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Flores Indonesia] 16/18. Moni -> Ende, Soekarno 유배지

명랑쾌활 2019. 11. 4. 10:10

아침 6시 30분,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떴다.

숙소가 정동향이고 앞이 탁 트인터라, 거의 수평으로 날아와 때린다.


숙소에 사는 고양이가 새끼 한 마리와 볕을 즐기고 있다.


경계의 눈빛을 보냈지만 내가 딱히 신경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이내 앞다리에 턱을 괴고 잠을 청한다.

뭐 속으로야 덥썩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지만, 내 좋은대로 하자고 녀석들의 잔잔한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다.


살짝 온기가 도는 볕과 차갑고 신선한 새벽 공기가 좋다.


7시 쯤 되자 햇살이 벌써 따갑다.

그늘로 피하려 안에 들어가 방문을 열고 그 앞에 앉아 글을 끄적인다.

한참 끄적이다 문득 고개를 드니 어미 고양이는 어디론가 가고 없고, 새끼는 내 쪽으로 좀더 다가와 의자 밑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았을 거고, 저 녀석만 살아 남았을 거다.


세상은 무정하다.

죽어야 할 새끼 고양이도 없고, 반드시 살아야 할 사람도 없다.

선한 마음과 귀한 재능으로 타인에게 보탬이 될 사람이 젊은 나이에 속절 없이 죽을 수도 있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평생 호의호식하며 수명을 누리다 죽을 수도 있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모두 인간의 감정 이입이다.

세상에게는 감정이 없다는 걸 받아 들이기 힘들어, 사람은 신을 믿고 신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한다.

신은 사랑한다.

하지만, 신이 천지만물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건,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엔 결국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간의 개념에서 사랑은 곧 편애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온 세상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받는 사랑이란 게, 그 중 어느 한 여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제 주위에 사랑 받지 못하는 존재가 있어야만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각자 자신이 믿는 신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한다.

가난한 자가 믿는 신은 현세의 고단함에 대해 내세의 보상을 약속해주는 신이고, 부유한 자가 믿는 신은 자신의 부가 정당하고 옳은 보상이라고 보장해주는 신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신은 모든 인간들 제각각의 감정 투사 역시 받아 준다.

세상은 모든 것에 무정하고, 신은 모든 것을 사랑한다.


아침 7시 반에 조식 먹기로 어제 저녁에 얘기해뒀는데, 의사소통이 안됐나 보다.

8시 반이 되어서야 아주머니가 와서, 아침 먹을 거냐고 묻는다.


음식은 15분 만에 나왔다.

바나나 팬케잌이었는데, 휘발유 냄새 비스무리한 게 올라와서 별로였다.

과일은 신선했다.


재떨이로 쓰기엔 과분한 느낌이다.

이런 곳에 비벼 끄면, 되게 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야만적 쾌감이 살짝 든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선악 기준이 확장되어 그런 감정이 드는 거다.

사실 이미 죽어 사물이 된 소라 껍데기를 재떨이로 쓰는 것이,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만든 재떨이보다 더 건전하다.


숙박비를 치르면서, 엔데 Ende 로 가는 교통편을 잡아달라고 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모니에서 출발하는 교통편은 따로 없고,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타야 한다.

어차피 모니를 지나 엔데로 가는 모든 차량이 숙소 앞 도로를 지나가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정차 시간표가 없어도 별 문제 없다.

차량을 대절해서 갈 수도 있지만, 40만 루피아로 가격이 꽤 비싼 편이다.


10시 반 경 버스를 잡았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교통편이다.

요금이 얼마냐고 묻는 어설픈 짓은 하지 않고, 그냥 냉큼 올라 탔다.

떄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달라고 할 거다.

익숙한 척 하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다.


마침 좌석도 거의 차있어서 떡하니 옆문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에어컨이 없어서 보통 문을 열고 운행하는데, 그 앞에 앉으면 바람이 시원하기 때문에 명당자리다.

대신 손님이 타고 내릴 때 요령있게 자리를 계속 점유하고 있어야 하고...


이런 고갯길을 씽씽 달릴 때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팔, 다리, 허리로 적절히 버텨야 한다.

그나마 모니에서 엔데로 갈 때는 가는 내내 옆문이 산 방향을 향하기 때문에 좀 덜한 편인데, 반대 방향이라면 까마득한 낭떠러지 계곡을 바로 발밑에 두고 실컷 누릴 수 있겠다.


12시 정각 엔데 도착. 1시간 반 걸렸다.


여행사가 운영하는 교통편과 달리, 현지의 일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했을 적의 단점은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선대로 달리며 아무 곳이나 내릴 사람 탈 사람 있으면 정차하는 시스템이라, 구글맵으로 계속 위치를 체크하고 있다가 예약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정차했을 때 내렸다.

