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

떠나보내는 마음

명랑쾌활 2024. 8. 14. 07:17

누가 읽어주길 바라서 썼다기 보다는 아픈 마음을 여기에 좀 덜어내느라 끄적인 글입니다.

동물 친구를 떠나 보낸 적이 있어서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심하게 아픈 분은, 본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마음이 아주 많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때 경험 이후로는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서 동물 친구가 떠나는 종류의 컨텐츠는 못보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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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는 고양이 백혈병에 걸렸고, 그 여파로 신장이 회복 불능으로 망가졌다.

회복 치료가 아닌 연명 치료를 했다.

초기엔 월 50만원, 나중엔 월 150~200만원 들었다.

하던 사업이 힘든 시기였는데, 내가 이걸 감내할 줄이야.

세상 일 참 모르겠고,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마지막 시기 4개월 간은 식사가 극소량으로 줄었다.

특수식과 약을 섞어 주사기로 투여했다.

자발적으로 먹지는 않아도 투여하면 넘기기는 했다.

상태가 나빠지면 병원에 가서 각종 대증 치료 목적의 주사와 영양제, 수액으로 호전시키기를 반복했다.

 

2023년 9월 12일

주사기로 투여해왔던 특수식과 약을 토했다.

그전까지는 일단 넘기면 토하진 않았다.

신체가 음식물을 거부하게 되면 이제 방법이 없다.

이제 끝이 거의 다가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9월 13일

거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다.

동물은 외상을 입으면 인간처럼 소리를 지르고 표출하지만, 병으로 속이 아프면 잔뜩 웅크린다.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를 않아서 더 애처롭다.

어쩌다 나오면 똑바로 걷지 못하고 후들후들 발을 뗀다.

부서질새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니 애써 그릉거린다.

그 소리가 너무 가냘파서 마음이 아프다.

 

9월 14일 오전

보이지 않아 온 집안을 찾았다.

가장 안보이는 장소인 침대 밑 구석으로 들어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양이는 침대 밑으로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동물은 죽을 때가 되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을 간다던데...

 

오후

침대 밑으로 갔던 게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마지막 기력이었던 모양이다.

웅크린채로 소변을 지리고 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 전까지는 웅크린 자리에 소변을 보면 옆으로 옮겨가기라도 했었다.

소변에 젖은 몸은 물티슈로 닦아줬다.

체온이 평상시보다 낮다.

담요로 덮어줬는데 힘없이 눈을 반쯤 뜬채로 가만히 있다.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켰다가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픽 쓰러진다.

쓰러진채로 힘없이 눈을 뜨고 있다.

이름을 불렀지만 귀만 아주 살짝 움직이며 눈동자만 굴리고, 고개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 전까지는 음식물이나 약을 주사기로 투여했어도 생에 대한 의지가 있어 보였는데, 이제 없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좋아하는 습식 사료에 영양제를 섞어 투여해봤지만 거부한다.

힘들어 보인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몸을 뒤채는 게 고통스러워서 그러는 건지,

그냥 일어나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고통스러운 거라면 내일 병원에 가서 편히 보내줘야 할지... 마음이 혼란스럽고 아프다.

오늘 밤, 어쩌면 내일 아침 떠날 거 같다.

연명 치료하는 내내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때가 오니 많이 힘들다.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텐데,

모르는 사이 떠나지 말고 배웅은 받으며 떠날 수 있도록 지켜보기는 하는데,

지켜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다.

양이를 아내와 나 사이에 두고 누워 번갈아 선잠을 자다깨다 하면서 같이 있어 줬다.

밤새도록 눈을 감고 있지 못하고, 눈을 또렷하게 뜬채로 가만히 누워 숨만 가늘고 빠르게 쉰다.

무언가를 보느라 눈을 뜬 게 아니라, 눈을 감지 못하는 거 같다.

이따금 급작스럽게 몸을 뒤채기를 반복한다.

고통 때문인지, 일어나서 다른 곳에 가고 싶은 건지.

 

9월 15일 새벽

아내가 다시 한 번 약과 음식물을 투여했는데 거부하지 않고 잘 받아 먹었다.

 

얼마 후 07시 40분

병원에 데려 가려고 잠시 화장실에 가 씻고 있는데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양이는 아내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내 말로는 두어 차례 뒷발을 경련하듯 채고, 몇 초 후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바람 빠지듯 가늘게 빠져 나오며 눈을 크게 뜬 채로 호흡이 멈췄다고 한다.

온기가 남아 있어서 금방이라도 움직일 거 같았지만, 반응이 없다.

눈을 감겨 주었다.

눈물은 났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통곡이 터지지는 않았다.

밤새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본 터라 그런지, 이제 편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조금 있다 병원에 가면, 편히 보내주는 결정을 내가 해도 괜찮을지 혼란스러웠는데,

그런 내 짐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스스로 떠났다.

 

할만큼은 했기 때문에 젖소 떠났을 때처럼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형편에 맞지 않게 큰 지출을 했던 미련한 짓이 잘했던 거 같다.

밤새 고통을 표현한 것도, 스스로 떠난 것도, 남겨질 우리 마음 편하라고 배려한 건 아닌지...

 

먼저 떠난 젖소 만나서 행복하길 바란다.

양이는 출산한 적도 없고 젖소와 혈연 관계가 전혀 없는데도 젖소가 젖을 빨겠다고 들이대면 얌전히 내어주고는 했었다.

여섯살 1개월 15일, 착한 고양이였다.

 

양이와 젖소, 6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