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한국-외국 커플 유튜브 채널들을 보다 느낀 묘한 점

명랑쾌활 2020. 12. 2. 12:09


최근 한국-외국 커플의 유튜브 영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워낙 많아 이제 하나의 장르처럼 형성되었을 정도다.

한-외 커플 영상은 크게 '이미 결혼한 사이'와 '이제 결혼할 사이'로 나눌 수 있다.

이미 결혼한 부부의 영상 컨텐츠들은 대체적으로 소소한 일상 위주의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라 밋밋하지만 안정적이다.

당연하다. 부부가 함께 사는 건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이다.

가끔 여행지에 놀러가기도 하지만, 생활이 주다.

이런 컨텐츠들은 정상적이고 평범하다.


반면, '이제 결혼할 사이'라는 한-외 커플 영상 컨텐츠는 좀 다르다.

뭐랄까... '여행 + 예쁜 현지인 여성 + 가상 결혼 페이크 다큐'랄까?

여행 관련 컨텐츠는 좋지만, 이제 차고 넘쳐 식상하다.

노출도 높은 의상을 입은 늘씬하고 예쁜 현지인 여성이 수시로 나오는 영상은 '그림이 좋다'.

거기에 알콩달콩 꽁냥꽁냥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흐뭇한 느낌도 난다.

이 셋을 조합하면 그럴듯한 컨텐츠가 된다.

이런 컨텐츠를 다루는 채널이 구독자 상승에 성공했고, 비슷한 컨셉의 신규 채널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현지 생활 장단점이나 괜찮은 여행지, 현지 문화 차이 등등의 평범한(?) 컨텐츠를 올리리다가 돌연 한-외 커플 컨텐츠로 전향한 유튜버들도 있다.


사실 이런 컨텐츠의 원형은 한참 예전에 이미 있었다.

'동남아 여행 + 현지인 여성 + 가상 결혼'

뭐 떠오르는 거 있지 않나?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애초에 돈 벌자고 유튜브에 영상 올리는 거다.

유튜브 수익은 전적으로 구독자의 호응에 달렸다.

하지만, 한국인만큼 자신의 도덕성에는 너그러우면서 남의 도덕성에는 엄격한 민족이 어디 있던가.

자극적이어야 하지만, 도덕적 비난을 받아선 안된다. 그러려면 가상 결혼이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결혼해서도 안된다. 부부 사이는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결혼할 사이, 즉 '금전을 매개로 한 엔조이가 아닌 진실한 관계'여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


결혼할 사이... 말은 좋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말해 봐야 어떻게 믿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
정부 기관의 증명을 제외한다면, 남녀 관계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인증은 부모의 허락이다.

대부분의 한-외 커플 채널들에 여성 측의 부모가 결혼을 허락하는 영상 컨텐츠가 필수 요소라도 되는 양 어김없이 나오는 이유다.

부모 인증 영상이 여의치 않았는지, '여성 측의 오빠라는 사람이 커플이 있는 여행지로 와서' 둘 사이를 허락하는 영상 컨텐츠를 올린 채널도 있다.

부모, 혹은 손윗 가족이 허락했다는데도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패드립이나 다름 없다.

이로써 '결혼할 사이' 인증 관문을 통과한다.

한-외 커플은 구독자들로부터 '결혼한 사이'라는 진정성을 인정 받는다.


사실 상당히 허술한 인증이다.

애초에 진짜 부모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설령 진짜 부모라 하더라도, 여성 측 부모 집에 방문하는 컨텐츠를 보면 생활 수준이 대부분 중산층 이하다.

부모가 계약 관계라는 걸 양해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여성측 부모에게 선물을 하거나, 장사하는 곳에 가서 물건 몽땅 사주고, 여성측 부모가 함빡 웃으며 감격하는 장면을 보면, 남이 삼처사첩을 거느리든 말든 별 상관 안하는 내 성격에도 혐오감이 치민다.

외국 문화의 특수성이고 지랄이고, 부인될 사람의 부모 면상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금전적 보탬을 주는 장면을 찍어 불특정 다수 아무나 볼 수 있는 곳에 올리는 게 과연 정상일까?

그런 '감동적인 장면'이 진정성에 대한 증거라고?

하지만 구독자들에겐 상관 없다.

법적으로 인정된 결혼이 아닌 이상, 어차피 더 이상의 증명은 끝도 없다. (더군다나 재미도 없다!)

