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Gili Terawangan, Lombok] 3. 다시 찾은 롬복 꾸따 Kuta

명랑쾌활 2017. 3. 6. 11:02

아침에 나와보니 내 방 앞 소파에 고양이 한 마리가 뒹굴뒹굴 자고 있다.

딱히 주인이 있는 고양이가 아니다.

길고양이다.

한국처럼 독하게 내쫓거나 위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저리 한가롭게 있을 수 있다.

쫓아야 할 때도 빗자루 같은 걸로 살살 밀어서 나가게 한다.

이런 모습 보면 한국의 애묘인들은 인니가 고양이 천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도 내내 삶은 고달프다.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작은 도마뱀 같은 것도 사냥해서 부족함을 충당해야 한다.

딱히 보살피지도, 내치지도 않는 방치라서, 아프면 그냥 앓다가 죽는 수 밖에 없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한국의 길고양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처지인 건 맞다.

그렇게 만만하진 않다는 얘기다.


아침을 먹고 바가지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11시까지 숙소 앞 해변으로 데리러 오라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못가니 중앙 선착장으로 오랜다.

거짓말이다. 다른 배들은 어디든 다 데리러 온다.

항의를 하니 많이 인심쓴다는 투로 이슬람 회당 앞 해변 앞에서 태워주겠댄다.

중앙 선착장까지의 딱 절반 거리다.

수틀리면 배째라고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했다.


대부분의 인니인들은 선량하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약간의 대가를 바라고 기꺼이 돕지만, 딱히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그냥 사람 좋게 웃는다'는 뜻의 선량함이다.)

하지만 대도시의 가난한 사람이나 외지인 관광객을 대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중에는 되바라진 사람들이 꽤 많다.

자기 홈그라운드이기 때문에 다툼이 있어도 외지인에 비해 유리하다는 점을 악용하는 거다.

심하지 않은 선에서 납득하고 넘어가야 한다.

외지인은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위험할 수도 있다.

그게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그렇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 거 도저히 못참겠다는 사람은 싸워야겠지만.


걸어서 10분 거리지만 큰 맘 먹고 마차를 불렀다.

일행이 있는 여행이라 내가 감수할 수 있는 불편을 일행에게도 당연히 강요하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마차값 7만 루피아는 마음이 편해지는 값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뭐 살다 보면 바보같다고 느껴지는 지출도 감수할 수도 있는 일이다.

언제는 뭐 모든 일에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었나.

애초에 돈을 아끼려면 여행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

여행한다는 거 자체가 편한 집 떠나 사서 고생하고 돈도 쓰는 헛지랄이다. ㅋㅋ


마차 타고 가는 길

마차는 마차 나름대로의 불편이 있었다.

짐 지고 10분 걷는 것과 비교해도 그닥 크게 나을 것도 없었다.

길리 뜨라왕안에서 마차 안타봤으면 길리 가봤다는 얘기 하지 말라는 허세는 떨 수 있겠다.


우라지게 좋은 땡볕 밑에서 약속시간보다 30분을 더 기다려서야 배가 도착했다.

다른 손님들 타고 있는 걸 보아하니, 중앙 선착장에서 호객해서 태우느라 늦은 것 같다.

쓰레기 중에 개쓰레기 여행사다.


롬복 선착장에 도착하니 디까가 대기하고 있다.

디까에게 "저 여행사랑 연계하면 네 손님 다 떨어져 나가고 욕은 욕대로 네가 다 먹을 거다"라고 충고했다.

디까도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정말로 미안했는지, 나중에 롬복 남부 투어 후 공항에 도착해서, 받아야 할 가이드 요금을 10만 루피아 정도 저렴하게 불렀다.


저녁 비행기 시간 전까지 롬복 남부를 맛보기로 돌아보기로 했다.

우기의 롬복 남부는 건기에 비해 다른 곳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온통 푸르렀다.

디까 말로는 건기는 린자니 산 근처만 가끔 비가 오고, 남부는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땅도 북부가 비옥하고, 남부는 척박한 편이라고 한다.


점심식사는 당연히 꾸따 뒷고개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이름은 까먹음. 궁금하신 분은 이전 롬복 여행기 참고하시길~)

일행도 매우 감탄하며 좋아했다.


소또 아얌 Soto Ayam (닭고기국)

인니 생활 초반에는 역한 향신료 냄새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해장으로 즐겨 먹게 됐다.

음식은 익숙함이다.


레스토랑 건너면 언덕 꼭대기에도 뭔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정도 되면 완공될듯.


