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코로나 체험기

명랑쾌활 2021. 9. 13. 08:24

약혼녀가 조모 상을 당해 본가에 갖다 왔다.

다녀온 다음 날, 약혼녀의 조모 사인이 코로나로 판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증상발현 1일차,

약혼녀가 조모상에 갖다 온지 4일 후, 오후부터 몸이 쎄하다.

간헐적인 기침이 나고 몸이 으슬으슬 열이 살짝 오른 느낌이다.

저녁 먹는데 미각이 떨어지고 씁쓸한 맛이 혓뿌리와 목구멍 근처에 계속 감돈다.

뎅기열 걸렸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처럼 심하지 않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담배 연기마저도 넘기는데 거부감이 들 정도로 심했고, 애써 마신 물조차도 다 토했었다.

이번엔 아주 둔감하긴 하지만 최소한 맛은 느껴진다. 토하지도 않는다.

 

그날 밤, 땀 한 번 쭉 뺄 작정으로 감기약 털어 먹고, 이불 푹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다.

열이 오르며 평소와는 다른, 역한 냄새가 나는 진한 땀이 난다.

호흡을 하는데 산소 흡수가 제대로 안되는지 숨이 좀 모자란 느낌이다.

이럴수록 더 침착하게 호흡을 해야 한다. 가쁘게 호흡하면 오히려 더 안좋다.

대여섯 번 자다 깨다 한 거 같다.

새벽 쯤에는 인후통까지 느껴진다.

젠장, 코로나 초기 증상과 거의 유사하다.

 

약혼녀도 기침과 열, 근육통, 미미한 호흡곤란 증상이 있댄다.

아직 미각 상실과 인후통 증상은 없지만 거의 비슷하다.

나보다 젊고 건강해서 그런지, 나에 비해 증상이 미약한 모양이다.

 

이럴 경우, 두 말 없이 해열제 때려 먹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인니 의료 수준은 열악해서, 병을 고치러 가면 오히려 병을 얻고 나오기 십상이다.

게다가 하루 입원비가 50만원 정도 하는데, 며칠을 있어야 할지 모른다.

병이 병인지라 의사 허락이 없다면 내 맘대로 퇴원할 수도 없다.

한국 왕복 항공권 가격이 120만원이 차라리 낫다.

...하지만, 내가 귀국해 버리면 약혼녀는 어쩌나?

물론 약혼녀는 내 귀국을 흔쾌히 찬성할 거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섭섭함은 심한 상처로 남을 거다.

자신이 기꺼운 마음으로 떠나라 하면서도 정말 떠나면 떠났다고 섭섭해하는 것, 사람의 마음이란 게 상반된 감정을 같이 느끼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이대로 내가 한국을 가버린다면, 다행히 둘 다 별 탈 없이 회복한다 하더라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서로에게 평생 남게 될 거다.

뭣보다도, 쪽팔린 일이다. 그렇게 살아서 뭔 의미가 있겠나.

함께 버텨내기로 마음 먹었다.

딱히 비장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내가 죽음을 각오한 선택을 이렇게 평범하고 심상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신기하다.

용기라기 보다는 멍청한 낙관이겠지.

 

 

2일차,

하루 종일 몸이 좋지 않다.

그래도 낮에는 각종 증상들이 심하진 한다.

열대지방 한 낮, 에어컨도 켜지 않고 통풍도 잘 되지 않는 집 안인데 오한과 식은 땀이 몸에 감돈다.

그래도 뎅기열보다 독하진 않다.

그럭저럭 일상생활은 할만 하다.

마침 어제 아침에 해뒀던 미역국을 데워 밥 한 사발 잔뜩 말아 든든히 먹었다.

미각이 떨어지긴 했지만, 뎅기열 때처럼 아예 없진 않고 느껴지긴 한다.

결정적으로, 토하거나 설사하는 증상은 없어서 다행이다.

약혼녀도 섭식에는 별 지장 없다고 한다.

그럼 됐다.

식욕이 여전하고, 먹을 수 있다면 몸이 이겨낼 수 있다.

밤이 되니 다시 열과 근육통이 오른다.

다행히 인후통과 호흡 부족은 없다.

땀도 첫날 밤처럼 심하진 않다.

잠도 두 번만 깼다.

 

 

3일차,

몸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어제에 비해 증상이 덜하다는 거지, 낫는다는 느낌은 아니다.

인후통은 사라지만, 미열과 근육통, 진땀은 여전하다.

간 기능이 떨어졌는지 피곤하고 몸이 무겁다. 뎅기열 때도 그랬다.

 

 

6일차,

열과 근육통도 사라졌다.