'이런 거 많이 타봐서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얼마냐 물었다.

운전기사는 아주 잠깐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5만 루피아를 부른다.

작년에 플로레스 여행했던 사람의 블로그에서도 '1인당' 5만 루피아였다고 했다.

하지만 인니 물가 수준으로 보아, 이런 수준의 현지인 교통 수단 가격에 이 정도 거리의 요금으로 1인당 5만 루피아는 비싼 거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현금이 귀한 편이라 더욱 그렇다.

나는 나와 일행 두 명 요금으로, '당연하다는듯이' 5만 루피아 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운전기사 역시 당연하다는듯이 받았다.

아마 내가 조금이라도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면, 운전기사가 '1인당 5만'이라고 덧붙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버스 내린 곳에서 예약한 숙소인 다시 게스트 하우스 Dasi Guest House 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인데...


정오의 뙤약볕이 정수리와 어깨를 그야말로 후두려 팬다.

그간 있었던 곳들이 선선한 산간 지역들이라 그런지 바닷가에 있는 엔데 기후가 더욱 덥게 느껴진다.

가뜩이나 바람 한 점 없어서, 배낭까지 매고 완만한 경사길을 계속 오르려니 허기까지 더해져 5분 만에 기진맥진이다.


일단 가게에 들어가 수분부터 보충하고, 그늘에 앉아 쉰다.


고작 10분 거리 5분 걷다 쉬는 게 흐들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열대 지방 뙤약볕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숨을 못쉬는 상태처럼, 어떤 이유로 인해 체온 조절 대사가 원활하지 않은 상태로도 사람은 고작 몇 분 만에 쓰러질 수도 있다.

숨이 가쁘거나, 팔다리가 덜덜 떨리거나, 토하거나 하는 등 겉으로 보이는 증상만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한국인들이 그런 경향이 강한데, 아프거나 집에 급한 일이 있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을 나약하고 부족하다 경멸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예전엔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런 국민성이 필요했겠지만, 지금도 그러는 건 미련한 짓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어쩐지 몸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쉬는 게 낫다.

그 이상함을 느끼는 감각이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다.


인니에 살면서, 하던 일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몰아붙여 끝내려 하지 않고 마치는 현지인들의 성향을 늘 겪어 왔는데, 아마 이런 기후적인 부분도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생존의 지혜에서 비롯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한계를 극복하려는 근성이 없다는 결점이기도 하다.

'왜 한계를 극복해야 하지요?'라고 묻는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ㅋㅋ


인니 어딜 가든, 골목 입구 그늘맡에 하릴없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오젝 Ojek (오토바이 택시) 기사일 수도 있지만, 그냥 뭘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뭘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러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가면, 그날 즉시 그 마을 주민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사기 치고 어디론가 잠적한 현지인을 찾아주겠다며 뇌물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돈을 줬더니, 정말로 잡아 왔더라는 무용담은 거짓말이 아니다.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토에 행정과 치안이 약하기 때문에, 죄를 저질러도 어디론가 숨으면 못찾을 것 같지만 실을 그렇지 않다.

각 마을 별로 배타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외지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돈이 안되는 일은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게 문제일 뿐이다.


어느 정도 몸이 식었으니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간혹 나오는 나무 그늘 밑을 잠깐 지나가기만 해도 체감하는 온도가 확 다를 정도로 햇살이 뜨겁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

(찍은 사진이 없어서 구글 스트릿맵으로 대체. 2016년도에 촬영한 거고, 지금은 간판이 있다.)


엔데는 대체적으로 숙박비 시세가 비싼 편이다.

공항 근처의 좀 호텔답다 싶은 곳의 가격은 40만 루피아 정도 한다.

어차피 1박만 하고 새벽에 바로 공항에 갈 거라 좀 저렴한 곳으로 잡았다.

좀 외진 곳이지만, 치안이 불안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호텔스닷컴을 통해 29만 루피아 짜리 방을 예약했는데, 정작 프론트에 있는 가격표를 보니 25만 루피아다.

아마 수수료와 세금을 다 엎어 넣어서 더 비쌀 거다.

인니는 워낙 탈세가 만연한지라, 직접 발품 팔아 방을 구하는 게 더 싼 경우도 흔하다.

(물론 만실일 리스크가 있고, 흥정을 잘 못한다면 온라인 예약 가격이나 매한가지일 수도 있다.)


프론트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공무원 제복 차림의 아저씨가 말을 건다.

행색이나 인니어 말하는 걸로 보아 현지인 같은데, 체크인 하려고 여권을 제시하는 걸 보고 신기했나 보다. ㅋㅋ

인니 생활 초기엔 경찰이나 공무원을 보면, 뭐 트집 잡아 돈을 뜯을까봐 긴장했었다.

