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부페로 나온 수제 요거트 병
덕분에 오랜만에 <여우와 두루미> 전래동화를 떠올리는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식당 곳곳을 샅샅이 찾아봐도 작은 숟가락은 따로 없었고, 하다못해 버터 나이프도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일류 호텔 브랜드의 관리 시스템 약발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은 <윤식당>으로 더욱더 유명해진 길리 뜨라왕안 Gili Terawangan 1일 투어를 하기로 했다.
내 관점에서 길뜨는 한가하게 쉬면서 스노클링 할 거 아니면 별 볼 것도 없는 시시한 곳이지만, 부모님에게는 또 다를 것이다.
전적으로 손님의 취향에 맞추는 게 유능한 가이드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다.
저번 여행 때 운전기사 디까에게 눈탱이 맞은 적 있어서 (http://choon666.tistory.com/629), 원래 이번에는 자체적으로 배를 빌리려고 했었다.
딱히 숨길 일은 아니니, 디까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 내일은 길뜨 1일 투어를 할 거다. 이미 업체를 찾았는데, 숙소에서 항구 왕복 차편 30만, 스피드 보트 왕복 70만 루피아라고 한다. 혹시 너 생각있냐?"
디까가 좀 생각하는 눈치다.
" 차편 30만 루피아만 네가 하고, 배편은 우리가 알아서 해도 된다. 아직 업체에 예약하진 않았다."
디까 처지를 뻔히 알기 때문에 하는 제안이다.
롬복에서 렌트차 기사 겸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가용 소유가 아니라, 업체에서 차를 빌려서 일한다.
기사 포함 1일 렌트 시세가 12시간 기준 60만 루피아니, 차량 하루 렌트 비용이 20~25만 정도, 기름값 밥값 20~30만 루피아 정도니 하루에 10~20만 루피아 손에 쥐는 수준이다.
문제는 매일 손님이 꾸준히 있으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혹시 허탕이라도 치면 렌트 비용만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일 일이 보장되고, 스피드 보트에서도 소개비로 얼마 받는다면 디까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인 셈이다.
스피드 보트 알선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30만 루피아의 매출은 보장되어 있으니 다른 손님 못받더라도 생돈 나가는 손해는 보지 않는 셈이고.
당연히 디까는 수락했다.
나는 디까에게 분명히 다짐을 했다.
" 저번처럼 양아치 놈팽이들 보트로 알선하면 그 손해는 네가 책임지는 거야. 이번엔 부모님과 같이 왔어. 나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부모님 고생시키면 그냥은 못넘어가. 부모님이야 부모님. 어느 나라 사람이든 똑같을 거야. 안그래?"
디까는 알았다고 했다.
길리 3형제를 왕복하는 대부분의 사설 스피드보트 업체들은 방살 선착장을 이용하지 못한다.
대부분 뜰룩 나레 Teluk Nare (현지인들은 대부분 뜰룩 나라라고 발음한다) 라는 곳에서 배를 탄다.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이다.
* Teluk 은 만이라는 뜻이다. 바다를 면하고 육지가 움푹 들어간 지형을 뜻하는 만.
핑크색 화살표 표시한 곳이 작년에 와서 눈탱이 맞았던 스피드업체가 있던 곳이다.
이번엔 빨간색 표지로 표시한 곳으로 갔다.
손님들 기다리는 대합실로 보이는 번듯한 건물이 있는 곳이다. (작년에도 여길 가고 싶었었다.)
도로 건너편에 새로 지은 건물이 있는데, Teluk Nare Terminal 이다.
길리 관광객이 늘면서 스피드 보트 이용객을 위한 새로운 터미널을 지은 모양이다.
경험상, 여기라면 예약 없이 그냥 와서 흥정해도 눈탱이는 맞지 않을 것 같다.
물론 100% 보장은 못한다.
내 판단력 때문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도 절대 눈탱이 치지 않는 인니인'이라는 부분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맞다. 한국인이나 인니인이나 다 똑같은 사람이다.
요는 시스템의 차이다.
한국은 사람이 슬쩍 해먹을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애서 그런 생각이 들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인니는 그런 부분이 허술하다는 차이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인니인들은 한국인과 도덕 기준이 달라서, 어느 정도 해먹는 걸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시스템을 빡빡하게 만들지 않는 것 같다.)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배 타고 출발
음료수 한 잔 마시며 쉬다가, 마차를 잡아 탔다.
섬 한 바퀴 도는데 35만 루피아. 무지무지무지 비싸다. ㅜ_ㅜ
윤식당 촬영지
주변의 현지인들이 "윤시땅~ 윤시땅~", "안뇽하세여", "캄사함니다" 등등 한국어를 날린다.
한국인이 운영하지만, 이름은 떡까페로 바뀌었다.
히스토리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는데, 확실한 건 아니니 (아니 확실하더라도) 말을 아끼기로 한다.
어쨌든 타국에 나와 고생하시는데, 수익 좀 나려는지 모르겠다.
윤식당 방영하는 거 보면서 대충 계산 때려봤는데, 어지간해서는 답이 안나왔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피자집의 이탈리아 본토 맛과 거의 비슷한 커다란 피자 한 판이 5천원 밖에 안하는 곳이 길뜨다.
수익따위 생각하지 않는 윤식당 음식 가격도 길리 물가에 비해 비싼 편이었는데 그런 곳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음식 가격 비싸도, 대체불가한 한국 음식 재료 단가도 비싸서 이문이 크게 남는 것도 아니다.
