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싱가폴

[Singapore 당일치기] 1/2. Gardens by the Bay - Flower Dome

명랑쾌활 2020. 2. 10. 10:03

인니 법률 상 모든 체류 비자는 해외 공관에서만 발급합니다. (학생비자는 예외)

그리고, 인니 소재 한국 회사들 대부분이 입사자를 일단 '비즈니스 방문 비자'로 업무를 시키면서 (불법임) 취업 비자 프로세스를 진행하다, 발급되면 인니 해외 공관으로 보냅니다.

또한, 인니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은 싱가폴입니다.

위 세가지 이유로 인니에 취업하는 한국인은 거의 대부분 싱가폴에 당일치기로 다녀 오게 됩니다.


같은 인니 안의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에도 싱가폴에 갔다 와야 합니다. 

지랄 맞은 인니 비자 시스템 때문이죠.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는 일단 취업 비자를 발급해주면, 회사를 옮기든 붕어빵 장사를 하든 취업 비자 기간 동안은 내버려 두잖아요.

하지만, 인니는 취업 비자를 취업하게 되는 회사를 보증인으로 엮어서 발급해줍니다.

이게 아주 고약하죠.

회사가 나쁜 맘 먹고 잘라 버리면, 집과 가재 도구 다 내버려 두고 그냥 인니 국외로 나가야 하는 거예요.

자녀가 학교라도 다니고 있으면 미치고 환장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한국처럼 불법적으로 여권 빼앗을 필요 없이, 합법적으로 꼼짝마라 노예질 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죠.

인니 정부가 맨날 한국 비자 규정 까다롭다고 땡깡 부리는데, 그럴 자격 없습니다.


불합리한 상황은 그 뿐 만이 아닙니다.

업무 시스템 상, 취업 비자는 '현재 취업 비자가 없는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 게 되어 있습니다. (규정 상으로는 이직자에 적용하는 비자 프로세스가 있긴 한데, 보증인 변경을 하는 세부 절차 규정이 없어서 유명무실합니다. 관료주의 행정이 이렇게 미련하지요.)

그래서, 이직하는 회사 명의로 새로 취업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은 현재 가지고 있는 취업 비자를 말소를 해야 합니다.

취업 비자를 말소하면 체류를 할 수 없으니, 일단 출국했다가 비즈니스 비자든 관광 비자든 받아서 다시 들어 와야 하지요.

이직 회사 명의로 취업 비자가 다시 나오면 또 출국했다가 들어와야 하고요.

즉, 이직하는 사람은 두 번 출국 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이런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당일치기로 싱가폴 갔다가 도착 비자로 입국하려는 외국인에 대해 입국 심사관도 별 신경 안씁니다.


저같은 경우엔, 이직을 하며서 새 취업 비자 프로세스를 미리 다 진행 시켰다가, 갖고 있던 비자를 말소 시키면서 바로 속행 시켜서 두 번 출국하는 엿같은 상황은 겪지 않았습니다.

인니 행정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생긴 사각지대를 이용한, 일종의 편법이지요.

관료주의가 미련하다 보니, 시스템을 잘 알면 빠져 나갈 방법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 봐야 두 번 엿 먹을 거 한 번 덜 먹은 거라 별로 기분은 안좋네요. ㅋ


어쨋든 한 번은 나갔다 와야 합니다.

그래서 무려 네 번째 싱가폴 당일치기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싱가폴 갔다 와서 바로 격무를 하게 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관광을 했다는 거겠네요.

이전엔 싱가폴 갔다 오자마자 빡세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면 그냥 사무실에 늘어져 쉬었습니다.

당일치기로 비행기 두 번 타면 어지간한 사람은 며칠 골골 앓거든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갈까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새벽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돌아도 제대로 다 못논다고 해서 포기.

넓은 실내에 에어컨 틀어놔서 시원하다는 Gardens by the Bay 식물원을 선택했습니다.


...그냥 "싱가폴 식물원 당일치기로 갔다 왔다."고 하면 될 걸 되게 구구절절 늘어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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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스 바이 더 베이 Gardens by the Bay 의 상징인 인공 구조물

바오밥 나무를 형상화 한듯.


어른 64 싱달러, 애 25 싱달러

원화로 어른 입장료가 5만5천원이니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취업 비자 대행사에서 무료 입장권을 줘서 돈 굳었다.

무료 입장권을 매표소에 내미니, 군말 없이 티켓으로 바꿔준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바오밥 나무 형상의 인공 구조물이 잔뜩 서있는 야외 공원과 대형 유리 돔 안에 있는 실내 식물원이다.

야외 공원은 밤이 되면 펼쳐지는 레이져 쇼가 볼만 하다고 한다.