눈에 보이는 잘못이 있다면 모를까, 없는 잘못 만들어 캐낼만큼 부지런하진 않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공무원이 대하기 더 편한 점도 있다.

인니는 아직 관료주의가 여전해서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은 자신들이 일반인들보다 높은 신분이라는 엘리트 의식이 있는 편이다.

거기에 외국인을 신분이 높다고 보는 인식이 더해져, 외국인이 자신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걸 매우 흡족하게 느끼는 것 같다.

자신의 엘리트 의식을 충족 받는 심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석에서 그렇다는 얘기니, 장소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관공서의 자기 자리에 앉은 공무원은 그야말로 관료주의의 화신이다.

말단 공무원이라도 자기들의 규정에 어긋나는 민원인이라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사정없이 깔아 뭉갠다.

(인니 관공서는 복장 규정이 있어서, 반바지나 민소매, 슬리퍼 차림으로 입장할 수 없다.)


공무원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 수카르노의 엔데 유배 시절 지냈던 집에 가볼까 한다고 하니, 오후 5시에 문을 닫으니 늦지 않게 가보라고 알려 준다.

공무원 아저씨는 프론트 직원이 숙박 명부를 복사해서 내미는 걸 받아 들고 자리를 떴다.

인니는 숙박업소는 물론, 일반 가정집이라도 외지인이 묵을 경우 통반장이나 관청에 신고를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실제 적용은 느슨한 편이지만 어쨌든 분명히 있는 규정이기 때문에, 어길 경우 돈을 뜯길 빌미가 된다.


숙소는 전형적인 인니식 구조였는데, 그럭저럭 깨끗한 편이었다.


2층에 오르면, 이야 화산 Gunung Iya 이 보인다.

엔데 어디에서든 보이는 이야 화산은 활화산이다.

마지막으로 분화를 한 게 50년 전인데, 아직도 유황 연기나 증기를 내뿜으며 활동중이라고 한다.

인니는 활화산이 워낙 흔해서, 이젠 별로 신기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엔데 공항도 이야 화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ㅋㅋ


객실에 들어가자 마자 찬물에 샤워를 하고 싶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온다.

햇빛에 덥혀져서 그런데, 따듯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뜨겁다.

한 30초 쯤 기다리니 점차 온도가 내려갔지만, 차갑다고 느낄 정도까지는 내려가지 않았다.

산간 지역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지역 물도 수질이 괜찮았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일단 휴식을 취하니 살 것 같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뙤약볕이 떠올라 당최 나가고 싶지 않다.

배낭 속 자리를 차지하고만 있던 사골탕면을 드디어 먹게 됐다.

루뗑 Ruteng 에서 샀다가 딱히 먹을 타이밍이 안맞아 여행 내내 가지고 다녔는데,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나 보다.

비록 인스턴트지만 사골 국물을 먹으니 원기가 돋는 기분이다.

한국인의 혼이니 얼이니 그딴 건 믿지도 않지만 만약 그런 게 정말 있다면, 그건 태어나 인격이 형성되기까지 접하고 받아들여지고 기준이 되어 버렸던 체험들의 총합이지 않을까 싶다.


햇빛이 한 풀 꺾인 4시 쯤 되어 숙소를 나서면서, 프론트에 들러 내일 아침에 공항에 가는 교통편을 문의했다.

직원은 내가 타고 갈 비행기 출발 시간을 듣고, 아침 6시에 출발하면 되니 그 시간에 맞추도록 어레인지 해주겠다고 한다.

아마 공항 셔틀 서비스를 해주는 모양인데, 가격을 말하지 않는 걸로 보아 무료인 모양이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정보로는 괜찮은 호텔도 요금을 받거나 본인이 알아서 가야 한다고 해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횡재한 기분이다.

오토바이 렌탈도 물어 봤다.

가능하고 렌탈비는 24시간 기준 10만 루피아인데, 오젝이 흔하고 엔데 시내 지역 내라면 어디든 무조건 5천 루피아이니, 그냥 오젝을 이용하라고 권한다.

어디 가서 오젝을 잡냐고 물었다. (숙소 위치가 외진 편이라 오토바이가 그리 자주 다니지 않을 것 같았다)

직원은 그냥 숙소 앞에서 잡으면 된다고 하더니, 같이 나와서 직접 지나가는 오젝을 잡아 주었다.

사근사근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친절하고 양심적인 직원이었다.


숙소가 위치한 엔데 동부에서 서쪽 경계에 있는 수카르노 유배지까지 오젝으로 약 5분 걸릴 정도로 엔데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딱히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냥 마을 민가들 사이에 있다.


