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Flores Indonesia] 12/18. Manulalu 전망대 식당 & Bena 민속마을

명랑쾌활 2019. 10. 9. 06:47

전망대에서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산봉우리가, 내려가는 길에 모습을 보인다.

좋다.

전망대든 아니든 봤으면 된 거다.

...뭐 못봤어도 안될 건 없고.


다음 목적지인 마눌랄루 Manulalu 전망대까지는 원래대로라면 빙 돌아 큰길까지 나가야 하는데, 지름길이 자꾸 유혹한다. 

지름길 입구

느낌이 싸하긴 하다.

저 가로 놓인 대나무도 큰 차량 들어오면 안된다는 표시로 일부러 꺾어 놓은 거다.

하지만 월로보보 오면서 지났던 지름길 맛이 꽤 좋았던 게 나를 부추킨다.

여기도 입구만 이렇고, 조금만 더 가면 길 상태 괜찮지 않을까?


오, 좀 좁긴 하지만 길 상태 괜찮다.


다시 비포장이 나오긴 했지만 대신 길 폭이 넓어졌다.

차량이 다닌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점점 싸하다.

이쯤에서 돌아가야 하나 싶지만, 길이란 게 한 번 들어서면 어지간해서는 돌리려는 마음이 들지 않게 마련이다.


배추밭이다!


배추를 한창 수확 중이던 피부 시커먼 사람들이 신기하다는듯 쳐다본다.

아저씨 아줌마로 보이는 남녀 구성이 비슷하고 아이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에 사는 몇 가구가 품앗이로 같이 작업하는 것 같았다.

속으론 좀 쫄았지만,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흔들자 다들 웃는 낯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아이들은 마주 손을 흔들어 준다. ㅎㅎ


옥수수밭도 있다!!

신기해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보고 있으려니 저 멀리 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농부 차림에 밀집 모자를 사람이 무슨 일이냐는듯 쳐다본다.

그쪽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며 꾸벅 인사를 하니, 밀집 모자가 위아래로 끄덕 끄덕 흔들리는 게 보인다.


두둥!!!

진창으로 가로막혔다.

차라리 차는 상관없지만, 오토바이가 지나기에는 위험하다.

진창이 평평하다면 살살 지나가면 되지만, 혹시 진창 밑에 돌이나 턱이 있는 곳을 밟으면 삐끗 미끄러져 뒷바퀴가 옆으로 원을 그리며 휙 돌아가기 쉽다.

이런 구간을 세 번 만났는데, 그 중 10m 정도 길이였던 구간은 몇 차례 삐끗 거리며 어찌어찌 지나고 나니 땀이 한 사발은 나왔다.


지름길 구간이 끝나고, 마을이 보이는 곳에 나왔다.

나무 그늘 밑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긴장한 속을 달래려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다.

마침 쟁기를 둘러매고 마주 오던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본다.

공손히 인사하며 마눌랄루 가는 길이 이 길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신다.

그리고, '어쩌다 이 길로 지나왔냐'고 하신다.

나무라는 투였지만 표정에 걱정이 가득한 것이, 마치 위험한 일 한 손자 보는 듯한 얼굴이다.

바자와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고 친절해 보인다.


마을 입구에 있는 조상신을 모시는 구조물


집집마다 앞마당에 텃밭이 있었다.



쭉 뻗은 마을길 너머 이네리에 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스폿

멋진 풍경에 홀려 사진 찍는 걸 깜빡 지나쳤다.


캡쳐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조그만 오두막 같은 건물을 돌아가신 웃어른 무덤이다.

플로레스 지역은 웃어른이 돌아가시면 집 바로 옆에 묘지를 만든다.

보통 타일로 덮어 마감을 하는데, 그 위에 어린 아이나 개, 닭이 올라 가 놀거나 자도 뭐라 하지 않는다.

모신다기 보다는, 평상시 생활 속에서도 추억하고 '함께 한다'는 느낌이다.


바자와 지역엔 대나무가 많았다.


마눌랄루 전망대에 도착하니 마침 12시다.

전망대는 길을 따라 조금만 더 내려가면 있지만, 점심도 먹을 겸 전망대 윗쪽의 레스토랑에 갔다.


숙박업도 겸하는 곳이다.


