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

뎅기열 감염 소감

명랑쾌활 2013. 3. 22. 11:00

뎅기열에 걸렸었습니다.

 

 

신정환씨 때문에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죠.

실제로는 저렇게 야단법석 않습니다.

링겔 한 대 맞고, 가끔 혈압이나 피검사하는 정도죠.

옆에서 연출 도와준 의료스텝들도 참 웃기고 민망했을 겁니다.

왠지 웃음을 참는 기색이 느껴집니다.

 

그냥 링겔이나 맞으면 됩니다. ㅋㅋ

 

뎅기열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해보면 자세히 적진 않겠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1. 모기가 옮긴다.

2. 예방 및 치료약이 없다. (예방약은 현재 임상실험 진행 중인데 그닥 예방율이 높지 않은 모양입니다.)

정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침 튀기면 옮는다던지, 동남아 갈 때 뎅기열 예방주사 맞고 가라는 무식한 소리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회사 사장님이 저 뎅기열 걸렸다니까, 직원들 출장갈 때 꼭 뎅기열 주사를 맞고 가게 해야겠다고 하시는데... 무안할까봐 그냥 암소리 안했습니다.

과장보다 부장이, 부장보다 사장이 뭔가 나은 점이 있으니 세상이 그리 돌아가겠지만, 그게 지적 수준까지 가름하는 것은 아니죠.

지적 수준이 곧 사회적 성공과 정비례하지 않듯 말입니다.

아, 교양도 사회적 성공과는 상관 없더군요. ㅎㅎ

 

 

뎅기열의 초기증상은 몸살감기와 거의 흡사합니다.

뭔가 으실으실하고 몸이 안좋은 것이 감기걸렸나? 싶습니다.

안구에 통증이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짠 땀이 눈에 들어간듯 쓰리고 아픕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본격적으로 열이 오르고 근육통, 관절통이 덮칩니다.

2일째 오전부터는 1~2시간 간격으로 열이 오르고 내리는 증상이 반복됩니다. (몸살통증은 그대로)

여기서 일반 몸살감기와 다른 점은, 열이 떨어진 중에는 심한 오한 증상이 있다는 겁니다.

바들바들이 아니라 부들!부들! 마구 떨립니다.

심하게 떨리는데 문득 웃음이 나왔습니다.

몸이 제멋대로 병신춤을 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ㅋㅋ

이런 증상은 3일째까지 계속 됩니다.

 

그리고 3일째부터는 열이 떨어져도 오한 증상은 없는 대신 발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발진은 그때 그때 부위가 다른데, 처음에는 양쪽 팔꿈치 안쪽, 그 다음번엔 종아리와 얼굴... 이런 식이었습니다.

빨갛게 올라오고 가려운 증상인데, 식중독으로 인한 두드러기와 비슷합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그냥 몸살 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일째 밤에 열이 가장 심했습니다.

체감으로는 40도 넘어간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인터넷 정보를 보니 39도까지 올라갔던 모양입니다.

이때 열로 인한 것인지, 독립적 증상인지, 끔찍한 두통을 동반합니다.

뭐랄까... 뇌가 삶아지는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겠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이고 아이고~ 끙끙~ 곡소리가 정말로 나오더군요. (신기하게도 곡소리를 하니까 좀 나았습니다. ㅋㅋ)

열대지방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듯, 인도네시아도 방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는데, 홀랑 벗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누워 데굴데굴 굴러 다녔습니다.

3일째 밤의 심한 열을 기점으로, 그 이후로는 간헐적으로 열이 오르긴 했지만 그리 심하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두통과 어지럼증이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뎅기열에서 가장 무서운 증상은 고열이 아니라, 극심한 식욕부진입니다.

참고로 전 지금껏 제아무리 아파도 입맛이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배탈이나 식중독에 걸려도요. ㅋㅋ)

그런데 뎅기열로 인한 식욕부진 덕에 '이런게 입맛이 없다는 거구나~'하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몸살 초기증상이 나타난 첫째날부터 식욕부진이 왔었습니다.