부모가 인정했다면 도덕성의 경계는 넘은 거다.

구독자들은 이제 커플의 진정성을 믿어도 된다.

아직은 부부가 아닌 그들을 응원해도 도덕적으로 꺼림칙하지 않다.

혹시 훗날 거짓으로 밝혀져도, 그들을 욕하면 된다. 그들이 나쁜 거니까.

허술하지만, 그럭저럭 적당히 허술한 인증이다.



그냥 둘이 꽁냥거리며 관광지 돌아다니는 영상들 올라왔을 적엔 그냥 그런갑다~ 했다.

여성도 구김없이 밝고, 남자도 무시하는 기색 없이 예의 바르고.

말이야 결혼 전제로 한 진지한 관계라는데, 해야 결혼이지 아니면 남이다.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니다.

컨텐츠에 나오는 여행지 정보만 거짓이 아니면 된다.

그런데 왜 난데없이 부모 인증 영상이 나오는지.
다른 한-외 커플 채널들도 이거든 저거든 다들 약속이라도 한듯 여성 측 부모 허락 컨텐츠를 올리는 현상을 보니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끄적 거렸다.
당사자들 간에 벌이는 일은 당사자끼리 지지고 볶고 감당해야지, 가족까지 파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혹여 진짜 진지한 관계라면 더더욱 그러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여담 하나.
모 국가의 한-외 커플이 헤어진 일이 꽤 이슈가 된적 있었다.
워낙 알려진 유튜브 채널이라 어느 나라인지만 밝혀도 뻔히 알만한 커플이다.

여성측 부모 허락도 받고, 이제 결혼만 하면 된다 하면서 집 얻고 살림살이 채우더니, 돌연 헤어진댄다.

남자는 이미 얻은 집과 한 번도 쓰지 않은 살림살이 모두 여자에게 넘기고 쿨하게 맨 몸으로 떠난댄다.

이후 남자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영상이 올라왔는데, 상심을 애써 누르고 마음 추스리려는 모습이 짠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고작 3주 만에 새로운 여성과 썸타고 있다는 영상이 쑝쑝 올라온다.

아무리 사람마다 다르고, 금새 마음 추스리는 사람도 있다지만, 이건 뭐지?

가볍고 쾌활한 이미지였다면 모를까, 진솔하고 상냥한 캐릭터로 계속 나왔었는데?


하는 짓이 하도 신기해서 구글링 좀 돌려봤는데...

ㅋㅋㅋ 아놔 이 재밌는 새퀴 다 거짓말이었다.

예전부터 부지런한 밤의 사나이였고, 커플이었던 여성도 그쪽 세계에선 꽤 유명하더라.

카더라 하는 글뿐만 아니고, 사진과 영상 증거까지 확인했다.

몇몇 영상들은 이미 비공개 처리 됐지만, 확인한 것만도 진실 판단에 충분했다.

어쩐지 한창 달달한 영상들 올리던 중에 뜬금없이 커플 여성 만나기 전에 잠깐 누굴 만났다느니, 좋은 사람이었으나 자신이 부족했다느니 하는 자기 고백 영상을 올리더라니, 의혹과 증거들이 돌아다녀서 그랬던 거였다.

딱히 밉지는 않다. (뭐 짠하게 생각했던 감정 낭비는 좀 열받지만)

<우결> 한 번 거하게 찍은 거야 뭐 이 친구 뿐이랴. 지금도 진행 중인 채널들이 흔한데.

하지만 그 진실하고 선량했던 태도 연기와, 헤어짐과 상심까지 컨텐츠화 한 심지는 좀 감탄스러웠다.

시즌 2가 너무 빨리 나왔다는 게 흠이지만, 어쩌면 그야말로 본인의 진짜 성격일수도 있겠다.

꽤 오랫동안 결혼을 전제로 같이 살던 여성과 헤어지고 나서, 마음 추스리고 다른 여성 만나기까지 '본인 기준'에는 3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친구 보니, 내 인생 통털어 가장 특이했던 예전 어떤 인간이 떠올랐다.

자신의 거짓말을 자기 스스로도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에도 안잡힐 유형이 그리 흔하겠나.

그런 특이한 유형을 또 보게 되니 신기하다.

그에 관련해서 생각 좀 정리해서 나중에 끄적여 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