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 띠아냐르 Savana Tianyar 라는 곳에 갔다.
시골 소로가 아닌 주도로로 1시간 거리면 약간 빡센 편이다.
길이 좋아서 차들이 쌩쌩 다닌다.
요런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원래는 그냥 Tianyar라는 지역의 이름 없는 벌판인데, 아프리카 사바나 지형을 닮은 경치라 그런 이름을 붙였다.
인니인들이 과장이 좀 심한 편이다. ㅋ
그랜드 캐년을 본떠서 그린 캐년이라고 이름 붙인 곳도 있고, 텔레토비 동산이란 이름이 붙은 언덕이 인니 전역에 몇 십 군데 있다.
아메드 지역을 벗어나서...
주도로에 들어서니 확실히 빡세고, 경치도 볼 거 없었다.
지도상으로는 해안을 따라 달리지만, 바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있어봐야 키 높이 넘어가는 장애물이 있으면 안보이는 게 당연하다.
사고 당했던 친구 동생도 뒤따라 오는지라 계속 신경써야 했다.
구글이 시키는대로 소로로 접어들어 주욱 달리다가...
다시 우회전으로 들어가라는데 길이 이게 뭔... @_@;
이런 길은 뒤에 누구 태우고 지나면 상당히 위험하다.
스로틀 당기는데 뒷사람이 무게 중심 살짝 틀기만 해도 후르륵 미끄러진다.
조금 더 가니까 자갈도 막 깔려있고... ㄷㄷ
인가도 없고, 인적도 없고...
후덜덜 하며 5분 정도 가면...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인 벌판이 나온다.
망했다.
구름에 덮여 아궁산이 안보이니 그냥 흔한 허허벌판이다. =_=
뭐 한국이라면 이런 허허벌판이 그대로 있는 것도 유니크하겠지만.
여기 오려면 구름은 확실히 체크해야겠다.
음료나 커피, 컵라면 등을 파는 작은 가게가 덩그러니 있다.
보아하니 이 곳에서 자고 먹고 생활하는 거 같다.
근데 손님이 하나도 없으니 원...
우리 갔을 적엔 딱 우리 밖에 없었다.
개들이 순하다.
흰둥이가 엄마개인데, 지 새끼들 귀여워하니까 질투가 났는지, 새끼들 밀어내고 자기 쓰다듬어 달라고 들이댄다. ㅎ
멀리서 찍은 가게 풍경
우리가 잠깐 머문 가게에서 떨어진 곳에 다른 가게가 있고, 또 한참 떨어진 곳에 하나 있고.
일종의 상권 상호존중인가?
서쪽엔 동산만 한 꼬마 아궁산
에잉, 꽝이다. 별로 볼 거 없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이쪽 길로 가면 오토바이로 다니기 더 편하다고 하는데, 현지인 기준이라 믿음이 잘 가지 않는다.
주인 아주머니가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여길 수백 수천번 왔다갔다 하는 현지인과 외국인의 '편한 길'에 대한 기준이 달라서 그렇다.
무수한 경험을 통한 조언은 대부분 옳지만, 늘 옳은 건 아니다.
연장자의 인생 조언 같은 게 그렇다.
그래서 그냥 지도상으로 주도로까지 최단거리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갔다. (연두색)
파란색 경로가 왔던 길이다.
보아하니 지나왔던 비포장 길보다는 좀 나아 보이던데 뭐.
자갈과 흙을 채취하는 곳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채취 후 파인 땅을 그대로 방치해서 풀이 자란 곳들
아니 뭐 썩 위험한 길도 아니구만 뭘.
아마도 구글은 자동차 기준으로 길을 알려줬나 보다.
숙소에 돌아와서 좀 쉬다가 오후 7시 쯤, 와룽 아궁 아메드 Warung Agung Amed 에 갔다.
리빠 해변 Lipah Beach 에 있는데, 길 지나면서 보면 묘하게 눈에 잘 안띄는 곳에 있어서 지나치기 십상이다.
사흘 전 아메드 남부 라이딩하며 지나치다 Live Music Today라고 쓰인 입간판을 보고 들러서 라이브 공연 무슨 요일 몇 시에 하냐, 나중에 꼭 오겠다 했던 곳이다.
