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모험기

명랑쾌활 2023. 1. 27. 12:32

묵혀둔다 하고 잊어서 너무 묵었네요.

지우긴 아까워서 기록 차원으로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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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백신을 맞았습니다.

원래는 그냥 안맞으려고 했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걸렸다 나았는데, 딱히 백신이 필요할까 싶었어요.

 

https://choon666.tistory.com/1591

 

코로나 체험기

약혼녀가 조모 상을 당해 본가에 갖다 왔다. 다녀온 다음 날, 약혼녀의 조모 사인이 코로나로 판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증상발현 1일차, 약혼녀가 조모상에 갖다 온지 4일 후, 오후부터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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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hoon666.tistory.com/1654

 

게다가 인니 시스템을 잘 알거든요.

어어엄청 고생할 거 같더만요.

 

 

근데 백신 안맞고는 도대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더군요.

쇼핑몰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큰 업소 중에도 백신 패스 규칙을 자발적으로 시행하는 곳들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https://choon666.tistory.com/1665

 

쇼핑몰 영업 재개 - 백신 접종자만 입장 허용

인니 정부는 야외 식당 취식 허용을 하면서 식사 시간을 20~30분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https://choon666.tistory.com/1656?category=822586) 이 이상 참신한 정책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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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업소나 재래 시장은 백신 패스를 시행하지 않지만, 외국인에게 필요한 물품들은 대부분 큰 업소들 밖에 없기 때문에 불편함이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나, 키우는 고양이 눔들이 먹는 사료 제품은 쇼핑몰에서만 파는 상황이라 결국 백신을 맞아야 하는 쪽으로 선택지가 몰려갔습니다.

 

 

접종 예약은 자키 Jaki 라는 앱을 통해 했습니다.

원래는 인니 정부 공식 앱인 쁘둘리린둥이 Pedulilindungi 앱을 통해 감염 검사 확인증부터 백신 접종 예약, 접종 완료 확인까지 모두 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에러가 너무 심해서 현지인들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접종자만 입장할 수 있는 곳에 입장할 때 제시하는 백신 패스 용도로만 씁니다.

주제에 정부 공식앱이라 다른 앱의 증명은 백신 패스로 안받아주거든요.

 

접종 예약을 하는 여러 앱중 Jaki가 가장 시스템이 안정적이라 해서 사용했습니다.

단, Jaki는 자카르타 지역만 예약할 수 있습니다.

 

원래 Jaki 앱을 통해 접종 예약하는 법도 따로 포스팅하려고 자세히 캡쳐해뒀지만... 딱히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아 예약 완료 부분만 올립니다. (한국 교민들 중 맞을 분들은 이미 한달 전에 '알아서' 다들 맞으셨다더군요.)

 

현지인들은 자카르타 곳곳의 접종소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 지인도 가장 한적한 곳에 가서 맞을 수 있었지요.

https://choon666.tistory.com/1670

 

군병원에서 백신 접종 성공

얼마전 인니 백신 접종 시스템 관련 포스팅을 했었습니다. https://choon666.tistory.com/1668 시스템 문제로 불거진 백신 접종 혼란 인니 백신 접종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가장 알려진 방법은 쁘둘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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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국인은 다른 선택지가 아예 뜨질 않습니다.

오직 한 곳, 지엑스포 JIEXPO 만 뜹니다. (Jakarta International Expo. 한국으로 치면 코엑스 같은 곳)

일자도 오직 일요일 밖에 안되고요.

08시부터 1시간 단위로 예약 가능 인원이 100명씩 되어 있었는데 앞쪽은 이미 다 찼고, 11시로 예약을 했습니다.

 

요렇게 생겨 먹은 건물입니다. <사진 출처 : kumparan.com>

 

 

10시 50분경 도착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더군요.

시간대별로 100명씩 예약을 받았으니 뻔하죠.

혹시 몰라 통제요원에게 "11시 예약하고 왔다"고 물었지만, 역시나 그냥 줄서랍니다.

시간 예약 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선착순으로 오는대로 줄 서서 맞는 겁니다.

인니가 다 그렇죠.

지인이 소수 예약으로 접종하던 군병원에서 접종하는 거 보고 약간 기대했었는데, 인니는 여전하네요. ㅎㅎ

 

 

눈대중으로 의자 숫자 대충 세어보니 3열로 각 50개 정도, 그러니까 150명 이상의 사람들이 줄을 서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아무래도 오늘 독서 실컷 할 수 있게 된 거 같습니다.

행복감이 벅차 올라 아름다운 언어들이 절로 튀어 나오네요.

