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소주 수입 정지와 로컬 생산 소주 1

명랑쾌활 2020. 4. 3. 09:40

인니는 참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세속 국가지만, 이슬람이 국교인 옆나라 말레이시아보다 더 이슬람 우선 정책이 강합니다.

문제는 그 이슬람 우선 정책이 매우 세속적인 목적으로 보인다는 거지요.


말레이시아의 주류 수입 규정은 매우 까다롭습니다만, 규정만 준수하면 유통에 문제가 없습니다.

가격도 나름 합리적이고 투명해 보입니다.

마트 판매 가격이 6천원 정도, 식당 판매 가격이 9천원 정도 합니다.

한국의 소주 소매가와 업소 판매가의 차이와 비슷하니 납득할 만 합니다.


인니도 주류 수입 규정이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말레이시아와 달리 규정 외에도 언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렇다보니 가격도 불투명하고 괴상합니다.

마트 판매 가격이 6천원 정도이긴 한데 상품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식당 판매 가격은 1만 2천원 정도인데, 왜 그런지는 모릅니다.

식당 운영을 했던 친구가 했던 말을 토대로 어렴풋이 짐작키로는, 주류 판매 허가를 받으면 별의별 양아치들이 찾아와서 돈을 뜯어가는 부분이 일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양아치들 중에는 지역 이슬람 청년회라느니, 경찰 산하 자경대라느니 요상한 단체 이름을 내미는 놈들도 많고요.

하지만, 그보다는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니는 소주 공급이 들쭉날쭉 합니다.

제 인니 서식 10여년 간 소주 공급이 멈췄던 적이 네 차례 있었습니다.

왜 공급량이 불안정한지는 속시원하게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는 수입 허가에 문제가 있다느니, 또 다른 때는 수입업자가 탈세로 추장됐다느니, 소문으로만 이리저리 떠돕니다.

올해 초 공급 중단이 또 터졌는데, 이번엔 인니 정부의 주류 수입 쿼터 확정이 늦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가격은 비싼데 공급이 불안정하다보니, 당연히 현지 자체 생산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바람>과 <세븐데이>입니다.

바람 관련 포스팅 https://choon666.tistory.com/811

세븐데이 관련 포스팅 https://choon666.tistory.com/1270


최근 또 <참좋은>이라는 로컬 소주가 나왔네요.


떡하니 '코리아 남바완 알콜 소주'라고 써붙이는 패기로 보아, 순수 한국 자본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현지인 수요를 겨냥하지 않았나 싶고요.

한국인이라면 아무리 뻔뻔해도 한국인 상대로 저런 개뻥을 치긴 쉽지 않지요. ㅋㅋ


현지 자체 생산 소주는 인니가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주라는 거 자체가 싼 값에 취하려고 마시는 막술이라 프리미엄 붙이기 애매한 제품이거든요.

대량 생산해서 낮은 이문에 많이 파는 공산품이라, 자체 생산보다는 그냥 수입해서 파는 게 더 낮습니다.

그런데 인니에는 무려 세 종류의 자체 브랜드가 있습니다. ㅎㅎ

제 생각엔 불안정한 수급, 높은 판매가, 그리고 소주가 무슨 대단한 한국의 얼이라도 되는 양 고집하는 한인 구매 수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에 한류 확산으로 소주에 흥미를 느끼는 현지인들의 수요가 늘었다는 점도 한 몫 했고요.



앞서 제가 인니에 서식해온 10여 년 간 네 차례의 소주 공급 정지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전 세 차례의 정지 기간 동안에는 식당에서 밀수 소주를 팔았습니다.

뚜껑 부분에 증지가 붙어 있지 않은 소주를 그냥 내오거나, 주전자에 담아 내왔던 걸 기억합니다.

소주 공급 정지 기간 동안 식당에 갔는데 소주가 없다는 얘기 들었던 건 딱 한 번이었고, 그마저도 다른 식당에 갔더니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밀수가 당연히 이익이 많이 남을텐데,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왜 하필 소주 공급이 정지하면 출현할까요?

