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Ekas Lombok] 4. 뚝 끊어진듯한 절벽, 땅의 끝

명랑쾌활 2016. 10. 31. 10:58


빤따이 삥 Pantai Pink (핑크 해변)은 에까스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 사람 누구든 여행객에게 빤다이 삥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 역시 비포장길의 연속이다.


들어가는 초입부터 빤따이 삥 지역이라고 쓰여 있다.

원래는 여기서 입장료를 받지 않았나 싶다.


좌측으로 꺾어지면 순웃 Sunut 지역, 직진이 딴중 링깃 Tanjung Ringgit 과 빤따이 삥


길 안좋기는 매한가지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깜짝 놀라게 만든, 뜬금없는 마네킹.

한밤중에 보면 꽤 섬짓할 거 같다.


길은 점점 더 안좋아 진다.

엉덩이, 허리도 아프고 지친다.


지파 블로암 비치 캠프 Jeeva Beloam Beach Camp 들어가는 입구

이번 여행 계획하면서 검색했던 숙소 중 하나.

다른 건 아니고, 1박에 40만원이라서 기억에 남았던 곳이다.

그야말로 어디 갈 생각 말고 꼼짝없이 숙소에서 푸욱 쉬어야 할 곳이다.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맥주나 식사라도 할까 했는데 외부 방문객은 출입금지랜다.

예약한 손님만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소수 고객을 위한 완벽한 프라이빗 숙박업소인가 보다.


사진 왼쪽, 정자 보이는 곳이 빤따이 삥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은 딴중 링깃으로 가는 길


차단봉이 내려져 있는 앞으로 가니, 정자 안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20세 전후 정도로 보이는 청년들 중 하나가 다가온다.

입장료 1만 루피아.

표정이나 눈초리도 싸가지 없고, 껄렁껄렁 하다.

인니에서는 남들 보는 데서 대놓고 카드놀이 하는 사람은 양아치나 깡패다.


빤따이 삥 내려가는 길

길 안좋은데,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휑한 분위기다.

저편 바위섬 위로 올라갈 수는 있는데, 그닥 가고 싶지도 않다.


빤따이 삥이란 이름의 유래인 붉은색 도는 모래도 뭐 그냥 그닥그닥이다.

붉은색 산호가 부서져서 만들어진듯.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만 둘러보고 미련없이 떠났다.

이 지역 다른 곳들에 비해 아주 실망스러웠다. (입장료를 받아서 더 실망스러웠다.)


딴중 링깃 가는 길은 얄팍한 도로 포장이 그나마 좀 남아있다.

군데군데 벗겨졌으니 어차피 오토바이로 다니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끄트머리에 초소 건물 같은 곳이 있다.


이 안내판이 없었으면 별 거 없는 줄 알고 돌아설 뻔 했다.

인니 문화관광부 지정 관광 포인트 므리암 즈빵 Meriam Jepang (일본 대포) 가 있댄다.


건물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스쿠터를 타고 더 들어가봤다.

예전 같았으면 건물 앞에 주차하고 걸어갔을 거다.

지금은 오토바이로 갈 수 있는 길은 일단 들이민다. ㅋㅋ


이런 엄청난 곳을 그냥 지나칠 뻔 하다니...


이 사진 찍을 때는 오줌이 마렵고 싶은 기분이었다. ㅋㅋ


이런 멋진 곳에 마침 덩그러니 나 혼자였다.

담배 한 대 물고 멍하니 경치를 봤다.

끝을 본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해변 같이 완만한 지형은 바다 건너로 이어진 느낌이지만, 이렇게 뚝 끊어진 낭떠러지는 마치 세상의 끝 같은 단절감이 든다.

이번 여행은 여기를 보러 온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땡볕이라 힘들다.

어디 그늘에 적당히 앉을 곳만 있었다면 한두시간 차분히 감상하고 싶었다.


그 좋은 경치 뒷동산에 있는 일본 대포.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설치했다.


