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막스 하벨라르> 출판 기념회

명랑쾌활 2020. 3. 9. 09:43

<막스 하벨라르> 한국어 완역본 출판 기념회에 다녀 왔습니다.


한국 문화원은 처음 가보네요.

아니, 한인회가 됐든 뭐가 됐든 재외 교민 어쩌고 하는 단체의 모임 장소에 가본 게 처음입니다.

딱히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교민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동떨어진 곳이지요.


46년생이신 양승윤 교수님을 직접 보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해온 고매한 노(老) 학자의 이미지가 현실화 된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든 허리까지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는 모습에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인사를 하기보다 받는데 익숙해지는 위치에 오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허리가 뻣뻣해지는 게 보통입니다.

딱히 거만해져서가 아닙니다.

원래 인간, 아니 모든 동물에게는 안해도 되는 건 안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거든요.

그 본능을 거스른다는 건, 자신의 위치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 보고 있거나 하는 게 마땅하다고 마음에 깊이 새겼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 몸에 뱄다는 뜻입니다.


양승윤 교수님과 공동 저자인 배동선 작가님이 참석자들에게 손수 책을 나눠주고 계십니다.


책을 나눠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 참석한 사람들이야말로 책을 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인데요.

전 소정의 참가비나 기부금을 드리고, 책을 답례로 받는 식일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배동선 작가님께 들었는데, 양승윤 교수님께서 찾아 오신 분들께 답례로 드리길 원하셨다고 합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으로서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프닝 축하 공연으로 국악 사중주가 있었습니다.

한국 관련 행사들에 자주 나오시는 유명한 분들입니다.


공동 저자이기 때문에 원래는 앉아 계셨어야 하는 배동선 작가님이 부득이 사회르 보셨습니다.

준비 미흡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청중 앞에 서는 일에 워낙 단련이 되신 분이라, 가장 적임자이기도 합니다. ㅎㅎ



르박 Lebak 지역 전통춤 축하 공연도 있었습니다.


르박은 <막스 하벨라르> 이야기의 주무대인 지역입니다.

농업이 대부분인 지역으로 네덜란드 총독부가 있던 자카르타에서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극심한 수탈을 겪은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르박은 인근 지역들에 비해 개발 수준이 낮은 편입니다.


양승윤 교수님의 한 말씀

정통 충청도 스타일의 느릿느릿 나직한 말투가 반가웠습니다.


이후 간단한 질문 답변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남들 앞에 나서서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분들이 몇몇 보이더군요.

이런 저런 교민단체에 명함 걸어두신 분들이 자리를 빛내러 참석하는 비율이 높을테니 뭐 당연하겠지요.

질문한다고 손 들고 일어나서, 책이나 저자와 상관 없는 자기 얘기 실컷 하다가 앉았던 어떤 분은 정말 웃겼습니다.

이 양반 정말 나서는 거 즐기는 사람이구나 싶더군요. ㅋㅋ



브따위 Betawi 족 전통춤 마무리 공연입니다.

브따위족은 자카르타와 그 서부 일대에 주로 분포한 종족입니다.

외국인인 제가 보기엔 순다족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보였는데, 서로 확실히 구분하더군요.



예상했던 대로, 확실히 스스로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임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일반 교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드물고, 어느 정도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 주로 참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을 겁니다.

저에 대해서도 '못보던 얼굴인데 누군데 여기 온 건가' 흘끔흘끔 탐색하는 눈길을 보내는 게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기념회장 바깥에 김밥, 떡 등 간단한 먹거리가 차려져 있는 거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한국인의 그런 폐쇄적 습성에 익숙할 뿐더러, 남들이 날 어떤 선입견으로 속단하든 아무렇지도 않게 된지 오래거든요.

같이 참석했던 여자친구는 마음이 좀 상한 모양입니다.

제가 책에 사인 받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곱게 차려 입은 아줌마 셋이 자기들 자리에 앉겠다고 다과 테이블 옆 긴 의자에 앉아 있던 제 여자친구에게 옆으로 비키라는듯 손사레를 치며 비집고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인니인 주제에 왜 한국 행사에 와서 자리를 떡하니 잡고 앉아 있냐'는 듯한 눈치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에게 '딱히 너를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인니에 와서 운전기사에 가정부 두고 살다 보니 자기 신분이 높다고 착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설명해줬습니다.

교양 떨어지는 인간이 천박한 짓 한 걸로 마음 상해할 필요 없다고 달랬지만, 흘려 넘기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타인의 그릇된 편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기까지 아직 수양이 더 필요하겠지요.