사진 오른쪽 바깥에 청소년으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대여섯명 모여 앉아 노닥거리고 있다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담벼락 위에 걸터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인니는 동상을 참 좋아하고, 그만큼 잘 만드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유배지치고는 집 상태가 훌륭하다.


수카르노 Soekarno 는 인니 초대 대통령으로, 네덜란드 식민 지배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 이곳 엔데 지역으로 유배를 당했다.


당시 사용했던 테이블의 다리...


수카르노가 사용했었다는 다 부서진 비올라


수카르노의 입양아인 라뜨나 주아미 Ratna Djuami 의 글 복사본...을 왜?


수카르노가 사용한 침실


수카르노의 두번째 부인인 잉깃 가르나시 Inggit Garnasih 의 35세 때 사진

수카르노보다 13세 연상으로 서로 사랑에 빠질 당시 둘 다 배우자가 있었는데, 각각 이혼하고 둘이 결혼했다.

수카르노가 엔데로 유배 되었을 때 함께 와서 지냈기 때문에, 이곳 기념관에 잉깃의 사진을 걸어 둔 모양이다.


수카르노가 엔데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기간은 4년 정도이고, 이후 벙꿀루 Bengkulu 로 옮겨져 유배 생활을 계속 했다.

참고로, 벙꿀루 유배 당시 15세였던 파뜨마와띠 Fatmawati 와 사랑에 빠져, 잉깃과 이혼하고 파뜨마와띠와 세번째 결혼을 했다고 한다.

13세 연상 다음엔 23세 연하라니, 수카르노는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모양이다.


수카르노의 장모 (잉깃의 모친) 와 입양아인 라뜨나 주아미가 사용했던 침실

장모가 사위의 유배지에 따라 온 것으로 보아 당시 장인은 작고하고, 장모는 잉깃이 부양하고 있었지 않나 싶다.


한국이 워낙 극단적으로 부계 중심 문화여서 그렇지, 세계적으로 보면 부부의 양가 부모를 동등하게 공경하고 왕래하는 문화가 더 많다.

생각해 보면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가 사고방식의 근간인 사람에게는 특이하게 느껴진다.

'여자는 출가 외인'이라는 규칙을, 왜 그래야 하냐는 의문조차 갖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이 그냥 그 게 옳은 거라고 각인되어서 그렇다.

그 나라의 사회 문화가 구성원의 가치관 형성에 끼치는 영향이 이렇게 중요하다.


수카르노가 사용했던 지팡이


기름 램프


고장이라도 났는지 전원 뽑힌채 한 구석에 놓인 키오스크


아예 리모델링 수준으로 단장한 뒷마당


한 켠엔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파라솔 테이블과 의자도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나뭇잎 본


수카르노 관련 책자들

뒷마당 처마 밑에 비치되어 햇빛에 훼손되어가고 있다.


자연과 경관을 소개하는 잡지는 왜 있는지...


부엌 문은 잠겨 있었다.

뭐 훔쳐 갈게 있다는 건지.


공사를 하고 남은 타일들이 있었다.


샤워장은 창문도 없어 내부를 볼 수도 없다.


우물은 사람의 공포를 자극하는 면이 있다.


파라솔 밑에 앉아 바라 본 뒷마당 전경


기념관 건립 후원 업체 명단


수카르노가 기도실로 사용했다는 곳은 문을 잠그는 것도 모자라, 앞에 차단선까지 설치했다.

아마 수카르노가 기도했다는 영험(?)한 곳에서 기도하고 싶어하는 무슬림들이 들어가려고 하도 문고리를 잡아 대서 그렇지 않나 싶다.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고, 기부금 상자를 두었다.

두당 1만 루피아 해서, 2만 루피아를 기부했다.

전시품은 매우 빈약한 편이지만, 애초에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굳이 전시 물품이 아니더라도, 공간 자체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장소를 보고서, 대강 이렇게 살았겠구나... 하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워 넣으면 된다.


유배지 기념관 건물을 보니, 네덜란드는 그래도 최소한의 인권은 지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배지치고는 생각했던 것보다 집도 나름 번듯했고, 당시 사진으로 보아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도 큰 제한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하면, 일본 강점기 시절의 한국은 어땠던가.

당시야 힘 좀 있다는 나라는 다들 땅따먹기 하겠다고 미쳐 돌아가던 제국주의 시대였으니 그렇다 쳐도, 일본만큼 악독하게 굴었던 나라도 없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또다시 군사력을 증강하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땅 갖고 싶지도 않으니 그냥 아예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을 지배하고 싶어서 안달복달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옆에 있다는 것도 참 나라의 불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