하지만 진땀은 여전하다.

피곤하고 몸이 무거운 증 상도 여전하다.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다. 이 역시 뎅기열과 비슷한 증상인데, 간 기능이 떨어지면 그렇다.

새로운 증상이 발현됐다.

손끝부터 손목 언저리, 발등에 좁쌀 크기의 발진이 오톨도톨 올라와서 엄청 가렵다.

코로나 증상은 아닌 거 같다.

코로나 때문에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뭔가 음식을 잘못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이 난 거 같다.

상비약으로 챙겨 뒀던 항 히스타민 약을 먹었다.

인니 처음 올 때 가져와서, 10여 년을 갖고만 있었던 약이다.

밤이 되니 가려움이 더 심해진다.

원래 피부 알레르기가 빈번한 체질이라 가려움 참는데 도가 터서 긁지 않고 참아내긴 했지만, 너무 가려워서 몇 차례 잠을 깼다.

 

 

8일차,

진땀 증상은 사라졌다.

피곤함과 머리가 띵한 증상은 아직 그대로다.

손발의 발진은 점점 더 심해졌다.

챙겨둔 항 히스타민 약은 너무 오래되어 약효가 사라졌나 보다.

타인에게 옮기지 않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약국에 가서 새로 샀다.

인니에서도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이지만, 적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다.

그날 밤, 기침과 함께 폐가 위치한 가슴팍 부위에 통증이 느껴진다.

하얀 가래가 나오는 걸로 보아 폐렴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응급 상태가 되어 실려가지 않는 한 병원에 가긴 싫다.

 

 

9일차,

피곤함, 머리 띵함은 여전하다.

새로 구입한 항 히스타민 약의 약효가 듣는지 발진은 호전됐다.

대신 수시로 졸음이 온다. 역시 인니 약은 무식하게 독하다.

기침과 폐 통증은 좀 잦아들었다.

 

 

11일차,

발진은 거의 나았지만 항 히스타민 약은 계속 먹고 있다.

기침과 폐 통증도 밤에만 좀 심해질 뿐, 낮에는 거의 없다.

피곤함과 머리 띵함만 여전하다.

 

 

15일차,

기침 증상이 다시 심해졌다.

밤이면 호흡이 어렵고, 숨을 약간이라도 크게 들이마시면 기침을 심하게 한다.

시럽 제품인 현지 기침약 먹었다.

확실히 나아졌다.

원래는 모기 때문에 잘때 문을 닫고 더우면 에어컨을 잠시 켰다 끄고 잤었는데, 에어컨 바람을 살짝만 쏘여도 기침이 심해지기 때문에 할수없이 문을 열어두고 잤다.

모기가 물지 않는다.

내 피가 별로 안당기는 모양이다.

 

 

18일차,

낮에는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다. 이따금 기침은 한다.

밤이 되자 열과 진땀이 나는 증상이 다시 발현됐다.

기침 및 호흡 곤란 증상도 다시 심해졌다.

해열제와 기침약의 약효는 제대로 듣는다.

약으로 버티고 있다.

약혼녀는 회복되었다.

젊음은 여러모로 좋다.

 

 

22일차,

하루는 증상이 약해졌다가, 다음날은 또 심해졌다가 반복됐다.

여러 증상이 번갈아 가며 발현된다.

바이러스가 면역력의 방어가 취약해지는 곳을 공략하며, 몸 안을 전쟁터 삼아 일진일퇴의 공방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24일차,

미각이 거의 사라졌다.

약혼녀가 소고기 장조림을 만들면서 간을 봐달라고 했는데, 단맛과 짠맛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코를 틀어 막고 음식을 먹는 느낌이니, 정확히는 미각이 아니라 후각 쪽에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쓴맛과 신맛, 매운맛은 그나마 자극이 있다.

다행인 건, 미각이 없어도 식욕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체질이라는 점이다.

뎅기열 걸렸은 때는 삼키키도 힘들었지만, 먹어도 다 토해냈었다.

그에 비하면 그저 미각이 둔감해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먹을 수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

 

 

25일차,

시험 삼아, 너무 매워서 못먹었던 모 한국 브랜드 치킨집의 매운 바비큐 치킨을 시켜 먹어 봤다.

입에 감도는 매운맛 자극은 평범하게 느껴지는데, 온몸에서 땀이 펑펑 쏟아지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걸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한국의 매운맛 평균 레벨이 10여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올라간 이유도 이해했다.

꾸준히 매운맛을 즐기다 보니 둔감해진 거다.

난 코로나 증상으로 미각이 둔감해진 덕분에, 매운맛에 한해서는 현재 한국의 매운 음식 잘먹는 사람들과 비슷해진 셈이다.

