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

[인니 국제 결혼 과정] 5. KUA 혼인 신고 접수

명랑쾌활 2023. 6. 9. 09:56

KUA는 동/읍마다 있습니다. 이정도면 아주 훌륭한 겁니다.

 

외진 곳이지만 이정도만 해도 양호합니다.

 

일반 주택이었던 곳도 많습니다. 저랑 연관된 곳도 여기와 비슷했습니다.

 

아예 간판도 없고, 차 한대 꽉 차는 골목길 안쪽에 있기도 합니다. 제정 지원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서류 준비 다했으면 접수하면 되는데 뭘 또 접수만 갖고 챕터를 따로 쓰느냐 하시겠습니다만...

이전 챕터에 얹기엔 좀 애매해서 분리했습니다. 분리할만 하고요.

 

인니 관공서 일을 보다 보면, 비합리적이고 답답한 일을 겪는 건 그리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만, KUA(종교청)는 한 차원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관공서가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라서 문제인데, 근본적으로 보수적이고 권위적일 수 밖에 없는 종교까지 합쳐지니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작 한 번 겪은 걸 일반화 하는 거라 속단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KUA는 동네마다 있으니, 어딘가 소탈하고 양심적인 곳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아니었지만요. ㅋㅋ

권위주의 싫어하고 인권에 민감한 사람은 종교+관청 상대할 때 멘탈 단단히 준비해야 합니다.

 

인니는 행정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혼인 신고에 대해 권위적입니다.

다시 말해 혼인 신고를 받아 처리하는 입장이 아니라, 혼인 신고를 허가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혼인 '신고'라지만,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나 다름 없습니다.

KUA 역시 혼인 신고를 받아서 처리하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조건에 충족하는 예비 부부에게 (황송하게도) 혼인을 허락해주는 권력 기관인 거 같습니다.

 

제출하는 증명 사진의 배경색이 청색이어야 한다는 것도 좀 웃깁니다.

한국의 증명 사진 배경은 거의 대부분 흰색이 기본인 것처럼, 인니는 빨간색이 기본인데 유독 KUA만 다르더군요.

인니 정부 하위 기관이 아니라는 차별화 전략, 뭐 그런 걸까요?

더 대단한 건, 관할 지역에 따라 요구하는 청색의 채도가 약간씩 달라서, 차이가 많이 나면 퇴짜 놓기도 한답니다. ㅋㅋ

 

이전 챕터에서 적었다시피, KUA가 혼인 신고를 처리해주는 데 있어서 혼인 예식을 치뤄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식 없이 신고만 한다는 선택권은 없습니다.

집이든, 호텔이든, 레스토랑이든, 축구장이든, 어쨌든 알아서 구해야 합니다.

KUA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예식을 치르는 장소를 제공해준다는 궁리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예식을 치르면 KUA 종교 지도자가 내방하셔서, 예식을 진행하는지를 '검열'하시는 겁니다.

문제가 없으면 의식을 주관하고, 부꾸 니까(혼인 증명서)를 그 자리에서 싸인 뽝 해서 하사하십니다.

귀하신 몸이 내방하셨으니, 당연히 황송함의 표시를 드려야 하고요.

 

저 같은 경우 장인 되실 분이 서류 제출하려고 KUA 지부에 방문했습니다.

근데 KUA 직원이 제 부모님 주민번호가 없어서 접수를 못받는다네요. (전 ITAS를 받은 체류자라 대체번호가 있습니다.)

아니, 씨발 한국 사는 한국 사람이 인니 주민번호가 어딨어... 진짜 욕나오데요. ㅋㅋ

지부장하고 얘기해 보겠다고 하니까, 자리에 없고 언제 올지 모른댑니다.

장인 되실 분이 20만 루피아 찔러주니까 접수 받아줬댑니다.

지도 말도 안되는 거 알면서도 돈 뜯으려 트집 잡은 거겠죠. 종교청 직원이 종교팔이를 하는 겁니다. ㅋㅋㅋ

안된다는 게 돈 주면 되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인니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서류 접수한지 사흘 후 지부장에게서 장인에게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증명 사진 1장씩 더 필요하고, 관할 경찰서 등록증도 요구했답니다.

아니, 종교청 일에 경찰서 서류가 왜 필요해, 문제가 있으면 신이 천벌을 내리겠지. 씨부엉 ㅋㅋㅋㅋㅋㅋ

자초지종을 알아봤더니, 다른 KUA에서 뇌물을 요구했던 사건이 언론에 크게 터져서 그렇다네요.

몸사리느라 필요하지도 않은 서류를 달라는 겁니다. 내가 이런 노력까지 했다... 뭐 이런 거겠죠.

애초에 행정은 '서비스'가 아니라 '주민 통제'라고 인식하니까 민원인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뭐가 아쉬워서 이 꼬라지를 감내하면서까지 혼인 신고를 해야 하냐 싶더군요.

무슨 미국 서부시대 흑인 노예나 조선시대 노비라도 된 것 같은 모멸감이 들었습니다.

이만하면 맷집 키울만큼 키웠다 싶을 때마다 한 차원 높은 싸다구를 날려주는 인니 생활입니다.

한편으론, 앞으로도 최소 30년은 인니에 따라잡힐 걱정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