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tc

[고양이 이야기 V] 5. 에필로그 - 이런 된장, 너 젖소 아냐?

명랑쾌활 2020. 8. 31. 08:58

여자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

지인에게서 새끼 고양이를 분양 받지 않겠냐는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여자친구는 깜이와 양이의 2세 계획을 포기한 이후로 새로운 녀석을 들이고 싶어 했었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자꾸 가는 검정 노랑 얼룩이로 하자고 했다.


돈이 목적이 아닌 분양이었기 때문에 따로 돈을 지불하진 않았다.

대신 직접 와서 데려가야 했고, 백신도 아직 맞지 않았다고 한다.


따만 미니 Taman Mini 근처인 지인의 집까지는 1시간 거리로 만만했지만, 막판 약 500m 구간은 1.5차선 너비의 양방향 길을 지나야 해서 심장 쫄깃했다.

다행히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

맞은편 차량 운전자는 이런 일이 일상이라는듯 익숙하게 사이드 미러를 접고 최대한 벽에 붙였고, 나 역시 따라 해서 겨우 지나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새끼 고양이는 차를 처음 타보는지 겁에 질려 여자친구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여자친구 말이, 지인의 집 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 새끼 고양이가 여자친구를 피하지 않고 순순히 가까이 다가왔다고 한다.

원래 새끼 고양이가 하도 요리조리 피해다녀 전 주인인 지인도 잡기 힘들어서, 어떻게 잡아서 넘겨주나 걱정했었다며, 지인이 신기해 했댄다.


여자친구는 새끼 고양이에게 된장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런 된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어서 나도 마음에 들었다.

개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면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 고양이니까 뭐.


깜이는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보였지만, 양이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스트레스로 크게 앓고 난 뒤, 양이는 성격이 더 예민해졌다.


된장은 성격이 둔한 건지 사료도 잘 먹고, 물도 마시고, 변도 화장실에 잘 보고, 해먹에서 잠을 청했다.

깜이나 양이는 해먹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확실히 서울 고양이는 뭔가 다른가 보다.


이튿날 이미 긴장이 풀렸는지 빨빨 돌아 다니고 작은 방에서 나오려고 해서 시험 삼아 합사해봤는데, 별 일 없이 잘 지냈다.


근데 어째 당최 겁을 모르는 거 같다.


깜이에게 응징을 당하고도 줄기차게 덤벼든다.


읭?


읭?


하는 짓들이 영락 없는 젖소다.

"너 혹시 젖소냐?" 하고 물으니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운다.


아마도 젖소의 영혼이 섞여 들어온 게 아닐까.

난 윤회도 전생도 믿지 않지만, 뭐 그렇게 믿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다.

하지만, 된장은 된장이다.

된장이 오랫동안 이것저것 많이 누리다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