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조금 넘어서 체크 아웃했다.
계산서에 오토바이 렌탈비가 없어서 물어보니, 프론트 직원이 되려 내게 얼마로 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오토바이 렌트 장사를 따로 하는 게 아니라, 직원 오토바이를 빌려줬기 때문인가 보다.
라부안 바조에서 하루 렌탈비가 7만 5천 루피아였다고 알려줬다.
직원은 그렇다면 5만 루피아 어떠냐고 한다.
반나절이니 4만 루피아겠지만 기분 좋게 동의했다.
1만 루피아는, 오토바이 대여 없다고 거절하면 간단할 걸, 굳이 직원 개인 오토바이를 따로 빌려준 친절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오후 2시에 출발하는 바자와 Bajawa 행 버스 올 때까지 옥상에서 기다려도 되겠냐고 하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나중에 버스가 오면 따로 알려주겠단다.
근래 들어 매일 오후 쯤이면 비가 온다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비구름이 몰려 온다.
그리고, 잠시 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구눙 마스 Gunung Mas 버스가 1시 45분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인 2시 전에 손님들을 태우러 순회 공연하는 모양이다.
15인승 미니버스였는데 조수석과 앞자리 1, 2열은 비어 있었고, 뒷자리 3열에 2명, 맨 뒤 4열은 3명이 앉아 있었다.
명당 자리를 왜 비워두고 뒤에 앉았을까... 땡잡았다 하며 앉으려는데, 운전기사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풀 부킹"이라며 뒤에 앉으랜다.
그래서 일행은 2열 구석에 앉고, 나는 3열 한 자리 빈 좌석에 앉아야 했다.
어지간하면 좌석 지정 없을텐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냥 시키는대로 했다.
플로레스 지역은 규칙이 다를 수도 있는 일이다.
다음 승객을 태우기 위해 간 곳은 좁은 골목 안쪽이었는데, 기사가 구시렁 거리면서도 후진으로 꾸역꾸역 그 골목을 들어 갔다.
대략 20미터 정도 들어가니 어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이 올라 탄다.
무거운 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지간하면 골목 밖으로 나가 기다릴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 거 보니, 반드시 태우기로 한 장소까지 가는 게 암묵적인 규칙인 모양이다.
새로 탄 두 사람은 내 일행 옆에 앉았고, 운전기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구눙 마스 여행사 사무실 앞으로 왔고, 그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1열과 조수석에 앉았다.
결국 좌석 부킹이 되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고, 그냥 사람 태우기 복잡하니까 그냥 뒷열부터 순서대로 사람 채워 앉혔다는 얘기다.
뭐 어쩌겠나. 배에서는 선장이 왕이고, 버스에서는 기사가 왕이다. ㅋㅋ
이런 상황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라고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도 없다.
거짓으로 이유를 말해 줘도 검증할 방법이 없지 않나.
구눙 마스 버스는 출발시간에서 10분이 늦은 2시 10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루뗑을 떠났다.
루뗑에서 바자와까지는 4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루뗑 - 깜풍 음보롱 구간은 대체적으로 내리막길이고, 깜풍 음보롱 Kampoeng* Mborong - 아에메레 Aemere 구간은 산을 하나 넘고, 아에메레 - 바자와는 오르막길 구간인, 그야말로 빡빡한 고갯길 코스다.
그에 대비해서 멀미약 대신 똘락 앙인을 미리 복용했다. (의외로 효과가 좀 있음)
* 인니어 중 oe 로 표기된 것은 옛날식 인니어 표기고, '오에'가 아니라 '우' 발음으로 읽는다.
출발 당시 두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1시간 반 쯤 달려 깜풍 음보롱에서 승객 두 명이 더 올라탔다.
운전기사가 이름을 물어보는 것으로 보아 전화로 미리 예약한 모양이다.
좌석 지정은 거짓말이지만, 자리 예약은 맞는 모양이다.
이후, 깜풍 음보롱의 어떤 가게에 들러 짐을 하나 내려놓고 버스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조금 늦게 출발한데다, 두 군데 들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는지, 운전기사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고갯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오르막 구간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산을 넘어 아에메레로 가는 내리막 구간에서는 마치 후지와라 타쿠미가 내리막 배틀이라도 하듯 중앙선을 넘나들며 악셀을 쌔려 밟았다.
나도 운전을 좀 하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나름 살펴가면서 밟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구간을 지나갈 때는 심장이 쫄깃쫄깃 맛있어졌다. (쫄아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함)
일행은 공포에 질리다 못해 급기야 눈물을 뚝뚝 흘렸다. ㅎ...
4시 40분 아에메레 도착
뒷편에 바다와 해변이 펼쳐진 길가 식당에 잠시 정차했다.
여기서 간단히 식사하거나, 볼일을 해결한다.