별로 부럽진 않다.

어지간한 매운맛은 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자랑이 아니라, 통각이 둔감해진 거다.

 

 

26일차,

카레나 후추 등은 그나마 맛이 느껴진다.

둔감해진 후각에도 느껴질 정도로 향이 강해서 그런 모양이다.

 

 

30일차,

단맛 미각이 어느 정도 돌아온 거 같다.

아이스크림의 바닐라향 단맛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카레 고로케도 제법 맛이 난다.

짠맛 감각도 약간 나아진 거 같다.

음식물이 혀 안쪽 밑부분에 닿으면 짠맛이 느껴진다.

짠맛이 느껴지자 침이 나온다.

침이 나오니 식욕이 오른다.

배가 고파서 느껴지는 식욕이 아닌, 맛있어서 더 먹고 싶다는 식욕이다.

미각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37일차,

미각은 70% 수준에서 회복을 멈춘듯하다.

기침 감기 증상과 발진 증상만 남았다.

혹시나 싶어 항 히스타민 약 복용을 멈춰봤더니, 다음날 손가락에 다시 가려움 증상이 살짝 올라온다.

그래도 너무 독한 약이라, 이틀에 하나로 줄였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인데 내 자의적 판단으로 복용량도 결정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ㅋㅋ

기침약은 호흡이 힘든 기미가 느껴진다 싶으면 한 모금씩 마셔가며, 이틀에 하나 꼴로 소비하고 있다.

한 병에 4천원 정도 하니, 한달에 6만원 꼴이다.

 

 

47일차,

기침 증상이 줄었다.

대신 진땀이 나는 증상이 다시 발현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에어컨으로 선선한 실내에서도 진땀은 꾸준하다.

반나절이면 면티에 소금띠 자국이 난다.

땀냄새도 역하다.

하지만, 체온은 정상이다.

코로나 증상인지, 코로나는 끝났고 다른 감기 증상인 건지 혼란스럽다.

총체적으로 몸 밸런스가 흐트러진 느낌이다.

 

 

90일차,

근 한 달여간 기침 증상과 진땀 증상이 번갈아서, 혹은 동시에 발현됐었다.

진땀 증상은 점차 약해져 거의 사라졌다.

기침 증상도 약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97일차,

1주간 진땀 증상이 없다.

기침 증상도 매우 경미하다.

목이 좀 아프지만, 흡연 때문인 거 같다.

100일 만에, 드디어 다 나은 거 같다.

 

 

 

올해 초 일입니다.

코로나 방역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줄까 싶어 이제야 공개합니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좀 과장된 바가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19는 독감의 일종입니다.

이미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독감들 중에 코로나19 만큼의 치사율을 보이는 종류도 드물지 않고, 코로나만큼의 전염성을 가진 종류도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다른 독감들의 차별점은 치사율이 높으면서도, 전염성도 높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전염성입니다.

전염성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난 거고, 전염성이 높기 때문에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겁니다.

치사율 1%인 병에 백 명이 걸리면 한 명이 죽지만, 1억 명이 걸리면 1백만 명이 죽게 됩니다.

정부 입장에서 한 명 사망하는 건 '별 거 아니지만', 1백만만 명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1백만 명 목숨이 소중해서라기 보다는, 그로 인한 사회 불안과 경제 여파 문제가 심각하니까요.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일부러 공포를 조장하여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유도 전염성 때문입니다.

전염성이 높으면 고도의 밀접 접촉과 교류로 유지되는 현대 사회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으니까요.

 

전염성 문제를 제쳐놓고, 감염된 개인의 생사를 놓고 봤을 땐 코로나19는 그냥 '심한 독감'입니다.

뎅기열에도 걸려봤던 제 경험상, 뎅기열이 코로나19보다 훨씬 위험하고 독합니다.

자랑같아서 우습지만, 제가 워낙 골초라 살면서 어떤 병 증상이 있어도 흡연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목감기 걸려서 기침 콜록거리면서도 담배를 피울 정도이니, 당연히 코로나19에 걸린 상태에서도 흡연을 멈춘적 없습니다.

그런 제가 유일하게 흡연을 못했던 적이 뎅기열에 걸렸을 때입니다.

물은 커녕 담배 연기조차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걸 몸이 거부하거든요.

그렇게 독한 뎅기열이 범지구적 이슈가 되지도 않고, 몇십 년간 백신이나 치료약도 없는 이유는 전염성이 그리 강하지 않아 특정 지역에서만 발현되기 때문이겠죠.

너무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개인이든 국가든 남일엔 소홀하게 마련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모든 나라에게 남일이 아닌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