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길은 물론, 정면의 길도 지도 상에는 없는 길이었다.
오른쪽 길이 지도 상에 없는 길이니, 당연히 정면 길로 가면 된다는 생각을 어쩌다 하게 됐을까?
왼쪽 길은 왜 아예 생각도 안했을까?
이제 길은 포장 따위는 해 본 적이 없어 보이는 진정한 비포장 도로다.
마주치는 현지인들의 표정도 이제 거의, '여기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이다.
급기야 뜬금없이 길 한가운데에 왠 애 하나가 엎드려 뒹굴 거리고 있다.
" 뭐냐? 왜 그러고 있냐?"
" 요 뒤에 다리 끊어졌어요~"
" (허걱) 오 그래? 그럼 되돌아 가야 하니?"
" 아뇨, 요 옆길로 가시면 돼요."
" 엉, 고맙다."
넌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애들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천진한 표정의 너희들에게도 똑같은 축복을 해주고 싶다.
너희를 불행하다고 느끼게 할 것을 가급적 늦게 만나기를...
멋진 책가방에 좋은 필기구, 닌텐도며 휴대푠 누리고 있는 한국의 아이들이 이들보다 행복한 걸까?
난 이들을 보면 그냥 빙그레 웃음이 나오지만, 한국의 아이들을 보면...
그렇다고 미래에는 그들이 이들보다 행복해질까?
미래를 위해 지금 많은 것들을 참고 희생하는 것이니 응당 그래야겠는데,
보장되어 있지 않기는 이들이나 그들이나 여전히 마찮가지일 뿐이다.
내 생각에 그들은, 그때가 되어서도 또 다시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참고 희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난 그들이 측은하다.
그런 식의 미래는 말 앞에 매달아 놓은 당근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걷기에는 넉넉한, 그러나 스쿠터로는 바짝 긴장한 옆길.
점점 외지고, 그만큼 더 유니크한 길이 이어졌다.
심지어 길과 호수 사이로 다랭이 논이 깔린 멋진 풍경도 펼쳐진다.
천국으로 가는 문?
바짝 달려 저 사이를 통과하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범상치 않은 곳을 관광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뜸한 곳이라 그런지 물이 맑다.
물이 맑으니 호수 가장자리가 어떤 구조인지 높은 곳에서도 잘 보인다.
호수 가장자리와 조금 안쪽의 대비되는 물 색을 보면 알겠지만, 몇 발짝 들어가지 않아 호수 바닥이 급격히 깊어지는 지형이다.
이쯤 오니, 아무래도 많이 이상하다.
지도로 보았을 때, 길이 호수와 이렇게 가깝지 않았다.
가뜩이나 인적도 뜸한데 지나가는 사람 발견!
덥썩 붙잡아 길을 물으니, 역시나 길 잘못 들었다.
여행기 전편 끝 부분의 사진에 나온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갔어야 했다.
외길이었는데 거기까지 돌아가야 하는 건가? (한두시간은 족히 달렸다... ㄷㄷㄷ)
다행히 샛길이 있다고 가르쳐 준다.
약간 올라가고 약간 길이 안좋은 것만 빼면 갈만 하댄다.
아까 길 가르쳐준 사람이 말한 갈림길.
물어보지 않았다면 분명히 또 오른쪽으로 갔을게다.
절대 약간이 아니었다.
비포장에 오르막. 꼬불꼬불, 발목 위 깊이 정도로 패인 빗물 지나간 골, 바로 옆은 낭떠러지다.
설상가상으로... 기름도 거의 떨어져 간다.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위로 쳐들 여유도 없이 꾸역꾸역 올라갔다.
어느 정도 오르자 약간 평지가 펼쳐진다.
저런 경치에서라면 코로 풀을 뜯어 먹어도 소화가 잘 될 거 같다.
보았능가, 이 낭떠러지를?
길 바로 옆이다.
