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인니 음식(Makanan)

10년 간 먹어 본 인니 라면들 중 Best 4

명랑쾌활 2020. 9. 16. 09:22

어느덧 인니에서 산지 10여 년입니다.

제가 갓 인니에 왔을 당시 이미 인니 10년 차, 20년 차였던 분들에 비하면 별 거 아니지만, 그래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차 정도면 그래도 인니에 대해 아주 쬐끔이나마 명함이나마 내밀 만큼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식에 대한 욕망이나 호기심보다는 게으름이 큰 탓에 이런 저런 요리를 먹어본 경험은 다채롭지 않습니다.

아니면 미식에 대한 욕망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라면이라면 10여 년 동안 이것 저것 꽤 먹어 봤고, 가끔 포스팅 하기도 했습니다.

요리는 찾아 가야하고 줄을 설 수도 있지만, 라면은 장보러 간 김에 새로운 거 눈에 뜨이면 사오면 그만이니까요.


그동안 먹어 본 인니 라면들 중 가장 맛있는 라면을 꼽아 봤습니다.

1. 기존 한국 제품들 중에는 없는 독자적인 맛이면서도

2. 한국인 입맛에 거부감 없이 잘 맞고

3. 가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찾게 되는

세 가지 조건에 충족하는 제품을 선정했는데, 네 제품이 선정됐네요.

굳이 Best 3나 Best 5로 맞출 이유가 없으니, 선정한대로 Best 4로 갑니다.


재미있는 건, 아래 소개할 라면들 중 미 고렝을 제외한 나머지 라면들은 인니의 수많은 라면들 중에도 맛이 유사한 제품이 없는 독특한 것들입니다.(제 주변 현지들에게 듣기로도 없다고 하네요.)

심지어 있는지도 모르는 현지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일단 제품을 아는 사람들 치고 맛이 이상하다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종종 저처럼 최고로 꼽는 현지인도 있는데, 외국인이 어떻게 그 제품을 아냐고 신기해 하더군요. ㅋ


1위는 미 아베쩨 Mi ABC 의 셀레라 쁘다스 Selera Pedas 시리즈 매운 토마토 스프 맛 Rasa Sup Tomat Pedas 라면입니다.

닭 육수 베이스에 토마토와 후추 향의 밸런스가 아주 좋습니다.

특히 뒷맛이 아주 깔끔합니다.

아침에 뜨끈한 국물 간단히 먹고 싶을 때면 끓여 먹습니다.

물 따로 끓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찬물에 면, 스프 바로 넣고 한번에 끓여 조리해도 되기 때문에 간편합니다.

면발이 얇아 금방 익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맛 차이 없습니다.

한국 라면은 대부분 120g인데 비해, 70g으로 양의 부담도 없습니다. 

가격은 300원이 채 안됩니다.


2위는 가가 미 Gaga mie 미 게뼁 Mie Gepeng 시리즈 블랙 페퍼 치킨 수프 Soup Chicken Black Pepper 맛 라면입니다.

게뼁 gepeng 은 '납작하다'는 뜻으로, 면발이 납작한 라면입니다.

닭 육수 베이스에 면도 납작해서 후추 잔뜩 뿌린 닭칼국수 맛 약간 비스무리 합니다.

그 후추 향이 이 라면 맛의 중심입니다. 국물도 뽀얗지 않고, 포장지에 나와 있듯 거무스름 합니다.

한국인은 '후추'하면, 고추와는 다른 종류의 강렬한 향, 그래서 음식에 살짝만 뿌려 먹는 후추 가루를 보통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라면은 그 톡 쏘는 매운 맛보다는 후추 특유의 향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깔끔하고 입맛을 돋웁니다.

물론 매운 향도 있긴 하지만, 어지간한 한국인 입맛에 별로 맵다는 느낌은 없을 겁니다.

75g, 300원 이하의 가격 역시 부담 없습니다.

전 아침에 국물 먹고 싶은데 ABC 라면이 좀 물릴 때면 이 라면을 먹습니다.


참고로 이 제품은 볶음 라면 버전도 있습니다만, 그 건 좀 별로입니다.