레스토랑 아래 풍경

사진 가운데 쯤 보이는 파란 건물이 새로 지어진 레스토랑 겸 전망대다.


독특한 분위기다.


창문 모양도 특이하다.


예상대로 가격대는 좀 높은 편이다.

메뉴는 서양식 위주였다.


Potato and Chicken Soup


나시 고렝 Nasi Goreng

음식 맛 괜찮았다.


식당을 가로질러 뒷마당에 가면 이네리에 산과 인도양까지 보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사실 예전엔 마눌랄루 전망대 하면 원래 이곳을 가리키는 거였다.
밑에 새로 지어진 곳이 유사품인데, 지금은 전망대 하면 그 곳으로 안다.


레스토랑 밑에 새로 생긴 전망대는 패스했다.


사실 이곳도 레스토랑이다.

현지인이 지었다는 걸 대번에 느낄 수 있는 촌스런 외양이다.

아마도 중세 유럽의 성 모양을 본 딴 거 같아 보이는데, 외국인은 일부러 이렇게 지으려고 해도 이 감각을 흉내낼 수 없다.


도로를 가로질러 쓰러진 나무를 딱 길 만큼만 베어서 길을 냈다. ㅋ


베나 Bena 민속마을은 여기서 보는 걸로 패스

바자와에 오는 여행자 대부분이 여길 보러 오는 거라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이미 상업화가 되어 뭘 해도 돈이라는데, 굳이 안에 들어가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플로레스를 여행하던 시기에 <세계테마기행>도 촬영을 왔었다.


이렇게 여행 프로그램에서 잘 보여주니 굳이 마을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되겠다.


자막 내용을 보면 마치 저 마을이 해발 2,200m 에 있는 걸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산 높이가 그렇다는 거고, 마을은 산기슭에 있다.

그리고, 이네리 산이 아니라, 이네리에 산이다.


참고로, 민속마을이 베나만 있는 건 아니다.

제법 큰 규모에 보존이 잘 되어 있고,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곳이라 유명해진 거고, 다른 곳도 많다.


니끼 시에 Niki Sie 마을


응이오 Ngio 마을


그 밖에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곳들도 많다.

지금이야 오토바이가 지날 수 있는 도로 정도는 마을까지 이어져 있지만, 예전엔 울창한 밀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각자 자기 구역에 띄엄띄엄 마을을 이루고 살았을 거다.

나중에 현지인 운전사에게 들었던 얘긴데, 마을들이 산 중턱에 있는 이유도 외적이나 다른 부족으로부터 방어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부인 방어가 마을 위치 선정의 주요 조건이다보니 현재까지도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게 된 셈이다.


베나 마을 옆 초등학교

석기시대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해서, 애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멧돼지 잡으러 다니고 그러지 않는다.


딱히 베나 전통마을 구역이 아니더라도 전통 가옥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전통 가옥은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하는 곳이다.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이네리에 산을 끼고 돌아 난 길로 가본다.



길은 좁은 편이었지만 한적하고 쾌적했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너무 없어서 좀 불안할 정도였다.


돌아가는 길에도 전통 형태의 마을을 몇 군데 더 지나쳤다.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주민들이 사는 곳들이다.

새로 형성 되어가는 중인지, 다 지어진 집들 사이사이에 새로 블록벽돌로 벽을 올리고, 함석으로 지붕을 덮는 공사를 하고 있는 마을도 있었다.


기름 넣고, 잠부 열매도 얻었던 곳 근처에 도착

올 때도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던 거다.


해피해피 호텔을 지나쳐 바자와 시내에 들어갔다.

바자와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또 다른 뷰 포인트인 성모 마리아 상 언덕 Bukit Patung Bunda Maria 에 가보고 싶었다.

(부낏 월로위오 Bukit Wolowio 라고도 한다.)


<사진 출처 : blogspot.com>

카톨릭계인 플로레스 지방엔 성모 마리아 상이 세워진 곳들이 몇 군데 있다.

가호한다는 의미가 있어 보통은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지기 때문에, 종교적 상이 있는 곳들은 대부분 풍광이 좋다.


바자와 시 남서부엔 길 가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곳이 있었다.


대나무가 엄청 두껍다.

뒷길이라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고적하고, 공기에 섞인 대나무 향도 좋았다.

산책 삼아 슬슬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지역도 루뗑처럼 한낮이면 비가 오나 보다.