노보텔 롬복 옆 냘레 해변 Pantai Nyale 가는 길


여자 하나 남자 셋 동상의 이야기도 디까를 통해 알게 됐다.

예쁜 아가씨에게 세 명의 남자가 구애를 하는데, 어느 남자를 택해도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좋은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 놔두고 왜 그랬는지 한심하다.


노보텔에서 이어지는 대나무 다리는 파손된 상태

인니의 공공구조물들은 튼튼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보수가 신속하지 못한 게 더 문제다.
불편해도 대충 넘어가는 느긋한 성격 때문인지, 처음에는 돈 들여도 추가로 돈 들어가는 건 허락이 더뎌서 그런건지.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롬복 남부는 척박하기 때문에 소를 키우는 게 주된 경제활동이다.


전에 왔을 때는 그냥 보고만 갔는데, 일행이 있는 관계로 동산에 올라가 본다.

속으로는 ㅆㅂㅆㅂ 하면서, 얼굴은 웃으며.


사고방지 시설이 없는 인니의 내추럴한 운영이 너무 좋다.


건기에 왔을 때는 황토색 벌판으로 방치되어 있던 땅에도 논이 들어섰다.

우기에 오지 않았다면 논인지 몰랐을 거다.

주변에 개울이나 수리시설이 없는 천수답이다.


힘들긴 하지만 올라온 보람은 있는 광경이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길

아까 길 옆에서 풀 뜯던 소들은 어느새 저멀리까지 갔다.


딴중 아안 해변 Pantai Tanjung Aan 서쪽 해변


진입로가 좁고 허름해서 알지 못하면 지나치기 십상인 곳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보통 아안 해변의 중앙이나 동쪽 해변 쪽만 간다. (나도 전에 그랬다.)

디까가 여긴 모를 거라며 데려왔다.


모래사장에 파도도 잔잔해서 해수욕하기 딱 좋은 곳이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육지가 끊어진 좁은 부분이 큰 바다와 이어진 곳이라, 딴중 아안 해변은 파도가 잔잔하다.

물놀이 하는 사람들도 다 현지인이었다.


저 멀리 바다에 혼자 서있는 바위가 롬복을 상징하는 풍경사진에서 빠지지 않는 우산 바위 Batu Payung 이다.

우산보다는 버섯이 더 어울릴 거 같은데, 뭐 하긴 우산이나 버섯이나 이마가 마빡이고 궁뎅이가 방뎅이고.

가까이서 보고 싶어하는 관광객 대상으로 모터보트가 왕복한다.

물론 비싼 요금 받고.


요렇게 오목하게 육지에 둘러쌓인 딴중 아안 해변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유도 없이 차가 꽉 막혔다.


롬복 지역 전통 결혼행사인 신부 납치 Kawin Lari 행사 때문이었다.

12월에 많이 결혼한다고 한다.


신부 납치 행사는 사랑의 도피와는 좀 다르다.

신부측에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보통은 중개인이 신랑 후보와 신부측에 가서 지참금을 흥정한다.

흥정이 성사되면 별 문제 없지만, 성사되지 않으면 신랑 후보는 일단 돌아간다.

이후, 신부측은 일가친척, 신랑후보와 마을이 다르면 마을 사람들을 모아 신부 납치를 막을 준비를 한다.

신랑측 역시 사람을 모아 신부 납치를 준비한다.

무사히 신부를 납치해와서 3일간 숨어있는데 성공하면, 형편껏 마련한 선물을 들고 신부집에 찾아가 사죄를 하고, 결혼이 인정된다.

옛날에는 엄청 살벌해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 않고 어느 정도 축제 비슷하게 됐다고 한다.

디까 말로는, 정말 신랑이 마음에 안들면 신부 엄마나 다른 사람을 신부로 변장시켜 납치하게끔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경우는 신랑측의 실패로 무효.)

어차피 다른 마을이라도 한 다리만 걸치면 먼 친척뻘이라 서로 스파이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아, 신부 납치 결행일이라던가, 신부측 방어 전략 등을 염탐한다고 한다.


전통 복장의 전통악단도 있고 (발리 복장과 비슷한데, 다른 점은 롬복은 검은색이 정식복장이라고 한다)


당둣을 연주할 현대식 밴드도 간다.



롬복 대충 찍고 숨바와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이대로라면 한참 동안은 롬복 남서부 찍은 게 마지막이 될듯 합니다.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가 있다는 건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니, 뭐 그것도 나쁘진 않네요.

꼭 달성해야 할 목표도 아니니까요.

모두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사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도 결국 안한다고 세상 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고작해야 그냥 좀 많이 힘들어질 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