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어느 지역을 가든 구해 먹는 아락 Arak (인니의 증류식 소주)
여기 것은 향이 좀 강했다. 지금껏 마셔본 것들 중 품질은 평범한 축이다.
500ml 3만 루피아. 당연히 밀주 유통이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밀주인 거지, 만드는 건 그냥 전통 방식이다.
안동 소주 비슷한 향이 좀 더 뻑뻑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소맥 만들어 마시면 향취가 꽤 특이하다.
향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특히 순 소주파, 그 중에서도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중 하나를 고집해서 마시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별로라고 했다.
이 거 마시고 머리 아픈 건 술이 나빠서가 아니라 과음했거나, 더운 날씨에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심리적 거부감 때문이다.
적어도 발리에서는 위험한 거 섞고 그러지 않는다.
발리 사람들이 정직하다거나 하는 순진한 소리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끼리 사고 파는 저렴한 술에 굳이 위험한 걸 섞어서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짜 양주는 있어도 가짜 소주는 없는 거랑 똑같은 이치다.
발리도 가짜 위험한 거 섞을 위험이 큰 건 비싸게 파는 양주 쪽이다. 특히 향이 천차만별이라 숨기기 쉬운 칵테일이 그렇다.
나와 아내는 내일 우붓에 가기로 했다.
친구 동생은 짱구로 간댄다. 예전에 갔었던 우붓이 어지간히 재미없었나보다.
아메드도 좋았지만 역시나 이 녀석 취향은 비치클럽 쭉쭉빵빵 서양 비키니 클럽음악 그쪽 취향이다.
근데 이 녀석, 이제 각자 갈 길 가는데 짱구까지 어떻게 갈지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아메드 왔을 적처럼 우붓까지는 나 가는데 묻어가서 거기서 짱구 가겠다는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그럼 우붓에서 짱구는 어떻게 갈지 정도는 나한테 물어보는 시늉이라도 해야하지 않나 싶은데... 허허...
나도 우붓 - 짱구는 가본적 없어서 모른다. 일단 정보는 검색해두면서도, 지금 상전 모시고 접대 여행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별로다.
현지에 산다고 해서 한국에서 온 손님 어디 모셔 다니고 길 닦아 드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허허...
아니다 싶으면 한소리 하는 성격이지만 베프인 친구 녀석 생각해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간다.
친형처럼 생각하나부지 뭐. 나이 먹을만큼 먹어도 막내 기질은 계속 있나보다.
오늘은 저녁에 와룽 아궁 말고는 일정 없이 각자 쉬기로 했다.
1시쯤 아내와 점심 먹으러 Green Lemon & Beach Bar에 갔다.
아메드 들어오다 보면 정면 해변에 보이는 랜드마크 옆에 위치했다.
여기 나시 고렝도 채소가 많고 아삭 식감의 '아메드 스타일'이었다.
특이한 점은 된장국 비스무리한 향이 났다는 거. 딱 한국인에게 익숙한 양념맛이다.
땅콩 소스도 치덕치덕 상당히 되직했는데 소스가 묽은 다른 곳보다 맛이 풍부해서 좋았다.
아메드 식당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대신 양이 적다.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인 게 아닐까 싶다.
여기는 저 흰옷 입은 아저씨들이 주차료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곳들은 받지 않았네.
루프트 탑이니 라이브 뮤직이니 하는 간판이 눈에 뜨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위치도 상당히 괜찮다. 3층에 올라서 보면 아궁산 전경과 쭉 뻗은 아메드 진입로, 해변 전경이 탁 트여 눈에 들어올 거 같다.
하지만 오늘은 무조건 와룽 아궁 가기로 했으니 다음에 기회 된다면 와보는 걸로.
밥 먹고 그냥 숙소 들어가기 맹숭해서 아메드 뒷산에 가보기로 했다.
지도상으론 아메드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포인트가 있을 거 같은데...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이다.
드문드문 조용하고 저렴할 것 같은 숙소들이 있었다.
으음... 길이 좀...
가봐야 경치 좋은 곳이 나올 지형이 아니다.
이 나무 사진만 찍고 되돌아 나오는 걸로.
한국인 눈에는 다 야자 나무 같아 보이겠지만, 이 녀석은 론따르 나무 Pohon Lontar 다.
열매 안에는 쫄깃쫄깃하고 아주 단 과육이 있다.
