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소오~설

어느 인력 교육업체의 취업율 100% 비결

명랑쾌활 2023. 12. 27. 08:01

회사에서 신입을 뽑기로 했다.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사장이 책정한 급여 수준이 워낙 박해서 적당한 사람을 뽑기가 쉽지 않았다.

인원 충원이 자꾸 미뤄지자 사장은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해외 취업 인력 교육 알선 업체에게 채욜을 의뢰하라 지시했다.

인사 담당인 나는 인력업체 담당자에게 문의했고, 우리가 원하는 급여 수준으로는 인력을 소개시켜주기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 월급으로 사람 뽑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엿이나 드십시오.'라는 뜻이고, 내게 아주 정중하게 엿을 먹였다는 얘기다.)

사장에게 '그쪽 기준으로는 연봉이 최소 00달러 이상은 되어야 소개시켜 준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우리 회사 월급이 그렇게 짜다는 얘기야, 사장놈아'라는 뜻이다.)

사장은, "그래? 하긴 그 정도는 줘야겠지. 그 정도 맞춰주겠다고 해."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미 면접을 봤지만 틀어졌던 사람들 중, 사장이 방금 아무렇지도 않게 올린 급여 수준을 제시하면 지금이라도 입사하겠다고 할 괜찮은 인재들이 몇 명이 떠올랐지만, 굳이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인력업체 담당자는 국비 지원 때문이라며 이런 저런 서류를 요구했다.

"서류 늦어지면 면접 등의 일정이 그만큼 늦어집니다."라는 담당자의 말이 쌔하다.

요구 서류들 빨리 챙겨 준다고 해서 일정을 빨리 진행해 줄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혹여 인력업체측 잘못으로 일정이 늦어져도, 그쪽에서 서류 늦어져서 그랬다는 핑계를 대면 내가 다 덤태기 쓸 게 뻔했다.

열일 제쳐놓고 그 까탈스러운 서류들부터 군말 없이 챙겨 다음날 오전에 전달했다.

 

요구한 서류를 챙겨 보냈고, 역시나 인력업체측은 미적거리며 면접자는 커녕 후보자들 이력서도 보내지 않았다.

교육생 수료식이 있기 열흘 전에야 덜렁 두 명의 이력서를 보내왔다. 수료식 이후에는 채용 주선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데드라인이 열흘 남았다는 뜻이다.

돌아가는 꼴을 봐서는 순차적으로 한 업체 채용이 결정되면 다음 업체에 탈락자들 이력서를 보내는 모양새다.

업체에 이력서를 뿌리고, 면접을 보겠다고 지정한 인력들을 업체들에 부지런히 돌리는 통상적인 업무 프로세스는 아니다.

그런 식으로 운영하기엔 차량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각자 알아서 업체에 갔다 오라고 할 수 없어서 그럴 거다.

 

이력서를 보내온 두 명 모두 기준에서 한참 떨어졌지만, 충원하려는 영업부 부서장과 협의하여 그나마 나은 한 명을 선정했고, 면접 일정을 인력업체에 통보했다.

인력업체 담당자는 알았다고 답변했으나 다음 날, 우리가 선정한 사람이 다른 회사에 입사가 결정되었다고 연락왔다.

그나마 두 명 중에 탈락시킨, 마지막 수료생 한 사람 밖에 없다는 소리다.

우리 회사가 요구 서류를 보낸 후 연락이 없었던 2주 동안 다른 회사들에 열심히 면접자들을 돌리고서, 남은 찌끄래기 처리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수 밖에 없었다.

 

집어치우라고 하고 싶지만, 사장 지시다. 떨어뜨리더라도 면접까지는 보는 성의는 보여야 한다.

면접을 봤지만 역시나 영업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니, 회사 다닐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하긴, 연수 동기들 모두 채용되는 가운데 계속 탈락해서 마지막까지 남은 상황에 멘탈이 멀쩡하면 오히려 비정상이겠다.

주어질 업무와 너무 맞지 않아 탈락시키지만, 높아진 급여 조건으로 조속히 적합한 인재를 뽑겠다고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은 별말 없이 승인했다.

