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후배가 내게 고민을 털어 놨다.
임신을 했댄다.
상대는 남자 후배였다.
남자 후배가 어떻게 해보려고 꼬신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고, 하필 임신까지 하게 된 거다.
바로 남자 후배를 불렀다.
남자 후배는 당황했다.
여자 후배와 따로 이야기를 해도 되겠냐고 한다.
그러라고 했다.
둘이 나가자, 같이 내내 지켜봤던 여자친구가 내게 말했다.
저 남자 낙태 생각하는 거 같다고.
나는 그래 보인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난 두 사람이 결정할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분개하며, 나도 그런 사람이냐고 했다.
개좆같은 소리하지말라고 쏴붙이려다, 정의감에 불타오른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고 참았다.
정의감에 도취된 사람은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규정하기 십상이다.
여자친구에게 조근조근 말했다.
난 저 두사람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다고.
네 말을 듣고 출산을 했을 경우,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혹시라도 두 사람의 삶이 안좋게 된다면, 넌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봤냐고.
책임질 수 없는 것에 선을 긋는 것은 악한 게 아니다.
책임질 수 있을 정도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선하면 된 거다.
사람 병신 만드는 경우의 절반은 악한 사람 때문이지만, 나머지 반은 책임지지도 못할 선의로 참견하는 사람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