그때 주인 아주머니 표정이 무뚝뚝해서 좀 사나운 분인가 싶었는데... ㅎㅎ
우리가 도착했을 적에 주인 아저씨 라이브 공연이 한참 진행중이었는데...
와 씨 뭐지? 블루스 삘 미쳤다.
이런 곳을 두고 빠차니 보보니 다른 곳을 갔던 선택들이 후회된다. 그 시간들이 아깝다.
음식과 맥주를 시키자 시원한 맥주와 가벼운 무료 안주를 먼저 내오는 센쓰!!! (한국이라면 당연하지만 인니는 아니다.)
오빡 Opak 이라는 과자다. 싱꽁 Singkong (카사바) 를 갈아서 밀가루와 반죽해 모양을 만들어 튀긴 칩인데, 살짝 쓴맛이 도는 고소함이 별미다.
카사바를 얇게 썰어서 그대로 튀기는 카사바 칩과는 다르다.
음식들도 대충 구색만 맞춘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다.
포크립도 돼지 잡내 하나도 없어서, 그 유명한 더티 누리스 레스토랑 보다 훨씬 맛있다.
시킨 메뉴들 전부 대만족.
음식이 45분 만에 나왔으니 좀 늦은 편이었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음식을 가져다 주면서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걸로 보아, 주문이 한꺼번에 밀려서 그런 모양이다.
그보다는 인니 현지 식당에서 음식 늦게 나왔다고 미안하는 말을 하는 거 처음 들어봤다.
여러모로 진지하게 제대로 장사하시는구나,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홀에 왔다갔다 하는 개들도 순하고... ㅋㅋ
비트나 베이스는 MR 틀어 놓고, 어쿠스틱 기타 연주하며 노래.
굳이 끝까지 부르지 않고 끝내고 싶을 때 적당히 끝내 버리신다.
손가는대로 즉홍 연주 짧게 때리기도 하시고.
근데 또 건성건성 하는 건 아니다. 삘따라서 재미없는 사족은 생략해버린다고나 할까. ㅋㅋ
라이브 연주 시간은 7시부터 9시까지다.
공연이 끝나고 주인 아저씨가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나눴다.
손님들은 전부 서양인이고, 대부분 주변 숙소에 묵는 사람들 같았다.
주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폼이 장기투숙하며 자주 와서 얼굴을 서로 아는 거 같은 사람들 비율도 높았다.
우리 테이블에도 와서 인사를 나눴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며칠전 낮에 왔었는데 기억나냐고 물으니 씨익 웃으면서 당연히 기억한다고 하시는데, 무뚝뚝 엄해 보이는 얼굴이 표정을 사악 푸니까 엄청 따듯하고 상냥하다. 온탕 냉탕 반전 효과랄까.
주인 아저씨는 개구장이 같았고 (소싯적에 엄청 노셨을 거 같았다), 아주머니는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주인 아저씨 때문에 속 좀 썩었을듯 ㅎㅎ)
주인 아저씨는 음악 하신 경력이 35년 정도 되셨고, 2019년에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팬데믹...)
주인 아저씨 이름은 데와 Dewa, 아주머니 이름은 데위 Dewi 인 것도 재미있다. 데와는 힌두교의 '남신', 데위는 '여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게 이름이 와룽 아궁 Warung Agung 인가보다. 아궁은 최고라는 뜻도 있지만, 신들이 거주한다는 전설이 있는 발리의 성산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 이렇게 늦게 오게 된 게 너무 후회된다, 그날 들러서 물어봤던 날 왔었으면 매일 왔을 거다, 내일도 반드시 올테니 자리 예약하겠다 너스레를 떨고 훈훈하게 자리를 파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중심가 벗어난 지역은 8시만 되어도 엄청 깜깜하다.
깜깜한 중에 불이 환하게 켜진 상점이 보여서 들렀는데...
상품 구색이 심상치 않다.
음식 직접 해먹는 장기 투숙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양이다.
달걀, 과일, 주방도구, 냉장고에는 각종 햄과 돼지고기, 닭고기까지 있다.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 영양제, 고양이 모래까지 있다.
이쪽 지역 일대에는 장기 투숙하는 여행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돼지고기 육포가 있어서 사봤는데 맛은 별로다.
싱가폴에서 사먹어봤던 육포맛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하여튼 오가닉이니 헬시니, 건강한 음식을 표방하는 것들은 대부분 맛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