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타고 빠라빳 항구로 돌아간 여정
떠나는 날 아침 숙소 레스토랑에서 본 거리
인니에서 이런 추적추적한 비는 드물다.
다른 열대지방이 그렇듯, 요즘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한국도 그렇듯, 게릴라가 느닷없이 나타나 와다닥 쏘고 사라지는 비가 보통이다.
하늘도 온통 구름으로 넓게 뒤덮였다.
따로 예약을 하거나 연락을 하거나 할 필요 없다.
숙소 호변 쪽에서 시내버스 기다리듯 기다리면 된다.
개인 자가용도 다닌다.
아니다. 자영업자의 영업용 운송수단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좀 기다리자니 한 대 온다.
오른편이 내가 묵었던 사모시르 코티지, 그 왼편은 안주 Anju 코티지... 술만 가져가면 되는 숙소인가 보다.
따로 돈 내고 보트투어를 할 필요가 없다.
마을보트(?)가 손님을 태우려 호변을 샅샅이 훍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안주 코티지에는 현지인 학생들이 단체로 놀러왔나 보다.
질밥 (무슬림 여성 머리쓰게)을 쓴 여학생들이 간간히 보이는 것으로 보아, 꽤 먼 타지에서 놀러온 모양이다.
또바호수 일대는 거의 대부분이 크리스천이다.
먼 곳에서 놀러와서 이 정도 숙소에 묵는 것으로 보아 부유한 집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학교가 아닐까 싶다.
인니에서는 옷차림으로 부유함의 정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돈이 많던 적던 어차피 촌스럽고 꾀죄죄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까지 옷으로 자신의 격을 높이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자기 월급 절반이 넘는 메이커 청바지를 사입었던 한국식당 날라리 남자 종업원도 봤었고,
태어나서 제 손으로 라면조차 한 번도 끓여 본 적 없는 왕부자집 자식인 대학생이 길거리 싸구려 옷 사서 입는 것도 봤었다.
(가정부 5명, 정원사, 아빠 차는 벤츠 등 3대, 엄마 차 BMW, 집에 수영장... 그런데 옷은 촌스러움... -_-;)
호수는 생활의 터전이다.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한다.
더럽다고 자기네 숙박업소 근처에서 하지 말라고 쫓는 사람 없다.
인니에서 살다보면 덜 각박해진다.
어쩌면 한국이 이렇게 발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각박함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화내는 일이 현저히 줄은 것은 사실이다.
발 정도는 담그고 놀라는 시설이 있는 숙박업소도 있다.
건물 구조로 보아 숙박업소가 아니라 가정집이 아닐까 싶다.
호변에 개인 선착장이 딸린 집이라...
바딱족 전통가옥의 이코노믹 버전이다.
이건 원주민의 가옥이 확실하다.
참으로 실용적인 구조의 숙박업소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유명한 해변 관광지에서 저런 투박실용적인 구조의 건물들을 심심찮게 봤었다.
어차피 여름 한 철 장사에 엿같이 지어도 손님은 미어터지니 잘 지을 필요가 없겠지.
2000년도 무렵에 대천 가서 별 시덥지도 않은 방 15만원에 묵은 이후로, 한국의 해변 관광지는 발을 끊었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대응은 불매다.
난 무관심이라는, 불매보다 좀더 독한 방법을 쓴다.
대천이라는 곳은 내 기억에서 존재 자체를 지워 버렸다.
이제 그곳은 갈지 말지 고려 대상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나아졌는지 어떤지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다.
물론, 대천도 나 같은 사람 안온다고 장사 망할 거 없으니 상관 없겠다.
망할 사모시르 코티지의 매니저 새끼가 거짓말을 했다.
사모시르에는 제트스키나 여타 해양 레포츠 없다고 했는데, 그럼 저건 제트번기냐? -_-;;
사모시르에 부는 개발의 바람.
부디 운하는 파지 말길 바란다.
조난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
오른편의 터는 그냥 공터인지, 건물 지으려는 것인지, 건물을 헐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현지인 대상의 숙소인듯 한데, 분위기나 경치는 정말 좋을 것 같다.
