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이고, 강압적이며, 비민주적인, 한국의 무식한 중소기업의 전형을 보이는 본사와 달리, 해외 지사는 초창기만 해도 '나름 상식적인' 분위기였다.
한국인이래봐야 초기에는 법인장과 직원 달랑 2명 (나중에 1명 추가) 이었고, 현지 사정이 아무래도 한국과는 다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오너가 오면 해외에서 고생하는 한국 직원들 위무한다는 개념이 있어서, 좋은 식당에 가서 회식하고 뒷풀이 하는 식이었다.
오너는 자신이 시찰 오는 날이면 공장의 현지 직원들에게 점심으로 특식을 제공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법인장이 바뀌었다.
본사에서 대표이사로 대리경영까지 했었기 때문에 나름 여유가 있던 전임 법인장과는 달리, 신임 법인장은 그 '사람 걱정해주는듯이 얘기하는데 결국은 이간질인' 특출난 스킬로 위아래 주변을 짓밟고 오너에게 충성을 다하며 차장까지 올라, 해외지사에 오면서 부장으로 승진한 사람이었다.
오너 방문의 의전에 좀더 공을 들일 것은 당연했다.
원래 오너의 현지 외유를 수행하던건 현지 사정과 언어에 능통한 직원이었는데, 신임 법인장은 현지 언어를 전혀 못하는 초기부터 부득부득 오너의 수행을 자처했다.
덕분에 직원은 회사 업무를 보면서도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마사지사, 캐디, 종업원, 기사에게 통역을 해야 했다.
신임 법인장이 어느 정도 현지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바닷가재를 현지 어촌에서 주문하면 싱싱하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며, 오너 방문에 맞춰 준비를 지시했다.
바닷가재는 좋다.
문제는 회사 내 숙소에서 바닷가재를 누가 굽느냐는 것이다.
음식을 하는 가정부는 바닷가재 일부를 찜 요리를 해야 했고, 그 외 갖가지 음식들을 준비해야 했다.
그렇다고 현지인 직원을 시킬까? 하인으로 고용했나?
결국 바닷가재 구이는 한국인 직원 둘이서 구워야 했다.
오너는 바닷가재의 그 싱싱함과 크기, 무엇보다도 그 저렴한 가격에 매우 만족했다.
그 후, 오너가 인니를 방문하면 직원들은 바닷가재를 준비해 구워야 했다.
오너가 친구들과 놀러 오든, 가족들을 데리고 놀러 오든, 거래처 사장들과 놀러 오든, 오너는 호텔로 가지 않고 회사 내 숙소에 머물렀고, 매번 바닷가재를 저렴한 가격에 즐겼다.
한번은 평일 오후부터 회사 내 숙소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신임 법인장은 당연히(!) 그 수발을 들고 있었고, 나머지 한국 직원 2명은 업무를 봤다. (평일이니까!)
근무시간이 끝났지만 숙소에 들어가고 싶을리가 없었다.
내 집에 들어가 남 수발을 들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나.
회사 내 숙소는 해외 근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퇴근 후 쉬는 집이다.
오너가 보기엔 아랫것들에게 인심 써서 배려해준, 어디까지나 자기집이겠지만...
신임 법인장에게서 얼큰히 취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내가 계속 이 짓(수발)을 해야겠냐. 일 끝났으면 와서 사장님 모셔라."
그날 직원 2명은 밤 늦게까지 수발 들고 술대작하고, 다음날 새벽에 출근했다.
오너 일행은 무리했다며 오전에 쉬다가 느지막히 골프장으로 갔다.
언젠가는 친구들과 놀러 온 오너가 신임 법인장과 '일요일'에 골프를 치러 갔다.
직원 2명은 '일요일'에 숙소에서 대기하라고 지시 받았다.
그 중 1명은 좀 떨어진 다른 지역에 가족이 있어, 평일은 숙소 생활을 하고 주말에야 가족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사정으로 지시 거부했다간 앞으로 평일도 가족과 지내야 할 분위기였다.
