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

[동네 산책] 2. 찌까랑 집 - 대형마트 - 한인마트

명랑쾌활 2024. 6. 4. 23:36

taman의 사전적 의미는 '공원, 정원'이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유원지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주택단지는 원래 쁘루마한 Perumahan 이지만, 따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곳이 워낙 많아서 주택단지라는 뜻도 생겼다.

주택들 있는 지역 입구에 '따만 뭐시기'라고 붙어 있으면 '뭐시기 주택단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리뽀 찌까랑에도 여러 주택단지가 있는데, 그 중 나는 따만 매도그린 Taman Meadow Green 에 산다.

이곳에 10년 가까이 살아서 '우리 동네' 같은 느낌이다.

가장 오래됐고, 중하층부터 중상층까지 거주민 계층 폭이 가장 넓다. 그래서 주택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살고있는 외국인들 국적 종류가 가장 다양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터키 등등)

가장 오래된만큼 위치도 좋다.

쇼핑몰과 종합병원, 한인 식당과 마트가 밀집한 싱아라자 거리에 도보로 다니는데 불편이 없다.

 

인니 사람들은 나무 참 좋아한다.

주택단지에서 조성하기도 했지만, 자기 땅에 좋아하는 나무를 심어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지반 옹벽이 밀려나 기울어지면서 화살표 쪽 지반이 내려 앉았다.

옹벽 밑 빗물 배수로 콘크리트 덮개는 밀려서 부러져 솟았다.

인니는 지을 때도 대체적으로 부실하지만, 유지보수 관리는 더 취약하다.

 

촌스러워 정겨운 애들 놀이터

과외 빡빡하지도 않으니 동네 아이들 모여서 놀 만도 한데, 취학 전인 꼬마애들 두엇이 노는 거 몇 번 봤다.

오히려 시골 마을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 모여서 축구하는 건 자주 봤다.

오랫동안 저절로 형성된 마을이 아니고 조성된 주택단지라, 주민들이 다들 외지 뜨내기여서 유대감이 형성되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살면서 마을 주민들이 나한테 이러쿵 저러쿵 했던 적이 없다.

이웃들 교류 가까운 게 감정 피곤한 내게는 편한 환경이다.

한 다리 걸치면 모두 친척인 집성촌에서 살면서 생사람 잡는 뒷소문에 기분 상하는 일 많이 겪었던 아내도 이런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만족스럽댄다.

 

고급 주택단지라 단지 내에 큰 길이 배치되어 있다.

저가 서민 주택단지는 차 한 대 반 너비 도로만 있어도 고급 축에 속한다.

 

하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거의 폐가가 되어버린 집.

집주인에게 다른 사정이 있어서 신경 못썼을 수도 있고, 유산 상속이 복잡해서 방치됐을 수 있다.

 

양옆의 집들은 멀쩡하게 사람들 살고 있다.

일단 주택단지가 부동산 기업의 사유지고, 다시 각 주택의 토지와 건물은 개개인의 사유지라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인니는 개인의 사유재산과 생존권에 대한 존중 개념이 한국보다 훨씬 강하다.

집값 사수가 모든 도덕적 사회적 가치를 뛰어 넘는 한국이라면 벌써 난리가 나서 뒤집어졌을 거다.

평소엔 개인적이다가도 집값 문제엔 온동네 사람들이 똘똘 뭉쳐 초법적인 조리돌림을 할테니까.

 

앞마당에 한 켠에 수족관을 만들어 잉어를 키운다.

취미로 물고기나 새를 키우는 사람도 많다. 한국보다 생활 수준은 낮을지 몰라도 삶의 여유는 높다고 생각한다.

 

잔디밭 같은 거 밀어버리고 깔끔하게 타일 싹 깔고, 위에도 캐노피 깔끔하게 덮어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 한 것으로 보아, 집주인이 중국계일 가능성이 높다.

10여년 살다 보니 느낌 만으로 어느 정도 구분이 된다. 가난한 집은 그딴 거 없지만.

취향따라 꾸미는 것도 먹고 살만해야 할 수 있는 거다.

 

화분에 각종 채소나 향신료, 허브를 키우는 집도 있다.

키 큰 식물은 옥수수고, 작은 것들은 각종 향신료와 허브, 아보카도 묘목도 있었다 ㅋㅋ

원래는 저기에 키우는 거 당연히 안되지만, 인니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나라다.

