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눠도 된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준다면 이 타이밍이다. 반드시 줘야 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도 용돈 받을 타이밍이라고 기다리는 눈치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통 미성년에게만 주지만, 20대 초중반 미혼에게도 준다. 다 컸는데 왜 주냐고 안받으려고 빼기도 한다.

20대 초반이라도 결혼했으면 주지 않는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줘도 애들이 '저 어른은 왜 안줘?'라고 입내밀고 그러지 않는다. 주면 고맙게 받고 안줘도 (적어도 내가 보기에 겉으로는) 전혀 기대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

용돈 액수는 5백원도 괜찮고, 1~2천원도 괜찮다.

잘 사는 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많이 주겠지), 대체적으로 액수는 매우 적다. 대신 가급적 새 돈을 준다.

봉투에 담아서 주기도 하고, 그냥 주기도 한다. 전혀 상관 없다. 그냥 좀 그럴듯해보일 뿐이다.

초딩이든 고딩이든 액수의 차별은 없다. 애들도 얼마를 받든 매우 기뻐하며 고맙게 받는다.

하지만, 모든 애들이 다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다. 돈 밝히고 되바라진 애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봉투에 2백원부터 1만원까지 각기 액수를 다르게 봉투에 담아 줄을 연결해서, 줄을 뽑는대로 가져가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초딩이 1만원을 뽑고, 고딩이 1천원을 뽑아도 시종일관 화기애애 했다.

적게 뽑았다고 삐지고 그러지 않는다. 에잉~ 하고 아쉬워 하긴 하지만 이내 웃는다. 어쨌든 공돈을 받았으니 좋다는 기색이다.

남과 비교하는 버릇이 없어서, 자기가 적다고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그렇다보니 큰 액수를 뽑았을 때도 기쁨을 감추지 않고 순수하게 드러낸다.

적은 액수 뽑은 사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받은 돈 잘 챙기는 애도 있고, 엄마 주는 애도 있고, 또래들 몰고 가서 길거리 음식 사줘서 탕진하는 애도 있다.

그런 대목을 노리고 장사하는 노점상들도 당연히 문을 열었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행상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다 끝났다.

다른 볼 일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남는 사람은 남는다.

상황에 따라 가족 전체가 인근 유원지에 놀러 가기도 한다. 명절 둘째날에 가기도 한다.

그래서 수영장이나 유원지, 경치 좋은 곳들은 명절이 대목이다.

 

 

한국과 다를 바 없다.

가족애, 조상에 대한 마음, 유대감 다 같다.

한국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느낌이었다.

가부장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큰 잘못을 한 것처럼 강압적으로 꾸짖지 않는다.

 

회사에서 전직원이 모여 간담회를 하는데, 공장장이나 청소원이나 동등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던 광경.

예배가 끝난 후 종교지도자와 같이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중에 종교지도자가 한참 말하는 중에 슬쩍 끼어들어 농담을 곁들여도 아무도 어색해하지 않고 웃음을 터뜨리던 광경.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한국과 그렇지 않은 인니의 차이, 그 뿌리를 본 느낌이다.

어릴 적부터 이런 문화 속에서 자랐으니 인니인들 성향이 그렇게 한국과 달랐던 거다.

 

귀성 행렬&nbsp; &nbsp; <사진 출처 : jurnalislam.com>

 

<사진 출처 : Instagram/rey_mba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