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반에 눈이 떠졌다.
온몸이 쑤시다 못해 뒷목까지 근육통에 욱신거린다.
엉덩이가 아파서 변기에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다.
아침 7시, 갓뜬 해로부터 비스듬하게 치고 내려오는 햇빛이 벌써 마치 한국의 가을 한낮처럼 쨍하다.
조식 메뉴는 어차피 팬케잌 한 가지 밖에 없고, 마실 것은 커피와 차 중 선택할 수 있다.
팬케잌은 맛있고, 양도 실했다.
수박이 아주 달달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홀짝 거리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려니, 이제 막 출근한 직원이 내 방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다가온다.
출근길에 구눙 마스 Gunung Mas 여행사에 들러 예약했으며, 이따 9시 쯤 데리러 올거랜다.
삐딱하게 보자면 소개비를 뜯고자 그렇게 부지런하게 일처리를 한 거겠지만, 딱히 내가 손해 본 것도 아니니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다만, 앞으로는 플로레스 사람들 상대할 때 좀더 의사표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하지 않고 그냥 알아보기만 하려고 얘기했는데, 소개비 욕심에 냉큼 예약까지 진행해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이틀을 묵었던 방
플로레스 지역은 시설 대비 가격이 비싼 편인 것 같다.
그나마 여긴 새로 생긴 곳이라 깔끔한 에어컨 방에 조식 포함으로 30만 루피아가 안넘는다.
9시라더니, 8시 40분인데 이미 버스가 온다.
예약한 승객들의 숙소들에 들러 태우는데, 우리한테 제일 먼저 온 모양이다.
덕분에 앞공간이 제일 넓은 운전석 바로 뒷열에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창문을 열 수 있어서 쾌적했다.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라부안 바조 막 출발해서 잠깐 동안만 저지대고, 그 이후로 계속 고지대 산길을 달리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가는 편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좋다.
라부안 바조를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간다.
뭐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만만했다.
쉴 새 없이 꺾어지는 구간을 지나다, 갑자기 쭉 뻗은 직선 구간이 나타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가운데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2016년 9월, 구글 스트리트 뷰 사진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사형 논도 있다.
차를 따로 렌트하거나, 오토바이로 여행한다면 잠시 여기 들러 볼 수도 있겠다.
마침 방사형 논 가까이에 있는 동산에 오르면, 방사형 논 외에 탁 트인 평지도 같이 감상할 수 있겠다.
운전기사 아저씨도 쭉 뻗은 길이 반가운지 미친듯이 쌔려 밟고 달린다.
플로레스 지역의 시골집들은 대부분 함석 지붕을 얹었고 그리 높지 않아서 마치 한국의 80년대 집처럼 보인다.
이 길을 수백 번 지났을 운전기사 아저씨는 후지와라 탁미라도 되는듯 빠른 속도로 고갯길을 공략한다.
흥이 오르면 드리프트라도 할 기세다.
덕분에 중학교 때 이후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멀미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원래는 루뗑 가기 전 30분 거리인 짠짜르 Cancar 에서 내려 거미줄 형태의 방사형 논을 보려고 했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11시 50분 경 짠짜르를 지나칠 즈음에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잘한 결정이었다.
12시 10분 경, 루뗑 시내 도착
초입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사이 내려서 굳은 몸을 풀고 있으려니, 같이 타고 왔던 외국인 승객들이 줄줄이 따라 내리는데 다들 피로를 한 바가지 뒤집어 쓴 낯빛이다..
다들 내색만 안했을 뿐이지, 운전기사의 드라이브 실력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딱히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눈을 마주치면 살짝 끄덕이는 고갯짓과 표정으로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위로를 하며 연대의식을 키워 나간다.
주유를 마치고, 운전기사는 승객들에게 행선지를 물어 각각 내려줬다.
제일 먼저 수녀님을 내려 드렸는데, 역시나 교회 앞이였다.
나와 일행은 두번째로 내렸다.
루뗑에서 시설이 가장 괜찮고, 전망도 좋은 스카이 플로레스 호텔은 호텔 예약 어플에 등록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뚝심있는 곳이다.
구눙 마스나 사설 택시업자들과 연계가 되어 있는지, 여행자들이 루뗑에 따로 예약한 숙소가 없다고 하면 추천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요금 체계가 좀 특이하다.
건물을 보다시피 모든 방의 크기가 같은데 (특실 제외) 층별로 요금이 다르다.
1층은 1박 20만 루피아인데 핫샤워와 에어컨이 없다.
2층과 3층은 동일 컨디션이지만 각각 35만 루피아, 40만 루피아다.
5만 루피아가 더 비싼 이유는 전망이 더 좋기 때문이랜다.
3층 복도 전경
층간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2층 전망이나 별반 다를 건 없엇지만 3층 객실을 잡았다.
대로변이라 오토바이 소리로 시끄러울텐데, 그나마 3층이 좀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별 차이 없었다.)
1층 방도 여기와 동일하겠지만, 핫샤워가 없다는 게 큰 단점이다.
해발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밤과 새벽엔 꽤 추울 거다.
3층에 옆건물 옥상과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데, 그곳에 식당을 꾸몄다.
2016년 3월 당시엔 옆건물만 있었고, 호텔은 공사 중이었던 모양이다.
옥상 식당에서 본 루뗑 시내 전경
고산지대답게 구름이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