실내 식물원은 다시 두 곳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하나는 꽃들을 모아 놓은 플라워 돔 Flower Dome 이고, 다른 하나는 숲을 테마로 꾸민 클라우드 포레스트 Cloud Forest 다.


땡볕이라 야외 공원은 패스. 실내 식물원 둘 중 플라워 돔을 먼저 갔다.


미닫이로 열리는 자동문에 잠깐 당황했다.

자동문은 여닫이 방식만 봐왔기 때문에 고정관념이 생겼나 보다.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광경

창문을 꽃으로 장식한 집 형상의 구조물이 있는데, 흠... 싱가폴이 돈은 많이 버는지 몰라도 미적 감각 수준은 그닥 높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입구 위치가 1층 정도 높고 서서히 밑으로 내려가면서 감상하는 구조다.

실내 온도는 선선한 봄날씨 같아 딱 좋은 쾌적함이 느껴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가젤과 만들어지고 있는 기린

아마 모든 동물이 멸종하고 식물이 지구를 지배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표현한듯.


저승 가는 길...?

초등학교 교과서 삽화에서 봤던 그림체를 조형물로 표현한듯한 느낌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조형물이다.


싱가폴은 화교의 나라라는 게 느껴지는 구조물


그나마 한 장 걸치고 있던 웃통을 까고 누드 삼림욕을 하고 있는 푸우


문득, 복근 없는 사람이 남들 보는데 웃통을 까면 비웃음을 받는 어떤 나라가 떠오른다.

늘씬하지 않은 사람이 비키니를 입는데 용기가 필요한 사회라는 게 과연 정상일까?

감싸주는 정은 사라지고 참견하는 정만 남아 버린 정의 나라, 그 안에서 각자 스스로 족쇄를 둘러 쓰고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


식물원 안에 레스토랑이 있다.


서양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특이하다.


음... 불에 구워지고 있는 헐크 타조...?


화장실도 센스있게 살짝 가려서 배치했다.

당장 급해서 시야가 좁아진 사람도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오, 방울꽃이다.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촌스러운 연분홍색이 좋다.


어째 식욕이 감퇴되는 느낌이...


와... 이런 씨ㅂ... 죤나 멋지잖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 방사능을 쏘여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 산채로 불에 구워져도 끄떡 없는 녹색 헐크 식인 타조가 돌아다니는 세상인데, 딱 봐도 잡아 먹으면 탈 날 거 같은 형광 분홍 오랑우탄 정도는 있어 줘야 구색이 맞긴 하겠다.


통닭, 바나나, 아보카도, 스마트폰, 숄더백, 자동차 바퀴, 그리고 스니커즈...

여기 실내 장식 꾸민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궁금하다.

아니,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고, 뭔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플라워 돔은 느긋하게 돌아봐도 1시간이 안걸렸다.

길을 잃고 헤맬 것도 없이, 길을 따라 슬슬 걷다 보면 입구 아랫층에 있는 출구에 자연스럽게 도착한다.

플라워 돔 출구를 나서면 화장실, 기념품 가게, 매표소로 가는 엘스컬레이터 등이 있는 야외 공간이 나오고, 그 너머로 클라우드 포레스트 입구가 보인다.

플라워 돔을 먼저 돌아 보고 클라우드 포레스트로 가는 동선으로 설계된 모양이다.


흡연 공간 표지판이 당최 안보이길레 직원에게 물었더니, 건물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을 가리킨다.


싱가폴이 참 흡연자들을 홀대하는구나 싶었는데...


아니다.


경치 정말 좋다.

혐연자 눈초리 신경 쓸 필요 없이 느긋하게 경치 감상하며 피울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도 이런 건 좀 배웠으면 한다.


세계적으로 금연이 대세인데, 한국도 지정된 금연 구역 이외에는 흡연이 가능한 네가티브 규제 방식 말고, 싱가폴처럼 원칙적으로 전지역 금연으로 하고 따로 흡연 허용 구역을 지정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적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차도에 사람이 들어가면 사람이 잘못한 거고, 인도에 차가 들어가면 차가 잘못한 건데,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따로 지정하고 나머지 길은 차도 인도 구분 없이 알아서 하라고 하니 서로 잘잘못 따지고 싸우게 된다.

차라리, 구분을 명확히 해서 분리하고 법 규정이라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대로 정리하면 깔끔하다.

인간성이나 예의, 양보, 배려 따위의, 사람마다 다른 모호한 기준을 들이밀며 다투니 남는 건 혐오 밖에 없다.

범죄를 저질렀는가 아닌가는 구분이 명확하지만, 인간성이 더러운가 아닌가를 도대체 어떻게 구분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