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나 옛 일화 등 오래전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 중에 가장 유력한 것일 수 있으니 감안하세요.
죽부인은 중국에서 유래됐고, 당나라 시절 한반도,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일대로 퍼졌다.
인니에도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절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인니에 장기 거주하게 된 네덜란드인들이 서구권에 소개해서 Dutch Wife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인니의 죽부인은 대나무 말고 로딴 Rotan (영어명 Rattan) 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나무로 만든 것은 굴링 밤부 Guling Bambu, 로딴으로 만든 것은 굴링 로딴 Guling Rotan 라고 하는데, 굴링 로딴은 현재는 보기 어렵다.
로딴 제품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어서 주로 수출하는데, 바구니나 가방 등 제품보다 범용성이 떨어지는 굴링을 만들어봐야 품이 들기는 마찬가지인데 돈이 되지 않아서 그런듯 하다.
오늘날 인니의 굴링 Guling 은 솜을 넣어 푹신하고, 겉은 천으로 감싸 부드럽다.
제국주의 시대, 인도 왕실의 사치품이 동남아 일대에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형태의 굴링이 인니 서민들에게 대중화 되기 시작한 건 1050년대 중반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 식민 통치가 끝나면서, 수탈 대상이었던 까뿍 kapuk (자바 코튼) 이 인니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한 덕분이라고 추정한다.
까뿍 솜은 섬유질 길이가 짧아 실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현재까지도 개발된 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매트리스나 베개, 이불에 들어가는 쿠션 재료로 사용되는데, 굴링의 속재료로 제격이다.
사실 푹신한 굴링은 태국이나 벳남,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지역에도 있다고 한다.
인니의 상징 비슷하게 된 것은 인니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많은 종족으로 이루어진 인니의 정서적 동일성을 부각하는데 '어머니 같이 부드러운' 굴링을 자주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인니에 왔을 적엔, 굴링을 보고 죽부인과 비슷하지만 원류가 다른 줄 알았다.
한국에서는 무더운 여름에 죽부인을 쓰는데, 일 년 내내 더운 인니에서 푹신한 굴링을 쓰는 건 '몰라서'라고 짐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 대나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죽부인 만들어다 팔면 대박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인니에 제법 오래 살면서, 동남아 사람들이 죽부인을 놔두고 푹신한 굴링을 선호하는 이유를 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한국인 관점에서 인니는 봄, 가을, 겨울이 없이 '여름만 있는 더운' 나라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들에게는 그냥 사철 비슷한 온도일 뿐이다.
열대 지방이라도 밤엔 온도가 내려간다.
한국인에겐 그래봐야 여전히 더운 '열대야'라고 느껴지지만, 열대 지방에 사는 현지인들에겐 기온이 떨어지는 밤이다.
이 나라에 오래 살아 몸이 풍토에 적응하면 밤에 춥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 굴링을 껴안고 자면 푸근하다.
낮잠 잘 적에도 한국인이 배에 수건이라도 덮고 자듯, 굴링을 배에 얹고 잔다.
열대 지방이라도 낮잠은 선선한 곳에서 자게 마련이고, 배 까고 자다가 배탈 나는 건 한국이나 다를 바 없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인니 중산층 일각에 죽부인이 건강에 좋다고 유행하고 있고, 특히 한국산을 선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