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무시한 죄

명랑쾌활 2024. 9. 26. 07:54

맞선임이 군복 다려주고 군화 불광내주는 전통이 있었다.

정말로 괜찮으니, 해주지 말라고 했다.

군인은 뭔 짓을 해도 군인일 뿐이고, 군복도 뭔 짓을 해도 군복일 뿐이다.

어떻게든 꾸며 보려는 게 너무 찌질하게 느껴졌다.

다리지 않은 군복, 구둣솔로 슥슥 문지른 군화 신고 첫 휴가 나갔고, 집에 가자마자 벗어 던졌다.

정말 괜찮냐고 몇 번 더 물어보던 맞선임의 표정이 기억난다.

안해줘도 되니 좋다는 표정은 분명히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재수없었을까.

 

맞후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짓을 해도 군바라리고. 나도 그냥 나갔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괴상한 놈으로 보였을까.

 

허접쓰레기 하찮은 거라도, 누군가에겐 엄청 대단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

그걸 하찮게 취급했으니, 얼마나 재수없었을까.

하지만 난 도저히 그걸 참을 수 없었다.

 

제대 후 사회 생활을 할 적에도 같았다.

좋은 대학 출신이라고, 좋은 회사 다닌다고, 높은 직급이라고 으스대는 인간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뭐? 나한테 한 푼이라도 보태줄 건가?

그 좆도 아닌 게 마치 자기의 정체성인양 구는 꼴이 한심했다.

날 재수없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어쩌랴.

가치 없는 걸 귀한척 하는 재주가 없는 걸.

 

지금은 나아졌다.

존중은 한다. 누구나 소중한 건 있게 마련이고, 그 가치는 각자 정하는 거니까.

내가 정한 가치가 아니라 공감은 여전히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