이후 바자와를 지나 엔데까지 가는 동안 따로 쉬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엔데까지 가는 사람은 여기서 식사를 해두거나 먹거리를 포장해가야 한다.
광란의 롸이딩에 감동이라도 했는지, 다들 얼굴빛이 스머프스러워졌다.
그나마 강한 몇몇은 식사를 했고, 나머지 대부분은 식당 앞턱에 걸터앉아 쉬었다.
난 똘락 앙인 약발이 좋았는지 별로 타격은 없었다.
식당 뒷편의 해변에 가보고 싶었지만, 일행의 패닉 상태가 너무 심해서 달래느라 포기했다.
아에메레 - 바자와 구간은 가장 굴곡이 심한 산길이다.
다행히 오르막 방향이기도 하고, 운전기사도 스머프로 변신한 승객들 낯빛에 가책이라도 느꼈는지, 그리 심하게 빨리 달리진 않았다. (절대 천천히 달리진 않았다.)
아니면, 이미 늦은 진도를 따라잡았거나.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중 언뜻언뜻 보이는 저 아래 바다 풍경이 멋지다.
오토바이를 타고 올랐다면 잠시 멈춰 서서 풍경을 감상했을텐데, 대중교통은 이런 점이 아쉽다.
바자와의 아이콘인 얌전한 고깔 모양의 이네리에 Inerie 화산이 보인다.
하지만, 저기까지 가려면 타고 돌아야 할 구불구불 고갯길이 아직도 한참 남았다.
저녁 6시 8분, 드디어 바자와 도착. 눙물이 난다... ㅠ_ㅠ
원래는 6시 반쯤 도착했을텐데 우리 운전기사의 미친듯한 퍼포먼스 덕분이다.
아마, 급커브 구간이 많은데 가로등이 없는 아에메레 - 바자와 구간을 해 떨어지기 전에 지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바자와만 지나면 그 이후로는 급커브 구간이 별로 없다.
구눙 마스 여행사는 바자와를 종점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없다.
바자와에서 엔데 또는 마우메레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바자와로 들어가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내려 준다.
그리고 나서, 버스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여, 밤 10시 쯤 엔데 Ende 에 도착한다.
나와 일행, 다른 승객 2명이 내리자, 오젝 Ojek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이 우루루 달라붙어, 제각각 "바자와, 오젝"을 외쳤다.
좀 정신없긴 하지만, 다들 표정은 유쾌해서 위협적이진 않았다. (눈빛이 번들거리거나 하지 않았다.)
사전에 조사한대로 앙꼿 Angkot (소형 봉고차 버스) 을 타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어쩌나... 하고 두리번 거리니, 앙꼿 운전기사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와 "앙꼿"이라며 따라 오라 손짓한다.
그러자 나를 둘러싼 오젝 기사들은 쿨하게 포기하며 흩어졌다.
유쾌한 표정의 오젝 기사들 덕분에 바자와에 대한 첫 인상이 좋았다. :)
마지막 버스가 지나갔으니, 이제 다들 퇴근할 거다.
오른쪽 붉은색 승합차가 바자와로 가는 앙꼿이다.
올리는 걸까 내리는 걸까?
낡아서 굉음을 내던 앙꼿이 바자와까지 반도 못가서 오르막에서 엔진이 꺼졌다.
다시 몇 차례 시동을 걸어도 털털거리다 꺼져서 식겁했는데, 10여 차례 시도하자 다행히 다시 시동이 걸렸다.
오젝 기사들이 꼼짝 못하는 걸로 보아, 이 앙꼿 기사가 바자와 입구와 시내를 오가는 황금 구간을 오랫동안 꽉 잡고 있었던 모양인데, 앞으로 차가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에 이 곳에 온다면 다른 앙꼿이 있을 수도 있겠다.
바자와 초입에 위치한 해피 해피 호텔 Hotel Happy Happy 앞에서 내렸다.
원래는 바자와 시내 안쪽 높은 지대에 있어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바자와 루 호텔 Bajawa Roo Hotel 에 묵으려고 했는데 이미 방이 꽉 차서 두 번째로 평이 좋은 이 곳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건물은 낡았고, 내부 구조는 옛날 현지 스타일이었다.
겉만 보자면 한국의 여인숙 급도 안되어 보인다.
하지만, 청소 상태는 양호했고, 침대에 놓인 수건이나 3구 콘센트 등으로 보아 서양인 기준에 맞춰 제대로 운영하고 있어 보였다.
고풍스러운 자띠 Jati (티크목) 침대
무지 비싼 거다.
방에 비치된 두툼한 숙소 안내 파일철을 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Henk와 Marie라는 두 네덜란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무려 2011년에 오픈했단다.
어쩐지 집 내부 구조가 현지 삘이다 싶었는데, 원래 있던 집을 임대해서 고친 거였다.