그것도 몇몇 수완 좋은 식당에서만 파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식당에 있고요.

그 많은 한국 식당들에 다 공급한다면, 그건 이미 소량의 밀수품을 비밀 거래한 게 아니라 유통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 공급량을 충당한다면 이미 밀수 규모가 아니지요.


소주 공급 정지가 되자 한국에서 밀수로 들여왔다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인니 정부도 바보가 아닌데, 정지 기간 동안 밀수 감시를 더 엄격하게 할 겁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소주 공급 정지에 대비해 오랜 기간 차근차근 밀수품을 모아서 보관했을 가능성도 낮습니다.

취급이 까다롭고, 부피와 무게가 큰 편이라 은닉하기도 어려워 보관 비용이 많이 들 뿐더러, 적발 시 리스크도 높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를 감안했을 때, 인니 국내에서 밀수 소주가 가장 많이 모이고, 보관이나 기밀 유지가 어렵지 않은 곳이 한 군데 있긴 합니다.

세관에 적발된 밀수 소주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설마 밀수 적발물 보관소의 물건들이 시중에 풀릴 리가 있겠어요.

전부 폐기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럴 일은 저어어얼대로 없을 겁니다.

그럼 도대체 그 많은 양의 밀수 소주가 도대체 어디서 풀린 건지 저도 참 궁금합니다. ㅎㅎ


올해 초 네 번째 소주 공급 정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듣기로는 올해 주류 수입 쿼터 미확정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번 상황은 지난 세 차례 상황 때와는 달리 특이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식당에서 밀수 소주를 취급하지 않고, 로컬 소주를 내놓고 있습니다.
참이슬 만이 오로지 진정한 소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대체적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로컬 소주의 존재 때문에 두 세력의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밀수 소주를 취급하는 세력과 한국 식당에서 로컬 소주를 취급하지 못하도록 막은 세력입니다.
뭐 어쩌면 그 두 세력이 같은 곳일 수도 있고요, 최소한 연관이 없을 리는 없겠지요.
재미있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유통권을 쥐고 흔들어도, 식당에 밀수 소주를 들여 놓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잖아요.

이번 공급 정지 상황이 장기화 된다면, 로컬 소주가 한국 식당에 자리 잡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소주 같은 기호품은 자기가 선호하는 맛을 바꾸기 어렵지만, 꾸준히 접하면 점점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요.


*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자신이 늘 마시던 소주가 아닌 다른 소주의 맛에 거부감이 드는 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익숙한 맛과 달라서' 입니다.

다른 소주 마시고 머리가 아팠다며 나쁜 성분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도 완전한 착각입니다.

소주는 그냥 알콜에 물 탄 싸구려 술이고, 첨가하는 원료도 몇 가지 없어요.

맛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물이 다르기 때문이고, 머리가 아픈 건 그냥 거부감 때문입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먹고 속 불편하다고 느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교민들 사이에는 주류 관련하여, 수입 허가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고위 공무원과 그 외 관련 이익 집단의 카르텔이 있다는 음모론이 전설처럼 떠돕니다.

가끔 한 번씩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입 허가를 막히면, 이익 집단들이 성의를 모아 누군가에게 존경의 표시로 전달하고, 그러면 수입 허가가 풀리고 하는 구조라는 얘기죠.

밀수 소주 유통에 관대함을 보여준 누군가에게도 밀수 이익 중에서 일정 부분 떼어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할테고요.

설마 인니 경찰이나 밀수 단속반이 한국 식당들에 밀수 소주 나돌아 다니는 거 몰라서 내비뒀을리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주류 수입이 정지되면 '어느 높으신 분이 나랏일 하시는데 용돈이 궁하신가 보다...'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합니다.

저얼대로 그럴 리가 없는 황당무계한 얘기지만, 마아아아안약에 그 게 사실이라면 그쪽 분들도 로컬 소주 때문에 시름이 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 해결책으로 로컬 소주 업체들에게 모종의 조치가 있을 수도 있겠고요.

불법이든 합법이든 일단 시장이 형성된 분야는 변화에 저항하기 마련이니까요.

아무튼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