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Flores Indonesia] 13/18. Bajawa - Moni

명랑쾌활 2019. 10. 16. 08:11

어제 밤 9시 이전에 잠들어, 새벽 5시 30분에 눈을 떴다.

양껏 푹 쉬어서 개운하다. 컨디션이 제대로 돌아온 거 같다.


모니 Moni 까지 태워줄 기사 마르셀 Marsel 씨는 벌써 일어나 매니저 아저씨와 담소 중이었다.

그도 어제 저녁 도착하여 숙소에서 묵었다.

매니저 아저씨와 정말 친구가 맞는 거 같다.

인니어로 뜨만 Teman 은 '친구'라는 뜻이긴 한데, 뜻이 광범위하다.

아주 가까운 친구뿐만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에게도 쓰기 때문에, 한국인이 헷갈리기 쉽다.


8시 20분 모니로 출발

나와 일행 말고, 마르셀 씨의 사촌 동생도 동행한다.

그는 엔데 Ende 대학교 학생인데, 고향집에 왔다가 엔데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마르셀 씨는 메인도로가 막힌다며 초반 구간은 뒷길을 통해 갔다.

왕복 1.5차선 정도로 폭이 좁은 도로였지만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거의 없어서 쭉쭉 달릴 수 있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가이드인 그에게서 여정 내내 플로레스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라부안 바조에서 마우메레 Maumere 까지 동서를 잇는 도로가 지금처럼 좋아진 건 불과 2~3년 전 일이라고 한다.

그 전엔 도로 상태가 안좋아서 오래 걸렸고, 사고도 빈번했다고 한다.

베니 Beni 전통마을도 10여년 전에야 지금 같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예전엔 차를 타고 마을 안마당까지 들어와도 딱히 통제하지 않아서 복잡하고 마을 경관을 훼손했었댄다.

(하긴 사람 사는 마을이니 차가 들어가든 말든 딱히 통제하긴 애매했을 거다.)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를 하고, 마을 앞에 주차장을 만드는 일에 마르셀 씨도 관여했었다고 한다.


1시간 반 쯤 달렸을까, 마르셀 씨는 경치 좋은 곳이라며 잠시 쉬어 가자며 길 옆에 차를 세웠다.


산으로 둘러 쌓인 고만고만한 언덕들 중 높이 솟아 경관이 탁 트인 곳이다.

마르셀 씨는 외국인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져 있어서, 플로레스에 땅을 물색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그를 찾는다고 한다.

(이번에 마우메레에 마중 나가는 손님도 외국인)

이 스폿도 그 외국인 중 한 명과 돌아다니다 찾게 된 곳이라고 한다.

도로 바로 옆이니 접근성은 나쁘지 않지만, 아마 식수와 하수 처리 문제때문에 탈락하지 않았을까 싶다.


블루 스톤 비치라는 곳에 참시 차를 세웠다.


푸른 빛이 도는 자갈이 널린 곳이었다.

도로변 군데군데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고 팔고 있었다.

원래 해변에 자갈이 쫙 깔려 있었는데, 인근 주민들이 내다 팔아서 지금은 해변이 흉물스럽게 됐다고 한다.


해변 뿐만 아니라 이 일대 어디든 땅을 파면 푸른색 자갈이 흔히 보였다.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마무리를 제대로 안해서, 도로까지 굴러 나온 낙석이 가끔 보인다.


찐찐 해변 Pantai Cincin (cincin = 반지) 도 들러보고 싶었지만, 차량이 안쪽까지 들어갈 수 없어서 왔다갔다 1시간은 걸린다 해서 포기.

나야 모니까지만 가면 되지만, 마르셀 씨는 다시 5시간을 달려 마우메레까지 가야 한다.


그럭저럭 괜찮은 경치인데, 접근성이 안좋아서 아직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나중에 혹시라도 엔데에 며칠 머물 일이 있으면 들러 볼까 한다.


그 밖에 엔데 근처 해안도로의 풍광도 좋았다.

열심히 사진 찍었는데 건진 게 한 장도 없어서 구글 스트릿 뷰 캡쳐로 대신한다.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풍경

매일 하는 모양인지, 내가 지날 때도 있었다.

한편에선 아이들이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엔데 화산과 바닷가 마을이 겹쳐 보이는 풍경


엔데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인 이 작은 마을은 보로깐다 Borokanda 라고 하는데, 마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슬람 사원이 있다.

기독교계 지역인 플로레스에서는 이슬람 사원이 드물다.


엔데 시내와 그 남쪽으로 튀어나온 화산 지역을 가로로 펼쳐진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


여기도 나중에 혹시 엔데에 머물 일이 있으면, 오토바이로 한 번 달려보고 싶다.

자동차는 확실히 맛이 덜하다.


마르셀 씨는 엔데 시내 좁은 골목길의 어느 허름한 가정집에 사촌 동생을 내려 줬다.

사촌동생은 차량 뒤에 실려 있던 두 말 정도 되어 보이는 쌀자루와 종이 박스로 쌓인 짐을 내렸고,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마르셀 씨에게 물어보니, 사촌동생은 자취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비를 아끼려 고향 부모님이 챙겨준 쌀로 직접 밥을 지어 먹는다고 하는데, 옛날의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엔데에서 모니로 가는 산길엔 의외로 멋진 경치가 많았다.


엔데 시내를 벗어나, 모니로 향하는 오르막길 초입에서 본 곳

공사가 중단된 주유소 뒷편의 옹벽 위에 카톨릭 십자가가 걸려 있다.

기도하는 곳인지, 옹벽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사람도 보였다.