인적도 거의 드문 곳이니 수 틀리면 사망처리가 아니라 실종처리가 될듯.
그래도 참 경치는 우라지게 좋다.
뜬금없이 멕시코스럽다는 생각을 들게한 풍경.
참고로 멕시코에 대해서는 판초랑 타코 밖에 모른다.
오르막 거의 정상 쯤에 있었던 다랭이 논.
저 소는 어디로 와서 저기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근처 쯤으로 사진 찍기도 민망한 집이 한 채 보였다.
학교와는 거의 인연이 없어 보이는 조그만 남자아이와 그보다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열중하고 있다.
거의 아프로니그로에 육박하는 검은 피부의 소녀?아가씨?아줌마?의 무심한 눈길에 차마 사진기를 들이 댈 수 없어, 애써 심상한척 지나쳤다.
외국인은 커녕 현지인도 거의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는데, 그닥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독특한 지형
기름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파는데가 안나온다.
앞으로 한 1~2km 정도나 더 갈 수 있을까.
그래도 경치 좋은 데면 어김없이 스쿠터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정 안되면 아무데나 들어가서 기름 좀 팔라고 하면 되겠지.
외진 곳이니 집에 상비해둔 기름 정도는 있을 터였다.
다행히 기름 파는 곳을 발견했다.
외국사람 왔다고 구경났다.
기름집 건너편 학교...가 거의 확실해 보이는 건물.
벽에 그려진 학생 교복을 보니 초등학교인 모양인데... 그림 속 애들이 너무 성숙하잖냐. -_-;;
피부도 너무 희어.
심심할 만 하면 독특한 모양의 교회가 나타난다.
인니에서 보기 드문 침엽수도 있다.
애완용 돼지는 아닐터이고... 어쨌든 돼지도 풀어서 기른다.
요 근처 지역은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 돼지고기를 먹는다.
요리법은 그다지 발달한 거 같지는 않다.
이쯤되면 소들이 도로 한가운데로도 막 다닌다.
그렇다는 것은 이런 왕거니가 길 한가운데 척하니 있다는 거.
사모시르 섬에서 가장 높은 속이 아닐까 싶은 통신철탑
그 밑 언저리에 보이는 저 독특한 건물은 교회다.
바딱 양식의 건물에 교회 지붕을 합친, 아죽 독특한 양식이다.
소, 돼지, 닭도 있는데...
말이라고 없을쏘냐!
사진기를 들이대니 저 멀리에 있는데도 69자세로 서로 붙어 서서 경계를 한다.
(69자세가 뭔 소린지 모르겠는 사람은 부디 그 순수함 오래도록 지키길 바란다.)
사진 찍고 천천히 출발하니, 그제서야 경계를 풀고 다시 움직였다.
설마... 야생마였나? +_+
야생 호랭이도 있는 수마트라인데 야생마도 있을 수 있곘다.
사방이 탁 트인 곳에 뜬금없이 있는 집들.
걸어서 대략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집이 가장 가까운 이웃집이었다.
보통은 모여서 살게 마련 아닌가?
이들은 왜 외따로 집을 짓고 살까?
막바지에 이르러 비포장 난코스가 다시 시작되었다.
길 가에 조그마한 폭포도 있다. (사진 오른쪽)
바로 밑에서 찍은 사진
경치가 탁 트인 곳에는 어김없이 먹거리집이 있다.
브레이크 고장나서 돌진하게 되면 혼자 외롭게 죽진 않겠다.
차 한 잔 할까 싶었는데 저기 보이는 집들은 너무 멀쩡해서 패스.
이정도 허름해줘야 들를 맛이 난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앉아서 본 풍경
아마도 가게 연 이래로 외국인으로서는 첫 손님이 아닐까 싶다.
푸짐하게 꾹꾹 눌러담은 뜨거운 물에 친절이 넘친다.
덕분에 싱겁고 배 불렀다... -_-;
요런 커피 한 잔이 3천 루피아.
