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코로나 델타 감염 체험기

명랑쾌활 2021. 10. 25. 08:29

처음엔 이석증인줄 알았다.

밤새 미열이 올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새벽녘에 설풋 깨어, 바로 누은 자세를 옆으로 돌리는데 갑자기 세상이 미친듯이 빙글빙글 도는 감각이 들었다.

코끼리 코하고 돌아서 생기는 어지럼과는 차원이 달랐다.

과장 하나도 안보태고 1초에 수십바퀴는 도는 듯한 느낌이다.

너무 놀라 억 소리도 나지 않고 숨쉬는 것도 멈출 정도였다.

경황 중에 방금 전의 누은 자세로 몸을 다시 돌리니 현기증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이라도 돌리려니 현기증이 슬금슬금 밀려왔다.

5분 정도 가만히 누워있으니 괜찮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코끼리 코하고 도는 정도로 살짝 어질어질 하고 몸을 똑바로 가누기 힘들었지만 아까 현기증에 비하면 참을만 했다.

 

어릴적 잔병치레가 잦았고, 치아 관리도 게을러서 치통도 꽤 겪어본지라 어지간한 통증은 참는데 익숙하다.

뎅기열, 대상포진에 걸렸을 적에도 힘들긴 했지만, '참아낼수는 있다'는 범주의 통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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뎅기열 감염 소감

뎅기열에 걸렸었습니다. 신정환씨 때문에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죠. 실제로는 저렇게 야단법석 않습니다. 링겔 한 대 맞고, 가끔 혈압이나 피검사하는 정도죠. 옆에서 연출 도와준 의료스텝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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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대상포진이라니! 내가 대상포진이라니!! 저랑 거의 상관없을 것 같았던 대상포진에 걸려버렸습니다. 대상포진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가 원인인데, 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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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나도 참 별별 거 다 걸려봤구나... ㅋㅋㅋㅋ

 

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부분의 지속적인 통증은 끊임없이 감각과 의식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통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미친듯이 핑핑 도는듯한 현기증은 자기 객체화를 시도할 경황 조차도 없었다.

통증은 아니지만 오히려 '참을 수 있다 없다'의 범주를 넘어선, 근원적 공포를 자극하는 끔찍한 감각이었다.

그 격렬한 현기증이 자세를 바꿔도 사라지지 않고 한 10분 정도 아무 해결 방법 없이 지속되면서었더라면 아마 반쯤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가장 가까운 증상은 이석증이었다. (몇 차례 얘기했듯, 난 인니 병원을 극도로 불신한다. 강력한 진통제 주사를 맞을 게 아니라면 병원에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려니 했는데...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급증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지인 중에도 어지럼증을 겪은 사람이 있었다.

설마 이석증이 전염병일리는 없다.

그럼 요즘 유행하는 병중 어지럼증을 동반하는 병일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밖에 더 있나.

마침 시기가 델타 변이 전파로 인해, 인니의 1일 확진자 수가 4만명 이상으로 연일 세계 최다를 기록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델타 변이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어지럼증이다.

 

한 번 걸린적 있어서서 그런지 발한과 열, 근육통 등 여타 증상은 가벼운 감기 정도였다.

현기증이 참신한 경험이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돌거나 뚝 떨어지는 감각이라니...

맨 처음 겪었던 격렬한 현기증은 다행히 다시 발현되지 않았지만, 소소한 현기증은 시도때도 없이 나왔다.

고개를 조금이라도 빨리 홱 돌리거나, 벌러덩 눕거나 하면 현기증이 올랐다.

마치 머리 위에 물이 담긴 접시라도 올려놓은듯 모든 행동을 처언천히 하다보니 스스로 나무늘보가 된 기분이었다. ㅋㅋ

 

무엇이든 계속 접하면 적응한다는 게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이지 않나 싶다.

처음 사나흘은 처언천히 누워 베개에 머리를 얹을라 치면 땅 밑으로 쑤욱 꺼져 떨어지는 감각에 가슴이 철렁철렁 했는데, 그 후로는 번지점프라도 하는듯 "우아아아~~" 소리를 내고는 혼자 낄낄 웃었다.

현기증은 대략 2주 정도 지속되다 사라졌고, 여타 증상도 함께 없어졌다.

 

코로나 2차 감염도 그렇게 지나갔다.

 

<대략 두어달 전에 이미 지난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