집앞에 인니 국기 꽂아 놓은 걸로 보아 집주인이 공무원이나 뭔 힘깨나 쓰는 단체 간부일 거 같다.

 

길 위에 주렁주렁 널부러져 뒹굴거리는 고양이들.

고양이들 살기에는 한국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괜찮은 나라다.

 

멀쩡한 길을 막아버렸다. 인니는 주택 단지 관리 회사의 자체 결정으로 멀쩡한 길 막거나 여는 조치를 되게 쉽게 한다.

주택단지 입구 바로 앞에 이어지는 길이라, 진입하는 차량 붐빌 적에 이 길로 나가는 차량이 방해가 되어 막은 게 아닐까 추측한다.

덕분에 길 막힌 쪽에 사는 사람들은 입구 바로 옆에 집이 있는데도 집 앞에 주차하려면 한참을 돌아야 한다.

공권력이 아닌데도 그 때문에 불편을 겪는 주민이 힘 없으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이 끝집 주인, 가장 피해를 보게 된 위치의 집 주인이 한국인인 걸로 알고 있다.

 

주택단지를 나서서 몰 리뽀 Mall Lippo (쇼핑몰 이름) 쪽으로 가는 길

한국 기준으로 보면 샛길이나 다름없지만, 이정도로 보행자 전용 길이 조성된 곳 드물다.

리뽀 찌까랑은 리뽀라는 부동산 개발 그룹에서 조성한 고급형 타운이라 있는 거고, 정부 관할의 일반 도로는 보행자 도로가 아주 취약하거나 혹은 아예 없는 곳이 흔하다.

 

재미있는 점은 이 차도와 보행자 길이 분명히 공공도로라 공권력의 통제를 받지만, 유지보수는 리뽀 그룹에서 관리한다는 점이다.

잔디를 깎거나 조경 관리, 비가 장기적으로 오지 않아서 스프링쿨러로 물 뿌리고, 쓰레기를 줍는 등의 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리뽀 관리사무실에서 고용하고 급여를 준다.

한국에서만 산 사람은 이해가 잘 안갈텐데, 이를테면 철산동 같은 동네 하나 정도의 구역 전체를 소유한 부동산 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아 그 안에 쇼핑몰, 종합병원, 호텔, 상가 등등을 직접, 혹은 불하를 해서 하나의 타운을 조성하는 개념이다.

타운 안의 도로나 배수로, 수도 시설도 자체적으로 매설하고, 전기도 공기업과 공급 계약을 맺어 인프라를 조성한다.

한국은 전기 공급이 정부의 의무라는 개념이 강하지만, 인니는 기업 대 기업의 비즈니스 개념이 강하다. 그래서 전기가 안들어왔거나 전력이 부족해 정해진 시간에만 공급하는 낙후 지역이 아직도 많다.

허가권은 정부가 쥐고 있으니 공권력과 치안 관리는 정부 관할이지만, 인프라는 민영 기업이 조성했으니 관리 권한도 기업이 갖는 개념이다.

그래서 살기 좋냐 하면, 아주 좋다.

도로가 파손되면 정부 관할 도로는 정부가 워낙 돈이 없고 눈먼 돈 빼먹는 부패 관료들이 많다 보니 세월아 네월아 언제 보수될지 모르지만, 기업이 관리하는 도로는 보수 조치가 '비교적' 빠르다. 늦어도 1년은 안넘긴다. (엄청 빠른 거다.)

경찰들도 잘 보이지 않고, 자체 치안 관리 차량이 순찰을 돈다.

경찰이 잘 안오면 치안 불안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인니 경찰은 방해만 되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쓸데없이 도로 막고 차량소유증 검사나 해서 교통체증이나 일으킨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사설 방범대지만 관할 경찰서 허가를 받아야 하고, '준경찰'로 대우한다. (경찰 부하)

 

몰에 가까워지면서 갓길 주차를 한 차량들이 늘어서있다.

그랩 콜 기다리는 차량들이다. (우버 같은 사설 콜 택시)

저런 차량들 주차 단속도 사설 방범 차량이 한다. 딱지 끊고 그러진 않는다.

주차 통제 빡빡하지도 않다. 출퇴근 붐비는 시간 아니면 그냥 둔다. 그 시간대면 차들이 알아서 빠지고.