미련 없이 성모 마리아 상 언덕 가는 걸 포기하고 바로 숙소로 방향을 돌렸다.

쌀쌀한 기온의 산간 지방에서, 며칠간 고갯길 이동하느라 컨디션이 약해진 상태에 비라도 맞으면 탈 날 게 확실하다.

서둘러 갔지만, 1분도 안되어 와장창 쏟아지는 비에 몸 앞판은 쫄딱 젖어버렸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핫샤워를 했다.


핫샤워로 보송보송해진 몸으로 바깥의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주방에 커피 한 잔 부탁해 받아 들고 숙소 앞 소파에 노트북을 펴고 앉아 엔데 Ende 숙소를 예약하고, 내친 김에 발리행 항공권과 발리 공항에서 인계 받을 렌탈 오토바이도 예약했다.

따로 일정을 정하지 않은 여행이라 예약을 미루고 있었는데, 여정 3분의 2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확정할 필요가 있었다.


예약을 마치고 오랜만에 문명 세상의 소식들을 보고 있으려니, 매니저 아저씨가 다가 왔다.

라부안 바조에 사는 자기 친구가 마우메레 Maumere 로 손님을 태우러 가는 길에 여기 들러서 하루 자고 가는데, 원한다면 그 차로 모니 Moni 까지 타고 가면 어떻겠냐고 한다.

(라부안 바조는 플로레스 서쪽 끝이고 마우메레는 동쪽 거의 끝이라, 차로 20시간 가까이 걸린다.)

두 명 50만 루피아라는데, 솔깃한 제안이다.

일반 택시로도 어차피 두 명이면 30만 루피아가 든다.

이미 가난한 여행자 컨셉 깔아 놓은 게 있고, 그 운전기사도 어차피 마우메레 가는 길이기도 해서, 넌즈시 두 명 40만 루피아 해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매니저 아저씨는 바로 그 운전기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더니, 40만 루피아 OK 랜다.

굿굿~ 일행이 여행사 버스의 과속 운전으로 겁에 질렸었던지라, 모니까지 어떻게 가나 했는데, 행운이다.


비는 1시간 정도 내리다 그쳤지만, 미열이 있어 성모 마리아 상 언덕 가는 건 포기하고 쉬었다.

무리해서 좋을 거 없다.

오후 5시, 약간 이르지만 저녁 먹으러 어제 갔던 디또스 Dito's 레스토랑에 갔다.

일찍 먹고 일찍 잘 생각이다.

컨디션 안좋을 땐 보약이고 뭐고 잠이 최고다.


아얌 워꾸 Ayam Woku

튀긴 닭에 매콤한 소스를 끼얹은 요리인데, 은은한 생강향이 일품이다.

생강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에도 향긋하게 느껴졌다.


가도가도 Gado Gado

인니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땅콩소스 샐러드 요리다.

숙주 대신 다운 라부 Daun Labu (라부 잎) 가 주재료라는 점과 땅콩 소스에 케짭 마니스 Kecap Manis 가 많이 들어가서 일반 가도가도보다 좀 더 달다는 점이 달랐다.

다운 라부는 10 여년 전까지만 해도 자카르타 인근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어 이젠 보기 어렵다고 한다.

일행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 있는 모양인데, 내겐 그냥 물기가 많은 풀줄기였다.

숙주랑 비슷한데 물기가 약간 적고 약간 더 아삭하다는 정도?


사떼 아얌 Sate Ayam


감자 튀김이 정말 맛있다. 강추!! ㅋㅋ


오후 6시쯤, 정전이 됐다.

바자와 지역은 전력 사정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구역을 나눠 1주일에 1번 꼴로 계획 정전을 실시하는데, 이 구역은 매주 토요일 저녁 6~7시랜다.

여행자 대상 업소가 많아 토요일 저녁이면 가장 피크일텐데, 하필인지 일부러인지 모를 일이다.


이것저것 막 시켜 먹었더니... 가랑비에 옷 젖었다. ㅎ


맡겼던 세탁물도 깨끗하게 빨아서 갖다 줬다.

예전엔 스스로 부지런히 빨아서 널고 했는데, 이제 게을러져서 못하겠다.

그냥 맡기고 말지.

헝그리 배낭 여행은 이제 못할 몸뚱아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