청개구리 기질이라, TV 나온 곳이라는 이유로 너도나도 찾아가는 곳은 오히려 피하는 편이지만, 부모님이 좋아하시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마차는 전혀 편하지 않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덜컹거리고, 마차 지붕도 낮아 구부리고 앉아서 가야 한다.
경치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뭐 그냥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뭐...
경치 좋은 곳에서 세워달라면 알아서 세워준다.
그래봐야 한 바퀴 도는데 30분도 채 안걸린다.
선착장 근처 적당한 곳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레스토랑에서 선착장이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운전기사 디까에게 돌아가겠다고 전화했다.
마침 선착장에 배가 있으니 바로 가서 타면 된단다.
롬복에 도착해 차에 타고 돌아가면서, 디까가 "원래는 길뜨에 있던 배가 금방 출발하려고 했는데, 절대 출발하면 안된다고 자기가 잡아서 기다렸던 거'라며 공치사를 한다.
정말 잘했다고, 만족한다고 했다.
이번 길뜨 왕복은 별 문제 없이 아주 순조로왔다.
롬복 여행 마지막날 저녁이다.
해변 따라 걷다가 적당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해넘이를 보면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발리섬 위에 구름이 잔뜩 끼어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풍취는 좋았다.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갔다.
홀리데이 리조트 소유주가 블루버드 택시 사장이라 따로 택시를 부를 필요 없이, 택시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승기기에서 공항까지 미터기로 20만 루피아 정도 나왔다.
사설택시가 25만~28만인데, 25만 정도가 적당할 거 같다.
어차피 법인택시는 공항에서 손님을 태울 수 없기 때문에 대안도 없다.
인니는 주민 생계 보장을 위한 텃세가 인정되는 나라다.
좋게 말해 법의 공정성 보다는 공동체의 공생을 우선한다고 볼 수 있다.
나쁘게 말해, 법치국가라고 보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공항 대합실에 있는 커피빈의 흡연실에서 본 1층
풍경이 제법 볼 만 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스꼬똥 지역 Sekotong 지역
승기기, 길리, 꾸따에 이어 최근 새롭게 뜨고 있고 있는 지역으로, 이른바 길리 4형제 Empat Gili 가 있는 곳이다.
길리 낭구 Gili Nanggu, 길리 땅꽁 Gili Tangkong, 길리 수닥 Gili Sudak, 길리 끄디스 Gili Kedis 를 가리켜 '네 길리 Empat Gili' 라고 한다.
길리 뜨라왕안 Gili Terawangan, 길리 메노 Gili Meno, 길리 아이르 Gili Air 가 '세 길리 Tiga Gili'라고 유명해지자 따라 붙인 거다.
아직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서 깨끗하고 한적하다고 하는데, 위치상 발리 사누르나 빠당바이에서 길리 3형제 가는 거리보다 약간 가깝기 때문에, 유명해지면 발리에서 왕복하는 투어 코스가 생길 건 시간 문제다.
그래서 더 변하기 전에, 다음 여행지는 이곳으로 갈까 한다.
윤식당 이후로 길리 뜨라왕안이 떠서 여행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 웃기는 게 길리 뜨라왕안이 발리 주변 섬 중 하나라는 얘기다.
발리에서 스피드 보트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지도 한 번 안보고 여행사가 데려다 주는대로 갔다 온 셈 아닌가.
스꼬똥 지역은 길뜨보다 더 가까운데, 나중에 발리에서 스꼬똥 왔다 가는 사람들 중에도 스꼬똥이 발리 주변 섬 중 하나라고 하는 사람이 나올지 기대된다.
자카르타 공항 수하물 나오는 곳
반대편 상황도 CCTV로 보여주고, 첫 수하물 배출 예정 시간과 마지막 수하물 완료 예정 시간까지 카운트다운으로 알려 주는 시스템이라 감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수하물 배출 시간 카운트다운이 0이 되었어도 감감 무소식이다.
급기야 수하물 나오는 곳이 다른 곳으로 변경됐다고 하는 바람에 승객들 모두들 우루루 그리고 가느라 난리였다.
시설을 아무리 개선해봐야 일하는 사람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저렇게 카운트다운이 떨어진다면 어떻게든 맞추려고 기를 쓰고 서두를 것이다.
'정한 것을 어기면 불이익이 돌아온다'는 게 몸에 배여서 그렇다. (실제로도 불이익이 있고)
하지만, 인니인은 '직접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서두르지 않는다.
출근 지각이나, 약속시간 늦는 거, 기한 넘기기 등, 어떤 기준을 넘기는 것에 대해 둔감하다.
위급한 사람 구한다던가, 열차 출발 시간 간당간당한 상황처럼 직접적인 상황이라면 모를까, 카운트다운 떨어지는 것 따위는 서두를 계기가 되지 못한다.
예정시간 못지킨다고 큰 일 나는 거 아니고, 그냥 승객들이 '약간 더' 기다리면 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인식한다.
관점을 달리 하면 딱히 틀린 얘기도 아니다.
뭐 어차피 서로 가치관이 다른 나라니, 그러려니 하면 될 일이다.
인니인이 한국인과 같으면, 인니가 왜 인니겠는가.
뭐 어쨌든, 예전보다는 확실히 빨라지긴 했다.
그럼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