한국에 가면 동남아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인간들이 천지에 널렸을텐데 좀 안쓰럽긴 합니다.

그나마 영어를 원어민 발음으로 유창하게 한다는 게 다행입니다.

한국인들은 영어 잘 하는 사람 앞에서는 행동거지가 조신해지는 습성이 있으니, 영어로 깔아 뭉개면 되겠지요. ㅋㅋ


양승윤 교수님 서명

학형, 혜존, 근정... 크~ 고급지다!

책이나 글에서 본 적은 있지만, 써본 적 없고 받아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네요.

저와 사적으로 가까운 사이인 배동선 작가님께서는 with 라고 심플하게 사인해주셨습니다.



책 내용은 오늘날 인니 문화와 관행의 연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인니 생활 초기에 회사 관리를 하면서, 동네 이장이나 촌장, 관할 경찰, 심지어 통반장까지 보조금이랍시고 뜯어 가는 일을 겪으면서 뭐 이런 날강도 나라가 다 있나 싶었습니다.

군사무소나 읍사무소 같은 지방 행정 관청이 관할 지역 기업체에서 (반강제) 기부금을 받아 행정 비용으로 운영하는 것이 비공식적인 부정 행위가 아니라 정부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행정 지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식겁했었죠.

<막스 하벨라르>에, 네덜란드가 한 줌도 안되는 병력으로 인니를 통제하기 위해 각 지역의 토착 귀족 세력에게 작위를 내려 통치권을 인정해주고, 네덜란드 총독부가 할당한 수탈 물량을 충족하기만 하면 그 외의 수탈은 토착 귀족 몫으로 눈 감아 줬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도 인니 공무원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부패 관행의 근원이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통치 방식에서 비롯된 거였지요.


네덜란드 식민 통치와 독립 전쟁이라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니의 네덜란드에 대한 적대적 정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네덜란드와 결탁했던 토착 귀족들이 아직도 사회 저변을 장악하고 있으니 공론화가 안되는 거겠지요.

독립 후 친일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인니인들의 만성적인 태업 습성도 기나긴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절부터 형성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경험만 가지고 일반화 하긴 무리겠습니다만, 인니인들은 '최대한 일을 조금하면서 받을 만큼만 받으려는' 성향이 강해 보입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지 않느냐 싶겠지만, 인니는 좀 다릅니다.

한국인들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들 중에는 '일 더하고 좀 더 받아 가자' 내지는 '열심히 해서 승진하면 월급 오르겠지'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인니인들은 그런 향상심을 가진 사람이 극히 드뭅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도 많긴 한데 그 게 향상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냥 꾀를 부릴 줄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머리 조금만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편하려고 하고 일 덜 하려는 데에만 머리를 굴려요.

인니도 자본주의가 이미 자리 잡은 나라인데 왜 그럴까 했는데, <막스 하벨라르>를 보니 좀 이해가 갑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네덜란드 총독부 할당량 채우고 남겨 봐야 토착 귀족이 또 쓸어 가는데 열심히 할 의미가 없습니다.

그나마 효율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이 정립된 네덜란드는 할당량을 부과하는 방식을 썼지만, 무식한 토착 귀족들은 그딴 거 없이 있으면 있는대로 다 걷는 무식한 방식으로 수탈했습니다.

5개가 있는 집이든 10개가 있는 집이든 4개씩 걷는 게 아니라, 10개가 있는 집에서는 9개를 걷습니다.

그리고 4개를 걷은 집에는 5개 적게 냈다며 딸이 있으면 잡아다 팔아 넘기거나 징벌을 합니다.

가장 많이 수탈 당한 집을 기준으로 나머지를 조지는 강도질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착취를 한 거지요.

이런 방식으로 수백년을 수탈 당했으니, 열심히 해봐야 다 빼앗긴다는 무력감을 넘어서서, 내가 더 많이 수확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는 인식이 본능처럼 굳어진 거겠지요.


그 외에도 당시 자바의 풍경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네덜란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디테일한 내용들도 많습니다.

원저자인 네덜란드인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는 본격적으로 작가를 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필력이 뛰어납니다.

이 정도의 책이 이제서야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이제라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완역하신 양승윤 교수님, 배동선 작가님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인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꼭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인니에 살았던 한국인이 자기 경험을 근거로 풀어 쓴 인니 소개서들을 '실용서적'이라고 비유한다면, 이 책은 오늘날 인니 문화의 근저를 볼 수 있는 '원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세기 인물이 당시 사회상을 서술한 작품이기 때문에, 현시대 사람이 자기 시각으로 본 단편을 근거로 쓴 글에 비해 그릇된 편견에 빠질 위험도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