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 청소만 하는 것으로 계약한 가정부가 있었습니다. (인니니까요. 월 4만원 정도 했습니다.)
전 혼자 살았고, 회사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와서 집청소를 하고 갔습니다.
가정부가 왔다 가면 세면대 선반에 놓인 칫솔, 비누, 헤어 왁스 등의 위치가 매번 바뀌었습니다.
물건들을 순서대로 칼같이 정리를 해야 하는 강박 같은 건 없습니다만, 물건을 쓰면 있던 자리에 놓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놓다보면 자연스레 제자리가 정해집니다. 물건의 위치 역시 자연스럽게 머리에 입력되고요.
근데, 그 위치가 계속 바뀌니 은근 스트레스더군요.
매번 원래 위치로 돌려 놓았지만, 가정부는 계속 물건의 위치를 바꿔 놓았습니다.
외국에 살다 보니, 사소한 일에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게 익숙해졌습니다.
일일이 고집부리다가는 정신이 버텨내질 못하니까요.
물건 위치가 바뀌는 문제 역시 가정부 나름의 고집과 방식이 있나보다 하고 포기했습니다.
가정부가 바꿔 놓는 위치에 제가 적응하면 될 일이지요.
그래서 물건을 쓰고, 가정부가 놓은 자리에 그대로 돌려 놓았습니다.
물건을 쓰면 있던 자리에 놓는 습관은 여전하니까요.
그런데, 다음 번 청소 후, 물건의 위치는 또 바뀌어 있더군요.
가정부가 놓은 순서대로 둔 건데, 가정부가 또 바꾼 거지요.
그 때 깨달았습니다.
가정부는 애초에 정리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걸요.
청소하느라 치우고, 다시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얹어 놓은 거였습니다.
청소를 한다는 건 정리를 한다는 거고, 정리를 한다면 어떤 규칙이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착각한 거죠.
저 혼자 고정관념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저 혼자 상대를 너그러이 이해한답시고 저 혼자 헛지랄한 겁니다. ㅎㅎ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은 좋지만, 자기 고정관념으로 타인을 재단하고서 이해해버리는 건 아닌지 늘 주의하게 됩니다.
제멋대로 이해하거나 동정하는 건, 제멋대로 오해하거나 미워하는 것만큼이나 꼴사나운 짓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