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

열쇠 복사

명랑쾌활 2009. 11. 18. 19:21
현지인 친구를 알게 되었다.
열쇠가 달랑 하나라 복사할 필요가 있어 어디서 복사하는지 물어 봤다.
어쩌구 저쩌구 설명을 하다가 내가 못알아 듣는듯 하니까, 자기 퇴근하고 같이 가잖다.
아니 그럴 필요 없는디... 그냥 약도로 그려주면 말 한 마디 못 알아 들어도 갈 수 있는디...
고마운 일이지.

그 친구 퇴근 후 열쇠 복사해 주는 곳에 갔다.

사진 가운데 빨갛고 노란 작은 노점이 열쇠 복사해 주는 곳.
없는 날도 심심찮게 있는 것 보면 상설이 아니라 몇 군데 돌아가며 영업하는듯.

근처에 도착하자 가까이 와서 열쇠를 달란다.
짐작하는 바가 있어 슬쩍 건네 주었다.
그 친구는 열쇠점에 가서 열쇠를 주며 뭐라 뭐라 했다.
10분 정도 후, 열쇠공이 뭐라 뭐라 한다.
그 친구가 다시 내게 다가와 손가락을 세 개를 펴보인다.
설마 우리 나라 돈으로 3백원이나 3만원 정도는 아닐테고, 3천원에 가까운 금액인 3만 루피아를 건네 주었다.
이대로 끝이었으면 (그 친구에겐) 좋았을텐데...

돌아오는 길에 복사된 열쇠를 포함해서 열쇠 3개와 거스름돈 3천 루피아를 건내 준다.
외국인이 해달라 하면 바가지 씌워서 자기가 나섰다고 한다.
어인 일인지 내 방까지 쫓아온다.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은 것인가 싶어, 공부하느라 책상에 널려있던 책을 치우고 맥주를 꺼냈다.
그랬더니, " 공부하는데 방해한 것 같다. 맥주는 이왕 꺼냈으니 가져가도 되겠지?"
하며 챙겨서 갔다.
왠지 내 잇속만 챙기고 문전박대한 기분도 들고, 굳이 맥주를 챙겨 나가는 행동이 이상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열쇠 두 개 복사하는데 27,000 루피아라...
그렇다면 개 당 13,500 루피아. 이상하다.
들은 풍월로는 흥정할 때 보통 1,000 루피아 단위로 깎지, 500 루피아 단위로 깎는 일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27,000 루피아다.
9X3 은 27. -_-;;
다른 거면 모르겠는데 열쇠다.
무지 찝찝해진다.

마침 나 열쇠 복사했다는 얘기 듣고 어디냐고 묻는 한국 사람이 있었다.
위치 알려주며 개 당 복사 가격이 얼마인지 알려 달라 했다.
개 당 만 루피아...
현지인이라 개 당 천 루피아 씩 깎고 3개 복사했다는 얘기다.
젠장, 차라리 돈을 달라던가 왜 하필 열쇠 가지고 장난질이냐.

결국, 천 루피아 (우리 나라 돈으로 백 몇 십원) 아끼자고 했다가, 새 열쇠 맞추느라 십만 루피아 들였다.
어차피 찜찜해서 열쇠 바꾸려고 하긴 했다고 좋게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씁쓸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외국에서 산다면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 열쇠 바꾸는데 집주인에게 미리 통보해야 하며, 열쇠 하나는 집주인에게 주어야 한다. 여기 룰은 그런가 보다.

** 그 친구와는 그냥 계속 친구로 지낸다. 따질 수도 없고, 따질 것도 없다. 그냥 웃으며 지낸다.
그리고, 맥주에 얽힌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