당분 때문에 자체 발효가 되는지, 즙이나 과육을 많이 먹으면 취한다.
술로도 만들 수 있지만, 보통은 그냥 디저트로 먹는다.
요쪽으로 가보면 괜찮을까 싶어 들어가봤는데...
현지인 마을이다.
해변길 따라 위치 좋은 곳에 레스토랑이며 숙소가 늘어선 중심가도 발리의 다른 지역에 비해 시골스러운데, 안쪽은 정말 빈한한 시골이다.
길 상태도 매우 안좋고, 집들도 썩 깔끔하지 않다.
외지인 관광객들이 좋은 지역에, 가난한 원주민들은 좋지 않은 곳으로 밀려 나는 건 관광지 대부분의 숙명이다.
어휴, 여기도 길도 빡세고 분위기가 좀 그렇다. 혼자 왔다면 계속 가볼만 한데, 아내랑 같이 와서 포기.
숙소에서 좀 쉬다 7시 라이브 시작 시간보다 일찍 와룽 아궁 아메드로 갔다.
주인 내외, 직원들이 아주 반갑게 맞이한다. 영어도 잘 통하지만, 현지어로 소통해서 형성되는 친밀감은 차원이 다르다. ㅎㅎ
오늘은 아주 작정을 하고 여러 음식 먹으려 배도 비웠다.
배고프니 나시 고렝도 시키고
미트볼이었던가 기억이...
새우 갈릭 버터. 버터 좋은 거 썼다. 저렴한 로컬 것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난다.
포크립도 당연히 시켰고...
음식들이 재깍재깍 나온다.
어제는 주문 한번에 밀렸던 게 맞나 보다.
피자도 대박. 라 보떼가 La Bottega 못지 않다.
특히 핫소스가 감동이었다.
이거 때문에 라 보떼가보다 피자에 점수 더 높게 준다.
혹시나 있겠나 싶어 타바스코 소스 있냐고 물으니, 카리스마 주인 아주머니가 씨익 웃으며 이 걸 갖다 줬다.
친환경 뭔 뭐시기인 모양인데, 타바스코 소스보다 맛이 더 좋았다.
몇몇은 어제 봤던 손님들이다. 딱 봐도 장기간 느긋한 일정으로 있었을 거 같은 분위기의 나이 지긋한 서양인들이다.
재미있는 건 대부분 어제 앉았던 자리 또 앉는다는 거.
눈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슬쩍 눈인사만 나누는 분위기다.
대장 개가 주방과 홀 왔다갔다 하는 주통로에 누웠는데 쫓지 않고 피해서 지나다닌다.
라이브 마치고 주인 아저씨와 얘기를 나눴다.
기분이 엄청 좋으셨는지 주인 아주머니에게 아락을 가져오라 시키신다. (손님들 앞에서 가오 당당하다가 나중에 등짝 맞을 거 같은 광경이었다. ㅋㅋ)
우붓 왕가에서 술 빚었던 분에게 배운 80년 전통 방식으로, 산골에 사는 주인 아저씨 친형이 직접 만든 아락이라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깔끔하고 좋은 아락이었다.
지금껏 마신 중 베스트였던 발리 면세품 공급하는 공장에서 뒤로 나왔다는 아락, 물 좋기로 유명한 플로레스 루뗑 지역 아락과 같은 수준이다.
발리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 지역 아락들 섭렵해왔는데 이 게 단연 최고라고 말씀드리니, 엄청 기분 좋아하면서 아저씨 친형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서 바꿔 주시고... 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이곳과 우붓 어느 업소에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비즈니스를 모색하는 모양이다.
숙소에서 구했던 아락은 특유의 향이 강해서 별로라던 친구 동생도 이 아락은 마음에 쏙 든다며 한 병 바로 샀다.
잔술만 팔아서 아직 한 병 가격이 딱 정해진 건 아니라며 10만 루피아 받았다.
평소엔 무뚝뚝한 무표정인데 활짝 웃으면 정감 훅 느껴지는 카리스마 아주머니. ㅎ
다들 떠나고 우리도 떠나고.
아직 안가고 남은 서양인 손님들 마지막 팀이 아저씨에게 노래해도 되냐며 반주를 부탁한다.
이때가 9시 45분. 어지간해도 10시 넘어서까지는 버티고 있을 분위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