2011년이면 나도 자카르타 인근 까라왕 지역에 새로 오픈한 공장을 관리하면서, 별의 별 말도 안되는 일들을 해결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시절이다.
인프라가 낙후된 플로레스 지역이라면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힘들었을 거다.
교통 인프라가 매우 안좋았을테니 침대 하나 들이고 탁자 하나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지역 주민들의 폐쇄성도 지금보다 훨씬 심해서 생각지도 못한 방해들이 튀어 나왔을 거다.
당시 두 외국인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느껴진다.
그렇게 고생고생 지어 외국인 눈높이에 맞춰 운영하면서 좋은 평을 받았을 거다.
하지만, 고작 10년도 안되어 인프라 개선과 대자본이 맞물려, 3, 4층 짜리 번듯한 건물의 호텔들이 들어 서기 시작했고, 현지인들도 얼마든지 서양식의 현대적인 숙소 운영 노하우를 알고 있다.
당시엔 바자와에서 아마 가장 좋은 숙박업소였을 이 곳은 이제 다 낡은 그저 그런 숙소가 됐다.
은퇴 후 경치 좋은 곳에 홈스테이를 운영하며, 먹고 살 만큼의 수입만으로 느긋한 노후를 보내길 꿈 꾸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대가족제 전통이 사라지고, 화폐 없이 쌀과 농수산물 만으로는 일반적인 문명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어지간히 재산이 많지 않고는 죽을 때까지 일하고 살아야 하는 게 현대인의 굴레다.
해결책은 현재로서는 사회보장제도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했다. 자식들을 부양하고, 자식들이 장성해서 다시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이 해체되었다.
그러니 국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옛시절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이해한다. 평생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 거다.
한국의 1940 ~ 50년대생들은 역동적인 발전을 경험한 운 좋은 세대이면서도 동시에 어찌보면 딱한 세대다.
부기주산 열심히 배워서 회사에 들어갔는데, 난데없이 컴퓨터라는 물건이 튀어나와서 업무 방식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컴퓨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가차없이 도태됐다. 죽을둥 살둥 새로 배워야 했다.
그렇게 회사 내에서, 혹은 회사를 나와 자기 사업을 하면서 버텼는데, IMF 사태로 인해 다시 모든 게 박살 났다.
그들은 옳다고 믿고 따라왔던 가치들이, 어느 순간 규칙부터 송두리채 뒤집어져 순식간에 아무 소용 없는 것이 되는 일을 수 차례 겪어온 세대다.
새카맣게 어린 것들이 이제 시대가 변했다고 공박하면 진저리를 칠 만도 하다.
몇년간 주산 열심히 배워 경기장에 올랐는데 갑자기 '이제부터 컴퓨터만 씁니다'이러면, 인간이라면 빡이 안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룰을 바꾼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라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고 납득한다고 해서, 돌아버린 빡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한다.
이해한다고 해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오토바이 대여는 1일 10만 루피아로 시세에 비해 비싼 편이다.
빌려줄 때 기름 만땅 채워서 주는 대신, 반납할 때도 기름을 만땅 채워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았다.
아마 규칙이 현실적이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을 거다.
빌려 주려고 기름 만땅 채우는 거나, 반납하기 전에 주유소부터 찾는 거나 서로 번거롭긴 매한가지다.
기름을 바닥에서 만땅까지 채운다고 3만 루피아 씩이나 드는 것도 아니고.
숙소에서 운영하는 투어 패키지들
내 감각에는 가격이 좀 비싼 편이지만, 어차피 따로 투어 패키지를 판매하는 여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입장에 따라서는 오히려 숙소에서 자체 운영하는 게 고마울 수도 있겠다.
거실
보이는 문들은 객실 문이다.
문 너머가 조식 먹는 식당이다.
어지간한 대도시가 아니라면 보통 그렇듯, 바자와 역시 해 떨어지면 거리가 캄캄하다.
하지만 딱히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바자와의 여행자 거리...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어쨌든 여행자 대상 식당이 모여있는 거리 주변은 밝았다.
해피해피 호텔에서 가깝다.
아마 해피해피 호텔이 들어서고 나서, 그 근방에 서양인 여행자들이 늘기 시작하자 형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무 위 오두막집 같은 느낌의 루카스 Lucas 레스토랑
2017년도에 새로 문을 연 에델바이스 Edelweis 호텔
2성급인데 숙박료는 30~40만 루피아 정도
외관은 그럴듯한데 평이 별로 좋지 않다.
아마 인니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일로 운영하는 로컬 호텔이라, 외국인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졌을 거 같다.
나도 인니 서식 초기에 로컬 호텔에 묵었을 때 불친절하다고 느꼈었다. (블리뚱 Belitung 의 딴중 빤단 Tanjung Pandan 과 망가르 Manggar 지역에 처음 갔을 적에 묵었던 로컬 호텔이 생각난다.)