사이렌 울리면서 차 빼라고 신호 주면 다들 뺀다. 니가 뭔데 빼라 마라냐고 개기는 사람 절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니에서 방범대원은 '준경찰'이다. 평소 관할 경찰들을 상관으로 알아서 모시는 만큼, 트러블 있어서 경찰에게 연락하면 바로 와준다. 당연히 부하인 방범대원 편을 들어줄 거고.

이 개념을 몰라서, 한국에서 경비원을 개죠스로 봤던 한국인이 인니에서 방범대원이나 경비원 깔보고 개겼다가 쪽당하는 경우 많다. (나도 한 번 겪었다. 그리고 정신 차렸지. ㅋㅋ)

반대로 경비원을 존중해주면서 안면을 틔우면 곤란하거나 아쉬운 상황 처했을 적에 배려해준다.

 

몰 입구엔 당연히 앙꼿 Angkot (작은 봉고차 버스) 이 늘 정차하고 있다.

이건 인니 전국 어디든 마찬가지다.

몰 입장은 입구에 앙꼿이 자리 잡고 있으면 도로 복잡해지고 번잡스러워 보기도 안좋으니 자기네 몰 바로 앞 말고 떨어진 곳에 세우길 원하는 게 당연하다. 거기서 몰까지는 조금만 걸어오면 되니까.

하지만 인당 요금 몇 백원씩 박박 긁어모아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앙꼿 입장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정차하면 손님 몇 명을 잃게 된다. 다른 앙꼿이 몰 앞을 처언천히 지나가며 슬그머니 승객 태우면 고스란히 빼앗기는 셈이다.

그래서 앙꼿은 죽어도 몰 바로 앞에 정차를 한다.

그 대단한 '준경찰' 경비원도 앙꼿은 함부로 못건드린다. 앙꼿은 가장 험한 직업 중 하나라서 그렇다.

잃을 게 없고, 조금만 잃어도 끝장인 사람들이라 잘못 건드렸다가 퇴근하다 무슨 해꼬지를 당할지 모른다.

 

몰 리뽀 정문

찌까랑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정문 왼쪽 매장이 오랫동안 J CO 도넛이었는데 문 닫았고, 스타벅스 들어온다고 한참 공사중이다.

스타벅스는 전세계를 정복할 모양이다.

 

몰 리뽀 정문 앞에서 길을 건넌다.

신호 없이 횡단하는 거 어려워하는 한국인들 많던데, 난 벳남에서 단련되어서 이정도는 케잌 조각이다.

벳남 사람은 이정도 길은 눈 가리고 문워크로도 건널 수 있을 거다.

 

워터붐 (워터파크) 크리스마스 행사 홍보 현수막이 아직도 걸려있다.

열대지방답게 산타 모자는 썼지만 웃통은 벗고 있다.

하의 체크무늬는 발리 고유의 문양이다.

워터파크 소유주가 발리 사람인데, 그냥 부자가 아니라 돈이 아주 많은 부자라고 한다.

그러니 코로나 기간 내내 폐쇄했는데도 버틸 수 있었겠지.

 

베벡 발리 Bebek Bali 레스토랑이 보인다.

돈이 아주 많으신 워터파크 사장님이 인니 가수들을 애호하시는 덕분에 공연 가수들 대우가 후하다고 한다.

부자의 스케일이 남다른 취미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덕에 라이브 공연 수준이 높은 레스토랑이다. 자카르타에도 알려진 명소라고 한다.

요즘은 베벡 발리 옆 (사진 왼쪽) 마사지 샵을 닫고 새롭게 연 라이브 카페, 발리 테라스 Bali Terrace 가 핫하다고 한다.

소문을 듣자하니 젊은 한인 교민들이 많이 오는데, 여자 후리는데 환장한 한인이 술 취해서 여성 손님에게 추태 부리는 사고가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하다.

좋을 때다. 나도 한참 환장해서 날리던 시절이 있었지. ㅋㅋ

 

찌까랑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인 싱아라자 Singaraja 거리 입구

싱아라자는 발리 북부의 도시 이름이다. 리뽀 찌까랑 지역 내 도로 대부분은 인니 타지역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인지 길 입구에 가푸라 Gapura 가 있다.

 

가푸라 Gapura. 발리 전통의 출입구 전통 양식. 신들이 지나는 통로라는 의미도 있다.

 

싱아라자 Singaraja 거리

무궁화 마트를 비롯해 다수의 한식당, 한국식 당구장, 한국식 스크린 골프장이 있다.

