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욕망은 판단력을 흐린다

명랑쾌활 2024. 3. 27. 07:36

어지간한 한국 음식은 수입되는데, 줄줄이 비엔나는 당최 볼 수 없다. (유통기한이 엄청 짧아서 수입할 수 없다는 건 최근에 한국 가서 알았다.)

인니 다른 마트를 가도 이런 저런 햄들이 있는데, 줄줄이 비엔나만 없다.

 

그러다 한인 마트에 이 줄줄이 비엔나가 뙇!!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워서 냉큼 두 봉다리 샀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케찹 볶음을 만들어서 먹었는데... 아 이런 젠장, 어육 소시지다. =_=

맛도 드럽게 없어서 뜯지 않은 한 봉다리는 환불했다.

이미 뜯은 거 남은 것도 버리기 아까워서 냉동실에 뒀지만 당최 손이 안가 결국 버렸다.

 

생선살에 밀가루를 섞어서 만든 걸 소시지라고 한 거야 그런 시절이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줄줄이 비엔나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그 이름을 붙이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라고 하기엔 내 잘못이다.

그동안 없었던 것이 있으면 왜 있을까 의심부터 했어야 했다.

찬찬히 살펴 봤으면 제품명 상단 사작에 쓰인 '알찬 어육'이라던가, 잘 보이는 곳에 하필 외국어로 쓰여진 '피시 케잌'이라거나, 한자 '고기 어'자라거나, 불어로 '쁘아종'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을 거다.

외국에서는 한 시라도 방심해서는 안되는데, 욕망에 눈이 멀어 판단력이 흐려졌다.

그리고 그 방심 때문에 자본주의 악당에게  피 같은 돈 1만 원을 헌납했다. (어육 소시지를 같은 무게의 스팸 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았으니 악당 소리 들어도 싸다.)

 

보름 후, 한인 마트에 이번엔 벽돌 같은 모양의 스모크 김밤햄 제품이 눈에 뜨였다.

후훗, 이젠 방심 안하지.

잘 살펴보니 어육 맞다. 줄줄이 비엔나와 같은 상표다. 이제 저 상표는 믿고 거른다.

 

그 후로도 두 어육 소시지 형제는 한 반 년 정도 진열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사라졌다.

몇 개 팔린 건 평일엔 의무적으로 공장 내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현지인 가정부가 장 봐다가 해주는대로 음식 먹어야 하는 어느 한국 업체 한국인 직원들 뱃속으로 들어갔을 거다.

가정부들이 한국 음식 곧잘 하긴 하는데, 식재료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한글 이해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 모양만 비슷하면 그냥 담았을 가능성이 높다.

...어!?!? 제조 업체가 혹시 그걸 노리고?? 동남아 지역이 마케팅 타겟이던데... 똑똑한 걸!?!?!?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