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시사

미투에 대한 다른 시각 - 급속한 사회 변화의 부작용

명랑쾌활 2020. 12. 25. 09:41

범죄에는 공소 시효가 있다.

법이 바뀌거나 새로 생겨도, 그 이전에 발생한 해당 범죄에는 적용할 수 없는 불소급의 원칙도 있다.

하지만, 괘씸죄에는 공소 시효가 없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고작 30년 전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 야만적이고 미개한 법도가 당연하게 받아 들여졌다.

변변히 벌어 오는 돈도 없이 여기저기 기웃 거리고 술 몇 잔 얻어 먹고 취해서 돌아온 남자가 집에 돌아와, 하루종일 날품 팔아 살림 꾸려가느라 녹초가 된 부인에게 술상 차리라고 해도 군말 없이 갖다 바치던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거실 가장 좋은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 자식에게 담배와 재떨이 가져오라고 시켜 온가족이 있는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권위적인 모습이 멋지다고 우러러 보던 아들이 지금은 쌩쌩한 40~50대다.


성희롱 하면 처벌 받는다는 법이 생긴 게 고작 10여 년 전이다.

그 전에는 그 게 그렇게 죽을 죄는 아니었다.
천인공노할 파렴치한 놈이나 저지르는 짓이 아니었다.
그냥 그럴수도 있는 좀 짓궂은 짓일 뿐, 스스로 나쁜 짓 한다는 인식도 없었다.

그리고, 그 때 그랬던 걸로 지금 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매장 됐다.

그 땐 다 그랬다는 말로 변명하는 건 더 비루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회에서 매장되어 사라졌다.


그러니 봐주라는 뜻이 아니다. 그럴 자격도 없다.

복수와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다.

악의가 없었더라도 그로 인해 고통 받은 피해자가 있다면, 응당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당시 사회의 관행들을 생각 없이 그대로 따랐다가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에게 측은함 느낀다.

생각 없이 행동한 죗값


다행히도 난 딱히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

인지를 못해서 기억 자체가 없는 거라고 한다면 뭐 반박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애초에 난 그런 마초적인 면인 없었을 뿐이다.

그런 행동들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성격적으로 그런 짓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운이 좋았던 거다.

그래서 그 때, 그 게 죄가 아니던 시절에 죄라는 인식도 없이 지었던 죄를, 죄가 되는 시절이 되어 죗값을 받는 사람들이 측은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죄가 아닌 행동들 중에, 30년 쯤 후에는 죄가 될지도 모를 것들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세상은 참 빨리도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바름은 알기 어렵다.





90년대 중반 출시된 뽕따의 포장 디자인은 이랬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매우 저속하고 여성 비하적인 그림이겠지만, 당시엔 저어어언혀 문제되지 않았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도 아무 느낌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게 아니다.

만약 이제 와서 저 그림 디자인 관계자들 찾아서 조리돌림하고 빙그레 제품 불매를 한다면, 그게 정상이냐는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