또 다른 한인 업소 밀집 지역인 루꼬 유니온 Ruko Union 은 회사 회식이나 접대 손님 위주 상권이라 한식당이나 가라오케가 많고 대체적으로 가격대가 비싼 반면, 싱아라자 거리 업소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루꼬 유니온은 회사 공금 쓰는 곳, 싱아라자 거리는 사비로 먹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2016~2018년 쯤, 평일 낮 시간 싱아라자 거리에 배회하는 청년들이 자주 눈에 뜨였었다.

인니어 배우기는 했는데 취업은 못하고, 귀국하기는 애매해서 한국 집에서 용돈 받아가며 버티는 청년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디 갈 데는 없고 할일도 없으니, 비슷한 처지끼리 형동생친구 먹고 어울려 당구장이나 PC방 (지금은 폐업함) 갔다가 비교적 싼 술집 전전하며 시간 죽이는 거다.

야간업 아가씨 양다리에 서로 자기 애인이라며 술취해서 길거리에서 치고박는 꼴도 봤었다.

그러다 팬데믹 사태 터지고 싸그리 사라졌다.

야속한 말이지만, 그 친구들에겐 팬데믹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본다. 한국 돌아갈 그럴듯한 핑계가 됐으니.

 

스타일리스틱 Stylistic 카페 겸 가라오케가 있던 자리. (가라오케는 아직도 영업함)

싱아라자 한창 날릴 적엔 건물 사이 공터에 테이블 쫙 깔고, 프로젝터 스크린과 노래방 기계 반주에 노래도 부를 수 있었다.

사장님이 술 취해서 기분 좋을 때면 자기 부르고 싶은 노래 몇 곡 줄줄이 뽑던 게 기억나네. (노랜 겁나 못했음)

뭐 대단한가 싶겠지만, 인니는 무슬림이 대다수라 길거리 야외에서 테이블 깔고 음주를 할 수 있는 곳이 자카르타에도 없었다. 관광지도 힌두교가 대다수인 발리 정도나 가능하다.

 

싱아라자 거리는 2010년 전후가 최전성기였다.

당시에는 노변에 테이블 깔고 술 파는 업소가 즐비했고, 야간업 아가씨들이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영업 걸고 그랬다.

그러다 이슬람 강성이 버까시 Bekasi 군수로 당선되고는 싸그리 날라가 버렸다.

저녁이면 이슬람 감찰대(?) 같은 공무원들이 대여섯씩 몰려다니며 업소 적발하고 다니고 그랬다.

그 후로 2017년 무렵부터 불경기로 한인 기업들이 중부 자와 쪽으로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일본과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면서, 한인 업소들도 줄어들고 일본, 중국 업소가 늘어났다.

그러다 팬데믹 터져 상권 확 죽어서 몇 군데 빼고는 버티다 버티다 대부분 떨어져 나가게 됐고.

현대자동차와 벤더 업체들 들어오면서 작년부터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싱아라자 거리 반대편 진출입로

사진 오른편 하늘색 건물은 쁘라마타 Pramata 병원

리뽀 찌까랑에서 가장 나은 실로암 Siloam 병원보다 한 단계 떨어지는, 그래도 나름 응급실 갖춘 종합병원이다.

가격도 실로암보다 약간 저렴하지만, 개돌팔이 악질 의료 장사치니까 절대 가지 말길 권한다.

뎅기열 걸렸을 적에 한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여기 갔었는데,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더 뜯겠다고 별별 주사약 짜넣는 개수작을 벌여서 학을 뗐다.

팬데믹 때도 실로암은 코로나 거점 병원 역할 버텼는데, 여긴 그냥 문 닫아 버렸다가 팬데믹 끝나고 영업 재개했다.

병원이 철저히 민간 사업 논리로 운영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집에 가려면 다시 길을 건너야 한다.

 

주택단지 입구

여기쯤 오면 난 '집에 왔다'하는 기분이 든다.

 

무뚝뚝하게 지나쳐도 상관은 없지만, 경비소 지나치면서 경비원에게 가볍게 인사 주고 받으면 언젠가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경비원은 '준경찰'이다.

한국처럼 고용인이라 깔보고 거만하게 대하다 큰 코 다친다.

이 사람들 업이 업이라 그런지, 외국인 얼굴 잘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