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작은 아버지는 키가 140cm도 채 안되고 머리가 큰 난장이 체형에 다리를 살짝 절었다.
이미 심각한 알콜 중독이라 눈이 싯누랬다. 늘 술에 취해있어서 숨 쉴 때마다 술냄새가 났다.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소주만 마셔서 깡말랐다. 엄청 목마른 사람이 시원한 물 마시는 것처럼 병채로 콸콸 마시는 모습도 종종 봤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민물고기 찜의 그 끔찍한 비린내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마 내가 생선 비린내에 민감해지게 된 탓에 일정 부분 작용했을 거 같다.
작은 아버지는 자기보다 더 작은 작은 어머니와 결혼했고, 부부싸움이 잦았다.
작은 어머니에게 폭력을 썼다. 눈에 멍이 든채 동네가 떠나가라 바락바락 대들던 작은 어머니 모습도 기억난다
두분은 결국 이혼하셨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난 아직 초등학생이었고, 기억하는 건 그게 전부다.
친척 어른들에게 작은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게 거의 없다.
작은 아버지 관련해서는 좋은 추억이라고 얘기해 줄 게 당최 없으니 그렇지 않나 싶다.
몸이 그렇게 된 건 어릴적 나무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쳤기 때문이라던가, 나무에서 떨어진 게 손윗 누나인 고모 탓이라던가, 작은 어머니가 원래부터 불임이라는 사실을 사돈집에서 숨기고 결혼 시켰다는 게 들통 나서 이혼했다는 것 정도.
하긴, 하구한날 폭력을 쓰고 두집 살림을 해도 어지간하면 이혼하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나 초등학교 2학년이던가, 3학년이던가였을 때,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마흔 살도 되기 전이셨다.
내 형은 종손이었으니 꺼리는 바가 있었는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상주가 됐다.
화장을 했다. 매장할 선산은 있었지만 부모(내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했기 때문이었다.
뼛가루는 밥과 섞어서 어느 야산에 뿌렸다.
어른들은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고서, 내가 뿌리는 걸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거기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선산이 있던 방면이지만, 한참 떨어진 곳으로 짐작한다.
어린 시절 몸이 그리 됐으니 아마도 평생 행복한 기억이라고는 거의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자녀도 없고, 죽음을 기릴 묘나 납골당도 없다. 술 말고는 딱히 귀하게 챙겼던 것도 없어서, 유품도 없다.
낚시대는 아꼈던 걸로 기억하지만 흔한 거였고, 돌아가신 후 옷가지랑 전부 태웠다.
그야말로 세상에 남은 흔적이 없다.
아주 가끔 작은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과연 난 아무 흔적도 없이 떠나는 삶에 의연할 수 있을까.
세상은 별 탈 없이 2020년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