오후 늦게 즈음 신임 법인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출발해서 대략 1시간 후 쯤 도착할거 같으니, 지금쯤 바닷가재를 구우면 시간이 맞을거 같다고 한다.
직원 2명은 회사 내 기숙사 앞에서 바닷가재를 구웠다.
도착한 오너와 친구들은 바닷가재 굽는 모습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한국의 가족에게 전송한다.
직원은 알맞게 구워진 바닷가재들을 골라 가져 가라고 따로 담아뒀다.
아직 덜 구워진 바닷가재들을 마저 구워야 하니까.
하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결국 다 굽고 난 직원이 바닷가재를 들고, 부엌에 가서 살만 발라내어 접시에 담아 내자, 그때 되어서야 술판이 벌어진다.
(덕분에 원래 해산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 게도 잘 안발라먹던 직원은 1년 만에 바닷가재 살 발라내기의 달인이 되었다. ㅋㅋ)
술판이 벌어지는 동안, 직원은 부엌에서 바닷가재 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바닷가재 물이 작아 양이 얼마 안되어, 가정부에게 타이거 새우를 프라이팬에 구워 내라고 했다.
좀 있다 부엌에 들어온 신임 법인장이 양 충분한데 뭘 또 굽냐고 굽지 말랜다.
부엌 쪽 정리하고 술판에 합류하니, 바닷가재는 이미 없고 새우도 거의 다 떨어졌다.
신임 법인장 관점에서 부하직원들은 바닷가재를 굽고 살을 바르고 뒷치닥거리를 하는 존재들이지, 감히 자기들과 동등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너와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충분히 먹었다는 뜻이었다.
수고했다는 공치사를 날리며 이사람 저사람 술은 자꾸 권한다.
오너가 술을 먹이며 황송하게도(?) 안주를 집어 입에 넣어주려는데, 접시에는 자신들이 집어 먹다 떨어진 손톱만한 부스러기들 밖에 없다.
그 부스러기들을 수저에 모아 직원 입에 넣어준다. 이게 진국이라면서... =_=
그렇게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직원들은 다음날 새벽에 출근해야 했다.
오너는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공인양 황공하고 자랑스런 표정이 충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신임 법인장이 있었다.
"자넨 출근해야 하니 그만 하고 들어가게." 라고 하던 오너는 어느덧, 해외지사 방문 일정이 잡히면 이번엔 뭐가 먹고 싶다며 준비해두라는 지시가 자연스러워졌다.
그 회사에 새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직원은 알까?
연말에 놀러 와 회사 내 기숙사에 머물 오너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바닷가재를 구워야 할 것이란 걸.
그 관례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너 밑 어떤 인간의 충성심 덕분에 생긴 관례라는 걸.
그리고 그 관례를 만든 인간은 다른 곳으로 발령을 갔고, 관례만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일요일엔 내가 요리사~가 아니라, 사장이 오면 직원들은 해산물 굽는 관광 접대원으로 변신~!
1. 아, 사장을 욕하는 글이 아니다.
사장은 원래 회사의 왕이기 때문에 개념도 없어도 된다.
사장의 개념이 곧 회사의 개념이다. ㅋㅋ
이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사장의 개념을 개 같이 만들어 놓은 인간에 대한 글이다.
회사마다 있는 그런 인간, 오너 친인척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틈새를 비집고 관리직까지 올라선 인간이다.
2. 거의 모든 해외지사장이 오너가 방문하면 체재기간 동안 간 쓸개 목숨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해 오너를 모신다.
거의 모두가 그렇다니까 우리 회사 사장은 안그렇던데 하고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건, 위의 사례처럼 대놓고 부하직원들을 부리며 접대하는 법인장도 있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표도 안나게 자신이 알아서 다 모시는 법인장도 있기 때문이다.
오너 마음이 틀어지면 제일 위태로운게 바로 법인장이다.
오너의 권력을 대리할 수 있도록 나눠 받은 입장이고, 권력은 나누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법인장이 자리를 보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목숨줄이 바로 오너의 총애다.
그러니 충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야 할 기회가 되면 목숨을 바쳐 어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