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

습관처럼 두루마리 휴지를 사려다...

명랑쾌활 2024. 8. 16. 07:08

한국에서 두루마리 휴지는 곽 티슈와 품질이 비슷하더라도 가격도 저렴하다. 그래서 그런지 막 쓰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다.

인니는 곽 티슈 정도의 품질인 (얼굴에 써도 될만한)  두루마리 휴지가 가격도 거의 비슷하다.

인니는 화장실에 휴지를 비치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 (물로 닦지만 물기를 제거하는 휴지가 따로 없음) 두루마리 휴지 수요가 곽 티슈에 비해 적기 때문에 가격이 그렇게 책정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어쩌면 '형태만 다를 뿐 원료가 같잖아? 게다가 두루마리는 종이 심도 필요하다구.' 뭐 그런 논리일 수도 있고.

어차피 가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곽 티슈만 써도 상관없다면 굳이 두루마리 휴지를 살 필요성이 없다.

 

다른 제품보다 3분의 1 가격으로 저렴한 두루마리 휴지 PB 제품이 있어서 그걸 사용해왔다.

가격 만큼 품질도 아주 떨어져서 얼굴에 쓸 엄두가 나지 않는 제품이었다.

두어 달 전부터 그 저렴한 PB 제품이 매대에서 사라졌다.

재고 떨어졌고 새로 입고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인니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장보러 올 때마다 제품 들어왔나 살펴보고,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나마 저렴한 제품을 소량 구매하면서 버텼지만, 당최 제품은 다시 입고되지 않았다.

 

 

그 날도 휴지 매대에 와서 살펴봤지만, 저렴한 PB 제품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나마 저렴해서 구입해왔던 제품도 다 떨어졌는지 없었다.

곽 티슈와 가격이 비슷한 고오급 두루마리 휴지 제품의 가격표를 응시하며 '이거라도 사야하나, 그냥 곽 티슈를 많이 살까' 고민하다 문득 깨달았다.

이제 두루마리 휴지를 굳이 살 필요가 없게 됐다는 사실을.

마음이 바늘에 푹 찔린듯 아프다. 

 

그동안 품질 상관 없이 저렴하기만 하면 되는 두루마리 휴지를 샀던 건,

고양이 백혈병 때문에 아픈 양이가 아무데나 보는 대소변을 치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양이는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그 사실을 깜빡하고 습관처럼 두루마리 휴지를 사려 한 거다.

 

곽 티슈 세 개를 카트에 넣고 자리를 떴다.

근처 매대에서 섬유유연제와 세제를 들고 온 아내에게는 아무 내색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도 카트에 담긴 곽 티슈들을 보고는, 두루마리 휴지는 안사냐고 내게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