시원하지 않고 좀 걸쭉해요.


3위는 따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도 미 Indo Mie 의 미 고렝 Mi Goreng 볶음면입니다.

볶음면을 뜻하는 인니어 일반 명사인 Mie Goreng을 거두절미하고 그대로 제품명으로 쓸 정도인 국민 제품이죠.

그냥 MSG가 느껴지는 평범한 짭짤한 맛인데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주로 점심 즈음에 간단히 먹고 싶을 때 가끔 먹습니다.

예전엔 70g짜리 제품 밖에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129g 짜리 Jumbo 제품을 출시해서 한 개로도 한 끼 식사에 충분합니다.

한국 라면보다 양은 더 많으면서도 가격은 300원 조금 넘습니다.

이런 넘사벽 가격이 가능한 건 몇십 년 간 점유율 부동의 1위인 최고 매출의 라면이기 때문일 겁니다.

참고로, 인도 미 미 고렝도 여러 가지 맛들이 있는데, 제 입맛에는 그냥 오리지널 제품이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인도 미는 오리지널 베이스에 다른 맛을 추가하여 밸런스를 잡는 기술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리지널 베이스가 워낙 밸런스가 잘 잡혀서 그럴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리지널 베이스로부터 벗어나질 못하는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4위는 인도 미 Indo Mie 제품 중, 북 술라웨시 지방 특산 Khas Sulawesi Utara 이라는 짜깔랑 면 맛 Rasa Mi Cakalang 라면입니다.

이 라면은 10년 전에 딱 한 번 먹어 봤는데 제 기억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https://choon666.tistory.com/149)

매장에서 취급하질 않아서 이후로 다시 먹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최근 출시한 인니 독립기념일 기념 한정판 세트에 포함되어 다시 먹어 볼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먹었을 때는 새우맛 나는 해물라면 같다고 느꼈는데, 이제 정확히 알겠습니다.

가쯔오부시 국물맛과 유사한 거였네요. (그도 그럴 것이 짜깔랑 Cakalang 은 가다랑어를 뜻합니다. ㅋ)

그렇다고 일본 우동처럼 맑고 깔끔한 국물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맛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거기에 고춧가루가 들어가 매콤하고 감칠맛 팍팍 도는 괜찮은 해물라면입니다.

이 라면을 4위로 꼽은 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구할 수 없으면 소용 없지요.)

그렇지 않다면 능히 1위를 다툴만한 괜찮은 맛입니다.


북 술라웨시 지방은 인니 영토 최북단이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필리핀과 맞닿아 있습니다.

세계 주요 참치 어장 중 하나이며, 낚시로 참치를 잡는 재래식 어업을 하는 어선들이 아직도 조업을 하는 곳입니다.

선원들이 줄줄이 뱃머리에 앉아 낚시대로 가다랑어를 낚아채 돌아보지도 않고 머리 뒤로 넘겨 뒷편 갑판 바닥에 훌쩍 던지는 장면이 해외 토픽 소개하는 한국 TV 프로그램에 단골 소재로 나왔던 그 지역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낚시로 잡히는 참다랑어의 99%는 일본으로 팔려 갑니다.

어떤 한국인이 거래선 터보려고 애를 썼는데, 값 두 배로 쳐준다고 해도 실패했다는 썰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Wikipedia Indonesia>

그렇다 보니, 짜깔랑을 재료로 한 향토 음식이 당연히 있겠지요.

그게 바로 미 짜깔랑 Mie Cakalang 이고, 그 걸 인도 미 회사에서 라면 제품화 한 겁니다.

예전에 북 술라웨시의 주도인 마나도 Manado 에 여행 갔었을 때 먹어보지 못한 게 좀 아쉽네요.

하긴 뭐 부나켄 Bunaken 섬에 고립되었다 나왔으니, 그럴 겨를이 없긴 했지요. (https://choon666.tistory.com/344)

...그 게 벌써 8년 전 일이네요. ㅋㅋ


아, 마나도 특산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건 박쥐 구이입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의 최초 보균원이라 추정되는 그 과일 박쥐 종이 맞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