 

 

꽤 놀랐습니다.

백여명의 사람들이 '얌전히'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니.

기다리는 고객님들 편안하시라고 의자를 놓는 게 아닙니다.

간격 떨어트리고, 줄 순서 통제하기 편하려고 놓는 거죠.

시야가 트여 전체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이고, 앉혀두었으니 새치기나 줄을 흐트러 뜨리는 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진행할 때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줄 서는 사람들 입장에선 오히려 불편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얌전히 통제에 따르다니요.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인니에서는 진귀한 광경입니다.

아니, 한국이라면 애초에 굳이 앉았다 일어났다 할 필요 없도록 번호표 시스템을 썼겠죠.

편의와 질서를 위한 시스템에 관해선,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외국 나가서 스트레스 깨나 받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투덜이 버럭이들이라 이쪽 분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죠. ㅎㅎ

 

 

군부대에서 높으신 분들이 사진 박으러 행차하신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거하게 대민 서비스를 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는 기회인데, 놓칠리 없지요.

(인니는 정부 주도 백신 접종을 군에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아마 국가 재해 사태로 분류한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일반 승용차, 승합차도 카키색으로 도색했다니, 군인들의 미적 감각은 신비롭습니다.

애초에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색이라 카키색이 군대의 상징이 된 건데, 일반 도심에서는 오히려 더 눈에 잘 뜨이게 됩니다.

본래 목적은 잊혀지고, '군인=카키색'으로 정체성으로 굳어진 거겠죠.

근데 만약 저 색상 차량을 일반에도 판매한다면 저도 갖고 싶긴 하네요. ㅋㅋ

 

 

드디어 건물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딱 1시간 만이네요.

 

 

엘리베이터에 6인까지만 탑승할 수 있는 규정 덕분에 대기 중입니다.

줄 설 때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엘리베이터에서만 6인 이하로 통제하는 게 뭔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와우, 이런 씨발 아름다운 광경이라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펼쳐진 광경에 절로 예쁜 말이 튀어 나옵니다.

 

 

'ㅁ'자 구조의 복도에 'ㄷ'로 둘러쳐 줄을 세웠네요.

 

 

대략 150석 이상 되더군요.

'대기자가 많아지면 줄을 늘이면 된다'는 인니식 해결 방식을 여기에 적용한 모양입니다.

 

 

거의 끝이 보입니다.

마지막 구간에 들어서니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두 시간 가까이 앉았다 섰다를 반복했으니 진력이 날만도 하겠죠.

 

 

드디어 줄 맨 앞에 도달했습니다.

인니에서 살면서 체득한 교훈 중 하나가 '말도 안되게 기다려야 하는 것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결국 된다'는 느긋함입니다.

뭐 대단한 깨달음이라기 보다는 체념에서 비롯한 느긋함이죠. ㅋ

아, 다른 교훈이 또 있네요.

'넋놓고 기다리다간 허탕칠 수도 있으니, 기다리는 게 맞는지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시스템이 불명확한 나라에서 살면 다 그렇게 됩니다.

이거든 저거든 확실한 게 없어요.

 

 

드디어 접종 장소로 입장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또 줄을 서야 하지만, 겨우 5개면 귀엽습니다.

 

맨 앞 데스크에서 인적 사항 입력합니다.

나중에 쁘둘리린둥이 앱 데이터 베이스에 입력하려는 목적입니다.

 

그 다음 데스크는 병력 여부를 체크하고 혈압을 재는 곳입니다.

그 다음 데스크가 드디어 백신을 접종하는 곳이고요.

대략 10 곳에서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고 아무데나 가서 맞는데, 그중 시노백 백신을 취급하는 좌측 부스 4곳에는 사람들이 오질 않아 의료인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더군요. ㅋㅋ

경제 수준이 좀 떨어진다고 해서 국민들이 바보인 건 아니겠죠.

 

백신 접종 완료까지 정확하게 2시간 5분이 걸렸습니다.

다시 말해 2시간 동안 앉았다 일어났다를 계속 한 셈이니, 없던 병도 생길 판입니다.

코로나에 걸렸던 적 없는 사람이라면, 여기 와서 걸렸을테고요.

그래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원래 그런 곳에 살면 원래 그런 줄 알고 사는 법이지요.

인니인들도 한국인들이 야근이나 특근 당연하다는듯 맘대로 강요하는 거 참고 사는 거 보면, 왜 저러고 사나 이해를 못할 겁니다.

인간사 당연한 건 없고, 당연하게 여기니 당연해지게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