원가, 자리세, 뜨거운 물 등을 감안하면 무지 싼 편이다.
역시나 안전설비 따위는 없다.
테이블에 기대는 행위 따위를 했다가는, 테이블과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어우러져 어디론가 이동하는 상태에 처할 것 같다.
저 멀리 호변을 따라 툭 튀어나온 지역이 리조트나 숙소가 모여있는 뚝뚝 Tuktuk, 오늘 롸이딩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막바지를 장식하는 멋진 풍경이었다.
하릴없이 앉아서 끄적거리기도 하고, 멍하니 풍경을 보기도 하고...
자리만 편했으면 한 시간 정도는 족히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셈을 치루고 떠나는 등 뒤로 신기한듯 반갑게 웃어 주던 주인 아줌마나 다른 현지인 손님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소 등짝에 쉬고 있는 새 한 마리.
이 동네는 그래도 되나 보다.
파도도 없고, 물이 불어나는 일도 없는지, 호변 바로 옆에 수위와 별 차이 없는 높이에 집들이 있다.
사모시르 섬 볼거리 중 가장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곳치고는... 어째서 비포장인것이냐. -_-;;
갈림길이 보인다.
직진본능이 꿈틀거리지만 그랬다가는 섬 한 바퀴 더 도는 거다.
오른쪽으로 꺾어지니 뚝뚝 지역 입구가 거창하게 서있다.
모토베짜에 짐을 바리바리 싣고 어디론가 가는 방물장수.
리조트 지역이 점점 가까워진다.
뚝뚝 지역 9시 지역(지도 기준)도 숙박업소와 아기자기한 카페, 레스토랑이 많이 있었다.
비수기라 인적이 뜸하지만, 성수기가 되면 제법 복작복작 해지겠지.
어쩌다 보니 엉덩이가 강조된 실루엣의 사진이 찍혔지만, 꼬마애들 맞다.
드디어 도착한 숙소.
시간을 보니 5분 전 6시다.
대략 11시 쯤 출발 했으니, 장장 7시간의 롸이딩이었다.
7시간 동안 커피 한 잔 빼고는 입에 댄 것 없고, 싼 것도 없다.
허기는 좀 느꼈지만, 마려운 적은 없었다.
마인드 컨트롤로 생리현상을 통제하는 것도 신기한 능력 중에 하나일까?
7시간이나 땡볕을 달리면 썬크림 바르는 것으로는 소용없다.
덕분에 2년 여를 인니에 있으면서 그닥 타지 않았던 얼굴과 팔이 홀랑 타버렸다.
역시 선탠은 오토바이 타고 하는게 최고다.
홀랑 벗고 탈 수 없다는게 흠이지만.
(...음... 홀랑 벗고 타볼까? 어차피 외국인인데... -ㅂ-)
롸이딩 코스 총평을 하자면,
1코스는 무난
2코스는 속도 내기 좋음 (길 바로 옆에 절벽이 있거나 하지 않고 탁 트였다)
3코스는 환상 (여러가지 의미로 그렇다. 환상이라는 단어가 꼭 좋은 뜻으로만 쓰이진 않는다. 당신도 알겠지만...)
3코스는 길이 너무 안좋아 힘들었지만, 온전히 이방인으로서 존재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잘 꾸며진 화단에 그럴듯한 집이 아닌, 낙후된 지역의 날 것 그대로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갈 생각이다.
물론 그 때는 쇼바 푹신한 오토바이를 타고 갈 거다.
역시 엉덩이는 좌식변기에 빠지지 말라고 있는 부위였지, 스쿠터 쇼바 대신으로 쓰라고 붙어있는 부위가 아니었다.
7시간 정도 썼더니, 3명의 금발 미녀와 스팽킹을 즐기고 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상태다.
(스팽킹이 뭔지 아는 당신. 내공이 범상치 않은데?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