도로를 기준으로, 공사 중단 주유소 반대편에는 월로워나 하천 Kali Wolowona 이 도로와 나란히 흐르고 있었다.

그 하천 너머로 마을이 있는지, 사람만 건널 수 있는 출렁다리가 몇 군데 있다.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올라 소수력 발전소가 있는 지역 일대에 들어서면 멋진 계곡 풍광이 펼쳐진다.


자동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멈춰서서 풍경을 감상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을만큼 멋진 경치였다.


가끔 만나는 계곡 하천의 색은 푸른빛이 감돈다.

블루스톤 비치도 그렇고, 아마 이 일대 지역의 암석 색깔이 그런 모양이다.


하천 근처에는 드문드문 크고 작은 산골 마을이 있었다.


가끔씩 낙석으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들이 도로변에 보여 식겁했다.


도로 확장 공사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구간도 있다.


그 옆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12시 40분, 모니 Moni 마을 도착

총 4시간 반 정도 걸렸으니 아주 양호하다.

마르셀 씨는 우리를 숙소인 마호니 게스트 하우스 Mahoni Guest House 앞에 내려주고 쿨하게 떠났다.


숙소는 큰 길가에 있어 위치가 아주 좋았다.
단점이라면 와이파이가 없다는 것 정도.

운영자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웰컴 드링크로 커피를 내왔다.
커피에서 살짝 생강향이 감돌길레 물어보니, 말릴 때 생강과 같이 말렸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직접 말리고, 볶고, 빻은 커피라고 한다.


객실 앞에 앉아 있으니 바람이 솔솔 불어 시원했다.


좀 쉬었다가 오후에 끌리무뚜 호수 Damau Kelimutu 에 갈까 하여 아주머니에게 오토바이 렌탈을 물어 보았다.

아주머니는 날씨가 엄청 더우니 오늘은 쉬고, 내일 새벽에 가라고 권했다.

슬쩍 투어 가이드와 차량을 권하는데, 어딘가 좀 서툴러 보였다. (능글 맞게 굴지 않았다)

혹시 내일 날씨가 안좋을까 걱정된다 했더니, 요근래 일주일간 비가 안왔으니 내일도 날씨가 분명 좋을 거랜다.

어허... 일주일 동안 비가 안온 것과 내일도 비가 안올 건 상관 없는 일 아닌가?


오늘이 어제 같다고 해서 내일도 오늘 같으리란 건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

3년 8개월 10일을 출퇴근 했어도 3년 8개월 11일째에는 해고 통지를 받을 수도 있다.

어제까지 총 오천삼백칠십육일 동안은 집에 별 탈 없이 귀가했었던 사람이, 오늘 사고로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별 다른 일 없는 평범한 나날들이 계속된다는 건, 하루하루 더할수록 진귀한 기록 경신이다.


숙소 앞 도로변에 흰색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얼마 후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에서 재미있는 걸 봤다.

숙소 앞에 주차된 저 차가...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에도 나온다.
내가 도착한 날 촬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와투가나 Watugana 마을이라고 했는데, 통상 모니 Moni 라고 하는 게 맞다.
이 마을에 있는 중고등학교 이름도, 시장 이름도 모두 모니다.
와투가나 마을은 모니 중에서도 현지인이 모여 사는 (몇통 몇반 할 때의) 통 정도 구역의 이름이다.
방송에는 관광지도 아니고 딱히 뭐 볼 것도 없는 와뚜가나 마을을 둘러보는 장면이 나오던데, 모니가 워낙 작아 볼 게 없다보니 분량 채우려 그런게 아닌가 싶다.

도로가 비에 젖은 걸로 보아, 이 장면은 다음날 촬영한 모양이다.


숙소에서 바라 본 촬영지점


1시 좀 넘어서 숙소 바로 옆 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다.


오토바이 폐타이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
아이디어는 좋은데, 별로 앉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현지음식 베이스에 몇 가지 서양 메뉴가 있는 곳인데, 가격대는 현지 시세에 비해 그리 저렴하지 않다.


아이스티를 시켰는데...


뜨거운 차에 어중간하게 넣은 얼음 때문에 미지근하다. ㅋ

대나무 빨대가 꽂혀 나왔는데, 대나무 특유의 냄새 때문에 음료수 맛이 거지 같아져서 그냥 잔 째로 마셨다.


폐타이어를 재활용한 테이블과 의자도 그렇고, 서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친환경 컨셉의 업소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좀 어설프다.

환경 보호를 위해 육체적 불편을 감수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음식 맛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건 아니지 싶다.

운영의 편함이나 운영 비용 절약의 목적으로 악용되는 친환경은 그냥 교활한 수작일 뿐이다.


인니식 백반인 나시 짬뿌르 Nasi Campur


오이가 참외같이 생겼다. 맛은 별로였다.


이 식당 음식 맛은 그닥그닥이었다.

요리에 코코넛 밀크를 과하게 써서, 특유의 향이 심했다.

현지 음식 깨나 먹어 봐서 익숙한 내 기준에도 심한 편이었다.

이국적인 요리를 맛보고 싶은 외국인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여기 음식 맛을 보고 인니 음식 맛이 다 이렇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 식당은 음식 못하는 축에 속한다.


느긋하게 앉아서 쉬고 있는데...


와뚜가나 마을 입구 골목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떠들썩 하더니...


한 명이 아이 하나를 안고 가고, 그 뒤를 우루루 따라간다.

레스토랑 직원에게 물으니 마을 아이가 차에 치였다고 한다.

얼마 후 따라 갔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데, 표정들이 그리 어둡지 않고 간간히 다행이라는듯 웃는 표정으로 보아 그리 심하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