단, 편의시설은 장담 못한다.
시설을 외국인 눈높이에 맞추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들 뿐더러, 인니 사람들은 소박한 것에도 만족하는 사람들이니까.
호수의 로망! 오리배도 있다!!
생김새가 병원스러워 보이는 숙소
주민들이 이용하는 선착장
저기 동그라미 친 부분이...
이렇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던 곳이다.
사모시르 뚝뚝 마을이 점점 멀어져간다.
그러고 보니 참 오묘한 곳이다.
다시 돌아온 빠라빳 항구
눈에 익은 곳은 왠지 반갑다.
삐끼 에이전트 Burju는 콧배기도 안보이고, 전화로 이 곳을 가르쳐준다.
역시나 인니는 돈을 미리 지불하면 바보인 나라다. (딱히 인니 뿐 만이 아니라 사람 인지상정이던가?)
삐끼새끼 에이전트의 걱정 말라는 장담과는 달리 얼마 안 달린 새차에는 돈 많아 보이는 옷차림의 중국인들이 우루루 타고 휑하니 출발한다.
행선지는 나와 같은 메단 공항... 그러나 나에게는 타란 소리 없다.
택시 사무실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담배나 피워댄다.
저 바리바리 짐들은 어떤 사연의 누가 가지고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짐의 규모로 보아 아주 드물게 읍내 나오나 보다.
한켠에서는 한량 아저씨들이 체스질을 하고 있다.
모자 쓴 아저씨는 담배를 아주 제대로 구수하게 피웠다.
나도 어디가서 담배 한 맛있어 보이게 핀다는 소리 듣는데, 저 아저씨도 못지 않았다.
선착장 옆에 들어선 재래시장
한 30분 기다리자 오우 쉣... 고물차가 등장했다.
그렇게 부르짖었던 운전사 옆자리도 아니다.
덩치가 나보다 1.5배는 더 큰 서양 할아버지가 앉았다.
당위성으로 도저히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저 속으로 걱정말라던 시발삐끼색히 에이전트 Burju 욕만 디립다 하며 몸을 구겨 넣었다.
나름 꽃마차를 타고 관광을 즐기는 현지인들
지가 무슨 후지와라 두부집 아들내미라도 되는지 구불구불한 길을 죠낸 다운힐 하던 봉고차.
그보다도 그런 봉고차 옆에 매달려 가던 저 현지인이 짱이다.
사정없이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내려갔다.
옛날 대관령 국도가 이랬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지형에도 꿋꿋하게 집을 짓고 산다.
사진 가운데 저 멀리 보이는 집처럼, 도로 앞쪽에서 보면 단층집인데 밑에서 보면 3층, 4층 구조인 집들이 여기저기 있다.
고갯길에는 오토바이 투어링 하는 무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인니일지라도 그렇다.
아니, 인니여서 더욱 그럴지도.
그리고 오토바이 투어링이라면 역시 뒤에 여자를 태워야 제대로 된 세팅이다.
무슬림이 80%인 세계최대의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도 사람 사는 곳이다.
아랍쪽 이슬람 국가한테 사이비라고 조롱은 듣지만, 뭐 어떤가.
한국 같으면 절대 못하게 하겠지만, 인니에서는 흔하디 흔한 광경이다.
이런 영재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인니 사람들은 오토바이로 못하는게 없게 되는 거다.
한국의 어디 지방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메단 공항에 도착
테러 위험이 큰 곳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잠깐 당황하고는 바로 포기하고 멍하니 기다리기 모드로 스위치를 바꾼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내 모습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기다리다니...
그러나 인니 생활 어느덧 만 2년을 넘겨, 이제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런 것에 스트레스 받으면 인니에서 못산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짐 대충 정리하고는 바로 샤워하고 잠을 청한다.
내일 출근할 생각에 무덤덤하게 바로 잠 들었다.
스위치 전환이 빨라진 것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런 여행에 익숙해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