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는 1년 내내 에어컨을 쓰기 때문에 3~6개월 마다 필터 청소를 한다.
필터 청소는 AS 대상이 아니다.
직접 할 수도 있지만 보통 뚜깡 아쎄 Tukang AC 라고 부르는, 에어컨 기술자를 부른다.
* tukang 기술자 AC 에어컨
정기적으로 필터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감이 꽤 안정적이라, 뚜깡 아쎄는 어지간한 동네엔 다 있다.
에어컨 기술자라는 말 그대로, 어지간한 고장도 고친다.
인니도 AS 시스템이 없는 건 아닌데 대응이 느리고 비용도 싼 것도 아니라, 어지간하면 뚜깡 아쎄에게 시킨다.
입소문 장사라 실력 괜찮고, 가격을 터무니 없이 속이지 않는 사람이 살아남기 마련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기술자들은 각자 자기 구역을 침범하지 않는 개념이 있어서, 동네마다 실력이나 인성의 편차가 있다.
기술자에게 외국인은 좋은 먹잇감이다.
현지인 주민 섣불리 바가지 씌웠다가 안좋은 소문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지만, 외국인은 뒷통수 좀 쳐도 괜찮다는 정서가 있다.
뒷통수 맞아도 어쩔 수 없다.
자기 구역을 잡고 있는 시스템이다보니, 뒤통수 맞고 마음에 안든다고 다른 기술자로 바꾸기도 어렵다.
외국인은 철저한 약자다.
렌트로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됐지만 깔끔하다. 오래됐으니 집세는 저렴한 편이다. 그리고, 오래됐으니 에어컨도 오래됐다... =_=
잔고장이 잦아서 기술자를 부르는 일이 많다.
언젠가 침대방 에어컨이 고장났다. 프레온 가스를 채운지 얼마 안됐는데 냉기가 시원찮았다.
늘 오던 기술자를 불렀는데 대타로 다른 사람이 왔다.
건들거리는 태도가 못미더웠다. 그래도 그 동안 왔던 뚜깡이 보낸 사람이니 믿고 맡겼다. (안맡기면 어쩔 건가)
대타 기술자가 침대방 에어컨은 컨덴서를 갈아야 한대서, 3만원을 주고 갈았다.
온김에 컴퓨터방 에어컨도 필터 청소와 프레온 충전을 시켰다.
고치고 난 뒤 상태가 더 안좋아졌다.
침대방 에어컨은 상하로 작동하는 바람 날개가 움직이지 않고, 안들이던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물은 뚝뚝 떨어졌지만 그럭저럭 쓸만하던 컴퓨터방 에어컨은 두 시간이면 바가지가 꽉 찰 정도로 심해졌다.
늘 오던 기술자를 다시 불렀는데, 대타 기술자가 또 왔다.
침대방 에어컨은 모터를 갈아야 한댄다. 원래 잘 작동하던게 고치고 나서 멈췄는데?
컴퓨터방 에어컨은 컨덴서를 갈아야 한댄다. 밖으로 나가야 할 물이 안으로 들어오는 건데 컨덴서를 갈아?
말이 되냐고 따졌지만, 뻔뻔한 얼굴은 변함이 없다.
집주인의 대리인에게 연락했다. 이사왔을 적에 기술자를 소개해준 게 대리인이었다.
대리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마침 근처라며 집으로 왔다.
고치기 전에 자기한테 먼저 말 안했다고 뭐라 하길레, 당신이 소개해준 기술자가 보낸 사람이라고 했다.
당신에게 먼저 얘기해봤자 조치 엄청 느리잖냐는 소리는 굳이 하지 않았다.
대리인이 원래 오던 기술자를 부르니 재깍 왔다. 다수의 주택을 관리하는 대리인에게 밉보이면 일감이 많이 줄어들터다. ㅋㅋ
원래 오던 기술자는 건들거리는 대타 기술자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며 에어컨을 살피더니 모터와 컨덴서 교체해야 한단다. 대신 소음은 실외기 문제인데 무상으로 해주겠단다.
우와, 시발 멀쩡했던 걸 건들거리는 놈이 고장낸 건데 물증이 없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모터는 갈지 말라고 하고, 컨덴서만 교체했다. 3만원 더 나갔다.
대신 앞으로는 반드시 당신이 하고, 다른 사람 대타 보내지 말라고 했다.
알고 보니 건들거리는 놈은 원래 오던 기술자의 형이랜다. 대리인이 알려줬다.
아마 놈팽이질을 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동생에게 빌붙은 모양이다.
침대방 에어컨은 한 일주일 소리 안나다가 다시 소리가 났다.
소리 날 때마다 옆통수를 몇 번 후려치다 보면 소리가 안나서, 그냥 그렇게 쓴다. 부서지든 말든 내 거 아니다. 살살 잘 다루며 아껴 쓰려던 내가 등신이었다.
컴퓨터방 에어컨은 컨덴서 갈고 이틀 만에 다시 물이 줄줄 샜다. 기술자를 다시 불렀는데, 뭐 좀 고치는 시늉 하고 갔다. 돈은 당연히 안냈다.
다음날 또 새서 또 불렀다. 또 깔짝거리더니 이번엔 실외기 문제랜다. 그럼 원래 컨덴서 문제는 아니었던 거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문제고 이것도 문제란다. ㅋㅋㅋㅋ
그래서, 실외기 문제면 집주인이 비용 부담해야 하니까, 대리인에게 물어봐서 비용 지불하겠다고 하면 고치라고 했다.
그 후로 감감 무소식이었고 흐지부지 끝났다. 덥고 불편한 건 내 사정이고, 대리인 입장에서야 에어컨이 달려 있기만 하면 되는 거다.
에어컨 아래에 큰 물통 받쳐 물 받으며 반 년을 더 썼더니, 이제 아예 찬 바람이 안나온다.
기술자 또 불렀더니, 에어컨이 너무 낡아서 고칠 부품을 구할 수 없단다.
대리인에게 말해봐야 언제 조치할지 모른다. 새걸로 교체해야 한다면 내년 임대료에 포함시킬 거다.
그래서 그냥 내가 새로 사서 달았다. 어차피 임대로 올릴 값이나 비슷하다.
기술자가 에어컨 교체 전에는 비용이 2만원이라더니, 교체 끝나고 나서는 3만원이란다. 아우터 교체 비용은 따로란다. ㅋㅋㅋ
나도 그냥 웃으면서, 아우터는 낡은 거 그대로 두고 에어컨만 새 걸로 교체하는 사람도 있었냐고 물었다. 기술자 새끼도 쪼개면서 그런 사람은 없댄다.
당연하지, 새끼야. 2만원 받으려 했는데 만만한 외국인이 자꾸 눈에 띄니까 바가지 한 푼 더 씌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그냥 줬다. 원래 이렇게 사는 새끼들이 뭔 죄인가. 만만해 보인 내 잘못이지.
이사갈 때 되면, 그 헐어빠진 에어컨으로 다시 교체할 거다. 교체 비용 또 나갈테고.
인니에 살면 흔하게 겪는 소소한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