'오늘 밤부터 아플테니 잘 먹어둬야겠다.'하고 저녁식사로 주문한 그 맛있는 피자와 스파게티를 억지로 겨우 3분의 1정도 먹고 다 버렸습니다.

주방장이 바뀌었나, 더럽게 맛없네 생각했었죠... ㅎ

2일째부터는 도무지 입맛이 없어서 음식이 먹기 힘들었습니다.

고체 종류는 도저히 못넘기겠고, 달달한 꿀물이나 이온음료도 가끔 가다 두어 모금 정도 겨우 넘겼습니다.

그마저도 안먹으면 낫질 않으니 먹어야지 하면서요.

뭐가 됐든 목구녕 넘어가는 것들은 다 깔깔하니 불쾌하고 내장들도 거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담배 연기도 넘기는게 불쾌해서 앓는 내내 피우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3일째 되는 날엔 급기야 반나절에 걸쳐 억지로 억지로 몇 모금 씩 마셨던 음료들을 다 토하기까지 했습니다.

몇 모금 씩 마셨지만 그래도 반나절 모인거 확인(?)해 보니 1리터는 넘더군요. ㅋ

위로 밑으로 다 쏟고 나니 하늘이 노랗고 어질어질 하더군요.

뭘 먹어야 병을 이기는데, 도대체가 섭취하는건 하나도 없고 다 내보내기만 하니, 이러다 죽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가서 링겔 한 대 맞으니 정말 확연히 몸상태가 나아지더군요.

 

4일째부터 서서히 입맛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우엔 회복기에 들어섰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한 두 시간 앉아있기만 해도 어질어질 해서 누웠다가 잠들고, 허리 배겨서 일어나서 앉았다가 다시 눕고... 정상적인 생활은 아직 힘들었습니다.

7일째 어느 정도 나은 거 같아 회사에 출근하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찔어찔했습니다.

차 타고 가는데 경미한 진동에도 머리가 울리고 어지러워서 멀미가 났구요.

회사에서 밀린 일 보는데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지고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어느정도 일처리만 해두고 조퇴해야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차 안에서 어지럽고 속이 미식미식해서 꽤 힘들었습니다.

회복기에 무리하다 쓰러져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서, 다시 일주일을 내리 쉬었습니다.

열이나 몸살통증 등의 증상은 사라졌는데, 뭐랄까... 몸이 무겁고 시름시름 했습니다.

 

발병 21일째부터 출근은 하되 되도록 오전만 근무하고 조퇴하고 있습니다.

딱 꼬집어 뭐라 하긴 어려운데, 뭐랄까 아직도 몸이 좀 정상은 아닌듯 합니다.

활력이 없다고나 할까요, 뭔가 힘이 좀 없습니다.

금새 피곤해져서 잠도 대략 12시간 이상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통과 어지럼증이 24시간 내내 아주 약하게 남아 있다가, 차를 타거나, 머리가 어디에 살짝 부딪히거나 하면 어지럼증이 올라옵니다.

 

겪고 난 후 생각해 보니, (뭐 모든 병이 그렇지만) 뎅기열은 가난한 사람이 걸리면 사람 잡겠더군요.

아프다고 링겔 맞을 형편 안되고, 어지럽고 힘이 없어도 일 못하면 먹고 살 수 없는 처지라면...

 

심한 병 이겨내고 나서 몸이 많이 축난 모양입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겠죠.

그저 잘 먹고 무리하지 말고 쉬는 수 밖에요.

 

이번 일로 인해, 한 가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생겼습니다.

좋은 일은, 제가 걸렸던 뎅기 바이러스 종에는 평생 면역이 되었다는 겁니다.

나쁜 일은, 다른 뎅기 바이러스 종에 감염될 경우, 면역 과민 반응으로 뎅기 출혈열이라는 심각한 증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군요.

뭐, 괜찮습니다.

치사율은 1% 미만이고, 집중 치료와 적절한 수액 투여만 한다면 죽을 일은 없다니까요.

다만, 식욕부진은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뭘 좀 먹어야 병도 이기고 하는 건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