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반 눈이 떠졌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6시 쯤 옥상에 올라 해돋이를 기다렸다.
지루하다.
일출이나 일몰이나 딱히 아등바등 시간 내서 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가 있는 건 아닌데, 그나마 둘 중엔 일몰이 좋다.
'이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와 '이제부터 마시자'의 차이랄까.
쏘옥~
텔레토비 여러분, 아침이 밝았어요~
끄아악~
뜨자마자 햇살이 무지막지하게 때려댄다.
그림자 샷 한 방
거리에 사람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7시 좀 넘어 호텔 프론트에 내려가 바자와 Bajawa 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봤다.
남자 직원이었는데 아주 친절했다.
구눙 마스 Gunung Mas 버스가 아침 9시, 오후 2시에 출발하는데, 오후 2시 출발편은 승객이 없으면 운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오후편으로 가고 싶다고 하니, 프론트 직원은 구눙 마스 사무실에 전화해서 확인했다.
다행히 오후 출발편이 있댄다.
컨디션도 좋아졌겠다, 오전 시간도 생겼으니 포기했던 짠짜르 Cancar 를 가보기로 했다.
프론트에 오토바이 대여를 물어보니 가능하댄다.
친절한 남자 직원의 표정 반응으로 보아, 대여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직원 오토바이를 빌려 주려는 거 같다.
대여료가 얼마인지 얘기도 안해준다.
프론트 앞에 지역 관광지를 소개하는 배너가 세워져 있다.
망가라이 maggarai 군은 루뗑이 속한 행정구역이다.
1. 골로 쭈루 Golo Curu : 루뗑 시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성당. 시내에서 오토바이로 10분도 안걸림.
2. 까테드랄 Katedral : 정식 명칭은 Church St. Maria Assumpta Katedral Ruteng. 루뗑의 대성당인듯.
3. Spider Web Rice Field : 오늘 가볼 곳
4. 리앙 부아 케이브 Liang Bua Cave : 일명 호빗 Hobbit 케이브. 2004년 이 곳에서 초기 인류의 유골이 발굴되어서 유명해졌다. 신장이 1m 가량으로 현생 인류에 비해 훨씬 작아 호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요한 건 이미 다 연구자료로 쓸어 갔고, 그냥 평범한 동굴이라 그쪽 방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니면 굳이 갈 필요는 없다. 차로 40분 정도 거리인데 좁은 시골길이라 가기도 불편함.
5. 와에 레보 Wae Rebo : 구글 찍어봐도 가는 길도 나오지 않는 산 속의 전통 마을. 산길을 뚫고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대나무 다리를 건너 가야 하는듯. 대신 경치는 정말 좋아 보임.
6. 짜찌 Caci : 이 지역의 전통 행사에서 전사들이 추는 춤인듯.
이외, 루똉 시내 약간 외곽 쪽에 전통 가옥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시 중심에서 오토바이로 10분 거리에 있는데, 별로 볼 거리는 없다.
그냥 맛보기로 둘러 보는 정도에 적당한 곳.
쨍한 햇빛에 비쳐 선명하게 보이는 건물색이 서늘한 공기와 어우러져, 고산지역 마을의 풍취가 가득하다.
7시 반인데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꼬꼬마들이 바글바글하다.
나름 부페식 조식
밥통에 밥, 미 고렝(볶음 국수), 삶은 달걀에 양념 입힌 거, 감자 으깨어 뭉쳐서 튀긴 거, 야채 국, 빵, 커피, 차가 전부인 단출한 메뉴지만, 그래도 무려 부페다.
9시 반 쯤, 빌린 오토바이를 타고 짠짜르 Cancar 로 출발
루뗑에서 짠짜르까지는 대부분 시원하게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다.
고산지대 특유의 시원한 공기와 열대지방의 작렬하는 햇살이 어우러져 오토바이로 달리는 내내 상쾌했다.
그 상쾌함이 좋다고 하루종일 신나게 달린다면, 햇빛 뜨거운 걸 못느끼기 때문에 어느새 얼굴이 시커멓게 타버리게 된다.
저 멀리 도로 끝에 짠자르 읍내가 보인다.
읍내 도착, 루뗑에서부터 약 30분 정도 걸린다.
정작 읍내 근처 도로는 상태가 좋지 않다.
사거리에서 거미줄 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오르는 입구까지는 걸어서 약 5~10분 정도 거리다.
표지판은 따로 없지만, 근처 행인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면 알려준다.
어차피 외지인 관광객이 짠짜르에 올 일은 거미줄 논 말고는 없다.
요런 마을 길을 가다보면...
왼편에 조그마한 팻말이 보이고, 야매 분위기 풀풀 나는 언덕길 입구가 보인다.
입장료 1인당 2만 루피아랜다.
돈을 건네며, "내 친구가 작년에 왔었을 때 1만 루피아라고 했는데, 벌써 그렇게 올랐어요?"라고 다 안다는듯 웃으며 한 마디 하니, 움찔 당황하는 표정이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걸로 보아, 아직 그렇게 때가 묻지는 않은 모양이다.
언덕길을 오르려 하자, 10살은 안넘어 보이는 남루한 옷차림의 꼬마 두 명이 은근슬쩍 앞장서 걷는다.
나름 깔끔한 공중 화장실도 있고...
계단도 있다.
느릿느릿 대략 5분 정도 오르면...
흠...
나름 시골 출신이라 논이라면 실컷 봐서 그런가,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스멀스멀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가 단조로운 풍경에 활력을 준다.
사진 찍어 주겠다고 하자, 어색하게 V자를 내민다.
내려가면서 길 찍는데 자기 찍는 줄 알고 또 포즈를 취한다.
꼬마들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길안내라도 하듯 앞장 서서 오르내렸지만,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길이다.
이 곳까지 찾아오는 관광객이라면 이미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있을테니, 따로 설명할 것도 없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숫기가 없어서 말조차도 못붙이고 주변을 어정 거린다.
하지만, 꼬마들은 끝까지 팁을 바라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고, 구걸하려 동정을 유발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쫄레쫄레 근처를 맴돌며 살필 뿐,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 있을 시간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을 곳은 별로 없다.
5만 루피아라고 못줄건 없었지만, 분에 넘치는 돈은 사람을 망칠 뿐이다.
돈이 꽤 된다는 걸 알면, 주변에서 내버려 둘 리 없다.
커진 이득만큼 자란 욕망에, 팁을 요구하거나 구걸을 하는 등 되바라질 수도 있다.
이 지역 물가에 5천 루피아면 튀김 20개 정도 살 수 있다. 한 끼 떼우기에는 넉넉하다.
루뗑으로 돌아가는 길
구름이 슬금슬금 몰려온다.
도로 옆의 작은 폭포
그 밑으로 물길을 따라 떠내려온 쓰레기가 주렁주렁 널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