여행 온 투숙객이라면 관광지나 교통편 등등 정보를 물어볼 만도 한데, 잘 모르겠다고만 하기 일쑤고 태도가 좀 심드렁하다.
'호텔에 숙박만 하면 되지, 왜 그딴 걸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라는 듯한 태도다.
무뚝뚝한 건 아니다.
의례적인 미소는 띠고 있는데, '어이쿠, 그렇구나. 근데 그건 니 사정이고~'라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다.
투숙객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마인드가 없다고나 할까.
예전엔 로컬 호텔 직원의 그런 태도가 무책임하고 나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한다.
직원의 태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곳이 '여행자 대상 호텔'이 아니라, '로컬 호텔'이라는 게 문제였던 거다.
예를 들어, 한국의 러브 호텔이나 모텔이라면 비유가 될까 싶다.
한국인이라면 건물 분위기만 봐도 딱 알지만, 외국인은 거기가 여행자들 대상 숙소인지, 아니면 그 지역의 놈팽이와 날라리들의 넘치는 욕구 해소를 위한 레슬링장인지 알기 어렵다.
레슬링 전용 모텔에서 프론트 직원을 붙잡고 관광지 투어 상품이나 오토바이 대여 같은 걸 물어보면서 친절한 응대와 자세한 답변을 바란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프론트 직원의 잘못일까, 실망하는 투숙객의 이상한 걸까?
여담인데, 이슬람이 강세인 인니에도 러브 호텔이 있다.
예전에 까라왕 Karawang 지역에서 일하던 시절, 회사 인근 그랜드 빵에스뚜 Grand Pangestu 호텔이 그런 곳 중 하나였다.
도대체 관광할 거리라곤 하나도 없는 깡시골에 왠 호텔인가 싶었었다.
물정 모르던 시절이라, 그냥 근처 공장들 방문하는 바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호텔인가 하고 억지로 끼워 맞춰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회사 현지인 직원이 그렇고 그런 훈늉한 호텔이라고 알려줬다.
주 고객은 지역 경찰이나 공무원, 유지랜다.
끝발있는 고객을 상대하는 곳이라 대로변에 번듯하게 서있다.
블리뚱 처음 갔을 때 묵었던 호텔이 바로 그런 곳이었을 거다.
당시엔 그런 걸 몰라서, 호텔 부지 안 구석에 반짝이 전구로 치장한 로컬 가라오케가 있는 걸 보고도 그냥 넘어갔었던 거다. ㅋㅋ (https://choon666.tistory.com/353)
이젠 구력이 좀 쌓였는지, 건물 위치나 분위기를 보면 어떤 호텔인지 어느 정도 감이 온다.
'로컬 호텔'은 러브 호텔과는 또 미묘하게 다르다.
비슷한 점도 있긴 하지만...
밀로나리 Milonari 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트립 어드바이저 평이 괜찮아서 선택했는데, 저녁 7시 반인데도 손님이 하나도 없고 분위기가 썰렁하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도 팔뚝에 문신이 가득하고 우락부락하니, 어둠의 세계에 종사하시는 분 같다는 느낌이다.
치킨 스테이크도 괜찮았다.
좀 과하게 태워서 건강에 좋지 않을 거 같은 맛이 아주 좋았다.
감자튀김도 신선하고 맛있었다.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듯, 냉동감자가 아니라 수제다.
라부안 바조 편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플로레스 지역은 어딜가나 대부분 감자튀김이 맛있었다.
두부 카레 Kari Tahu
이것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인니 전통 소주인 아락 Arak 이 있어서 시켜봤는데, 향이 좀 요상했다.
고작 반 컵 좀 안되는 양에 3만 루피아로, 많이 비싼 편이다.
음식은 맛있었는데, 분위기가 당최 별로다.
마침 옆의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재즈 음악 베이스 소리가 벽을 타고 둥둥 들려 온다.
대충 먹고 자리를 옮겼다.
디또스 Dito's 라는 곳이다.
공연이 한창이다.
여행자들은 다 여기로 모였는지, 테이블이 거의 차있었다.
마침 음악 즐기기 가장 좋은 위치의 테이블이 비어 있어서 냉큼 앉았다.
가격도 착하다.
일로마리와 비교해서 평균 1만 루피아 정도 싸다.
아락도 옆 레스토랑에 비해 1만 루피아가 싼데, 양은 두 배다. (오른쪽 와인잔)
향도 내가 아는 그 아락 향이다.
내부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텅 비었고, 다들 선선한 바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직원들도 미소를 띤 얼굴로 친절하게 응대해준다.
이렇게 차이가 나서야, 옆 레스토랑 음식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상대가 될 리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