지금도 찾아오기 힘든 롬복 땅끝에 70여년 전, 저 무거운 대포를 설치했다는 게 대단하다.

당시 일본이 동남아시아 전체를 점령했다는 사실과 전쟁이란 국가 총력전이라 평상시라면 실현되기 힘든 일들이 얼마든지 실현되는 상황이라는 게 피부에 와닿는다.

뭐 물론 점령국 포로나 주민들을 강제동원 해서 건설했겠지만.

어쩌면 조선인 강제부역자들도 여기에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겠지 싶다.


빤따이 삥 서쪽에 있는 빤따이 앙인앙인 Pantai Angin-angin 이라는 곳도 가봤는데, 이번 여정 중 길이 가장 안좋았다.

오토바이 주행라인 잘못 잡았다가는 옆으로 쭐떡 미끄러져 자빠질 정도였다.


빤따이 삥 2 라고 갖다 붙이고 선전하는 곳인데, 이거 영 아니다.

가축 똥냄새가 진동을 하고, 해변에 염소똥이 조개껍질처럼 널려 있다.


해변도 딱히 수영을 할만한 환경이 아니다.


올라가면서 보니, 이 길을 스쿠터로 어떻게 내려왔나 싶다.


양철 슬레이트 지붕에 야자잎으로 짠 벽으로 지은 소박한 이슬람 회당.


한국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증오는 도가 지나치다.

부도덕한 목사들의 사건사고를 접하면서도 개신교는 무조건 나쁘다고 성토하진 않으면서, 이슬람에 대해서는 모든 무슬림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서슴없이 표현할 정도다.

무지로 비롯된 공포가 가장 강하고, 그 공포로부터 발현된 증오가 가장 맹목적이다.

그 무지를 바로 잡겠다고 구구절절 쓸 생각은 없다.

맹목적인 증오에 무슨 설득이 먹히겠나.

겪으며 느낀 이슬람의 좋은 점 하나만 들어 보자면...

지금껏 수백명의 무슬림을 만나 봤지만, 나한테 이슬람 믿으라고 전도하는 무슬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순전히 내 생각이라는 걸 전제로 하는데, '일방적인' 전도는 매우 무례한 행동이라고 본다.

일방적인 전도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불행합니다' 내지는, '당신이 행복하다 느끼는 건 거짓입니다'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그런 전도를 하는 사람이 내가 보기에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면 더 우습게 느껴진다.

그나마 예의를 지키는 사람에게는 "아직은 굳이 어떤 종교를 믿지 않아도, 살면서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라고 점잖게 답하지만, 예의 없는 사람에게는 "당신보다 제가 더 행복한 거 같다고 해서 저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꼬시는 건 좀 아니잖아, 새꺄" 라고 하고 싶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전도하지 않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꽤 마음에 든다.

내 무교를 침해하지 않는데, 내가 이슬람을 침범할 필요가 없지 않겠나 싶다.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코란'이라면서 이슬람 믿기를 강요하지 않았냐는 개소리는 하지 않길 바란다.

그 말은 이슬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나서라는 소리지, 코란 들이대면서 이슬람 안믿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전도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도대체가, 칼 들이대면서 어떤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면 사람이 그 종교를 믿게 될 거라는 생각 자체가 등신같은 소리 아닌가?

칼 들이대면서 북한이 지상천국이라는 걸 믿으라고 강요하면 살아야 하니 믿는다고 대답은 하겠지만, 그걸 '진심으로' 믿느냔 말이다.


험난한 비포장 도로의 끝

너무 힘들어서 남쪽 끝도 가보려던 계획은 포기했다.

롸이딩에 도로상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얼굴이며 팔, 다리 등 살 내놓은 곳은 다 빨갛게 익어서 숙소 식당 그늘에 널브러졌다.

점심은 안주 없이 맥주 두 병으로 끝.

천국이 따로 없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