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의 연합 노조는 한국과 다릅니다.
한국과 같은 비장함이나 자기 희생, 정의감 따위는 없습니다.
모든 건 철저한 비즈니스입니다.
회사와의 분쟁 해결에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자가 찾아 오면, 어서옵쇼~ 열성적으로 고객맞이를 합니다.
세미나실을 제공하고 교육을 제공한다거나 단합대회도 지원하며, 고객 유치에 공을 들입니다.
금속조노, 섬유노조 등등 분야는 따로 있지만, 자기들 산업 분야와 아예 상관 없는 업종의 가입도 받아줍니다.
그렇게 해서 회원으로 받게 되면, 조합원 회비를 짜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입원들에게 다른 미가입 직직 동료들이 가입하도록 포섭하기를 독려합니다.
이를 위해 포섭 요령도 가르쳐 줍니다.
근무시간에 노조 가입을 권하면 징계나 해고 사유가 될 수 있으니, 화장실에서 하라던가 하는 식이지요.
다단계 사업과 유사합니다.
근로자들이 조합비 뜯기는 걸 감수하더라도 노조에 가입하는 이유는 '노조연합의 시위 지원'이라는 강력한 힘을 등에 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니도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기 때문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회의 자유가 있습니다.
시위는 허가 받을 필요 없이, 미리 신고만 하면 되니까 한국보다 낫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시위를 할 때입니다.
집회 신고까지는 인니 법을 준수하던 노동조합이 실제로 시위에 들어가면 폭도로 바뀌어 버립니다.
회사 대문을 부수고 들어가 설비를 때려 부숩니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우리가 했다'라는 군중심리는 극에 달합니다.
인니 경찰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를 고수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법 질서의 수호자'가 아니라 '다툼의 중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시시비비는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분쟁과 대치가 끝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폭동이 심한 상황에서 그들은 방관자로 한편에 서있다가, 한 풀 죽으면 (=다 박살나면) 그제서야 개입합니다.
이런 환경이다보니, 노조연합은 큰 부담없이 '동지'들을 분쟁이 발생한 사업장으로 지원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에 관한 비용은 신나게 깽판치고 난 뒤, 경찰의 중재로 협상할 때 회사에게서 뜯어내면 됩니다.
근로자들 입장에서 노조연합 단체는 제법 돈값 하는 지원업체입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에는 (진심이든 아니든) 비장함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무자비하게 때려잡았던 정권에 맞서 저항해왔던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니의 노동운동은 태생이 다릅니다.
인니도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군부독재가 정권을 잡았지만, 노동자들의 집단 저항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니의 전국 연합노조는 1997년 자카르타 폭동으로 군부 독재가 실각하고 나서야 태동했습니다.
그래서, 정의 구현을 위해 센놈에게 죽을 각오로 맞선다는 결기가 없습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입니다.
노동절 집회하겠다고 집결지로 행진하다가, 시골 길가에 홀로 떨어져 있는 공장에 괜히 들어가 유리창을 부수고 가기도 합니다. 이유도 없습니다. 노동절인데 일 시키는줄 알고 그랬다고 지껄입니다.
인니 경찰이 워낙 무용지물이다 보니, 능력 되는 사업가는 평소 군부대와 줄을 대놓았다가 시위가 터질 거 같으면 군부대를 회사 앞에 깔아 놓기도 합니다. (각 지역마다 군부대가 있어서 가능합니다. 총기 무장도 '은근히' 보이고 살벌합니다.)
그러면 연합노조에서 파견 나온 시위 조력자들은 그 모습 보고 있다가 흐지부지 사라집니다.
뭉쳐서 대치하다가 철수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 근처에 삼삼오오 흩어져서 그냥 행인인척 간보다가 흩어집니다.
한국 선입견을 갖고 인니 노조를 대하면, 그 뻔뻔함과 능글맞음에 당황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인니의 노조는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상대한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습니다.
(명분으로 앞세우기는 하지만) 정의, 의리 같은 개념이 없으니 협상이 유연합니다.
사업장의 자기네 조합원들보다 연합 노조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뒷돈으로 적당히 끝내는 딜을 치는 것도 가능합니다.
결국은 파업을 터뜨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배송이 있는 날로 딱 잡아서 사전 신고도 없이 기습적으로요.
배송 못하면, 거래처도 선적 못해서 최소 십만불의 클레임을 맞을 상황이었습니다.
정보는 사무직과 내통해서 빼갔더군요. 세상에 믿을 사람 없지만, 인니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같으면 정보 유출한 사무직은 얼굴도 제대로 못들 겁니다만, 여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멀쩡한 얼굴로 태연하게 다닙니다.
경찰은 아무 도움 안됐습니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 파업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회사 약점 언급하며 좋게 좋게 해결하라고 압박하더군요. 어차피 동네 경찰 새끼들도 퇴근하면 직원들과 삼촌 조카하는 사이고, 한두 다리 걸치면 다 친족입니다.
이런 일 정도는 몇 번 겪어줘야 인니에서 공장 관리 좀 해봤다고 반의 반의 반 정도 명함 내밀 수 있습니다.
Yamamotogomu라는 일본 업체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입니다.
시위자들이 공장 안에 난입해서 시위에 가담하지 않고 일하고 있던 작업자들을 위협해서 내보내는 장면이네요.
명백히 불법이지만, 공권력은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큰 업체도 군인 동원해서 정문 막지 않는 한 속수무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