불합격 사실을 인력업체 담당자에게 통보했는데, 인력업체 담당자 반응이 묘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이미 입사 결정된 걸로 알고 있다가 뜻밖의 통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력업체 측에 불합격 통보를 한 건 금요일이었다.

주말 지나 월요일 아침, 따로 사장에게 불려가서 면담한 영업부 부서장은 내게 말을 전했다.

"우리 부서 결원 때문에 업무 진행에 자꾸 차질이 생기니까 일단 그 사람이라도 빨리 채용하고 가르치라고 하시네."

그러면서, 면접 봤던 사람들 중 즉시 입사할 만한 적당한 인재 빨리 연락해서 채용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이쪽 방면으로는 눈치가 둔한 영업부 부서장은 사장 지시를 곧이 곧대로 들은 모양이다.
그럴 리가 없다. 부적합이 검증된 사람을 아쉬운대로 뽑기엔 명분이 부족하다.

결원이든 뭐든 업무에 문제가 없게하라고 있는 자리가 부서장이다. 결원 때문에 업무 진행에 차질이 생기면, 차질 없게 하라고 질책을 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라도 빨리 채용하라고 한다? 경력직도 아니고 신입이면 업무만 더 늘어날텐데?

말이 안되기 때문에,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드시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지시다.

영업부의 차질이 아니라, '그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게 사장 지시의 포인트다.

 

영업부 부서장에게 지시를 했어도 인사 담당자는 나다. 다시 인력업체 담당자에게 당장 전화를 했다.

지난 주 통화할 적엔 당황해서 쫄아들었던 담당자의 목소리가 사뭇 당당해졌다.

채용 후보자에게 불합격 통보를 했는지, 지나가듯 물어봤다.

인력업체 담당자는 아직 통보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예상대로다.

합격 여부 같은 중요한 소식을 아직까지 통보를 안했다?

인력업체 담당자라면 그런 통보를 하는 것도 일이고 수도 없이 했을텐니, 마음이 약해서 미뤘을 리는 없다.

이미 우리 회사가 마지막 남은 연수생을 무조건 채용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필요 서류들 넘겼는데도 2주 동안 감감 무소식이었던 이유가 설명이 된다. 다른 회사 면접을 진행해서 최대한 합격시키고, 끝까지 남는 사람을 떠넘겨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앞뒤가 맞는다.

아무튼 인력업체 담당자에게 합격 통보를 전했다.

 

진실은 그날 당일 회식 때, 대단한 반전도 없이 시시하게 밝혀졌다.

기분 좋게 취하면 자기 자랑을 하는 술버릇이 있는  사장이, 어제(일요일) 인력업체 대표와 골프를 쳤는데, 채용해달라고 하도 부탁을 해서 들어줬다며, 잘나가니 이런 부탁을 받게 되는 거라는 투로 썰을 풀었다.

 

그후 보름쯤 지나, 그 인력업체가 성공적으로 수료식을 했고, 이번에도 역시 취업율 100%를 달성했다는 기사가 교민 소식지에 나왔다.

취업율 100%라니, 한정된 한국 업체에 원하는 인력도 각자 다른데. 연수생 전원이 서울대 출신이라도 비정상이다.

자랑스런 업적이 아니라 적합하지 않은 인재도 다 털어서 업체에 밀어 넣었다는 민폐의 증거일 뿐이다.

인력업체 대표, 나와 통화했던 담당자,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어느 유명경제인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눈에 뜨인다.

기사 사진속 인력업체 대표의 뿌듯하다는 얼굴에 절로 침이 고였지만 삼켰다.

교민 소식지가 되려고 열심히 자란 나무는 죄가 없다.

 

 

며칠 후, 입사를 환영하는 회식 자리에서 최후의 연수생이었던 신입은 60이 훌쩍 넘은 사장에게 "어려보이십니다"라고 말을 해서 분위기를 화목하게 만들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뜻을 보다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6주 버티다가 결국 퇴사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업무에 잘 맞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지만, 영 아닌 거 같다는 판단은 거의 정확하게 마련이다.

 

세계가 이렇게 넓으니 일자리도 참 많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