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센터장님, 국순이 수방 공장 창고를 자체 관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올해 말까지 철수할 예정이오니 국순 측과 인수인계 일정을 잡아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 회사 사정상, 부득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점 양해 바랍니다.
- 향후 근무처 관련하여 추후 통보 드리겠습니다.
최준영은 이메일을 읽고, 태연하려고 노력했다. 집이었다면 기쁨의 떰부링을 스물 세 바퀴 정도 돌았을 거 같은 기분이다. 파견 근무처가 사라져 일자리가 붕 뜨게 된 상황이지만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국순 수방 공장의 창고 외주 관리를 했던 지난 5개월은 그정도로 끔찍했다.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회사에서 멀쩡하게 일하던 직원이 그만 두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새로 오픈하는 회사가 아닌 이상, 한창 운영 중인 회사가 후임을 급구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회사에 구조적 문제가 있어서 직원이 뛰쳐 나갔든, 직원에 문제가 있어서 회사가 쫓아 냈든, 어느 쪽이든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니게 마련이다. 회사에 문제가 있다면 뛰쳐 나갔던 전임자와 똑같은 입장이 될테고, 전임자가 문제였다면 그 전임자가 싸질러 놓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테니까. 게다가 세상사 문제는 대개 쌍방 둘 다 원인이다. 즉, '경력직 급구'에 채용된다는 건 엿에 둘러싸여 엿을 치우는 엿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뜻이다.
최준영도 그런 이치를 잘 알고 있었고, 나름 각오도 했다. 하지만, 비관적 상황을 늘 예상을 뛰어 넘게 마련이다. 회사의 구조적 문제와 전임자가 싸질러 놓은 문제들 양쪽 다 최준영이 예상한 정도를 훌쩍 넘어섰다. 몇 년 간 제대로 된 재고조사를 하지 않아서 무슨 자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창고, 회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여 의욕을 잃은지 몇 년이 된 현지인 창고 직원들, 생산 부진을 비롯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창고 위탁 관리 하청업체 측으로 뒤집어 씌우려는 원청의 한국인 직원들, 그런 구도를 이용해서 양쪽을 이간질 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현지인 생산 직원들, 현지 지원은 거의 없는 소속 회사 등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속에서 고군분투 해야했다.
출근 첫날부터 드라마틱했다. 아침 조회가 끝나자 마자 최훈 차장은 원청인 국순의 공장장의 호출을 받았다. 정식 인사를 나눌 겸 최준영도 따라 갔다. 공장장 강찬승 부장은 상냥하게 말해도 화를 참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억양이 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는 최준영과의 인사는 하는둥 마는둥 넘기고, 최훈 차장에게 업무 관련하여 질책을 쏟아 냈다. 분명히 존댓말이긴 한데 마치 쌍욕처럼 들리게 하는 진귀한 재주였다. 앞으로 저 진귀한 재주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한 최준영은 완전 좆됐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그 후 국순 수방 공장에서 근무하는 내내 최준영은 강찬승 부장의 갖은 갑질을 겪어야 했는데, 그 중에는 "나는 이 공장 내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부장이고, 당신은 차장이니 내가 시키면 따르세요."라는 개소리도 있었다. 다른 회사 직원에게 자기 직급이 높다며 지시를 따르라며 호통을 치는 강찬승 부장의 독특한 정신 세계는 사람 밑바닥 어지간히 겪었던 최준영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직급 들먹이며 따르라는 지시가 '업무 미팅 중 자신의 발언을 회사에 보고하지 말라'는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모함과 뒷말에 하도 뒤통수를 맞고 결국 퇴사까지 하게 된 적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 건 강찬승 부장 개인 사정일 뿐이다. 회사 간 업무 미팅 내용을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말라는 건 직장인이 제 정신으로 할 말은 아니었다.
최훈 차장은 파견 지원을 마치고 본사로 돌아가기까지 최준영과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을 함께 근무했다. 인수인계만 할 거라면 충분하지만, 몇 년간 꼬인 창고 자재 실물과 데이터의 불일치를 창고 폐쇄도 하지 않고 정상화 하기에는 작업과 병행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하지만, 이미 당초 예정했던 파견 근무 기간만큼을 한 번 연장했기 때문에 다시 연장 요청하는 건 무능함을 자인하는 거나 다름 없다. 최훈 차장은 출장 마지막 날 전날까지 밤을 세가며 '어떻게든 마무리한' 재고 조사 데이터를 최준영에게 넘겼다.
넘겨주는 최훈 차장도 넘겨받는 최준영도, 데이터와 실물의 일치율이 70%는 절대 넘지 않는다는 걸 서로 뻔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치율이 97% 이상 되지 않는 재고 데이터는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사실도. 최훈 차장은 미안하다면서 오차는 일하면서 차차 일치화 시켜달라고 했고, 최준영은 알겠다고 했다.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의 오차를 고치는 작업은 데이터를 새로 만드는 거나 다름 없다는 걸, 이 데이터를 인수한다는 건 이후 오차가 드러나도 인수자의 책임이란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준영은 굳이 최훈 차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다. 고객사 컴플레인 해결을 위해 출장을 나온 최훈 차장은 일정을 마무리함에 따라 제출할 업무 결과물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업무 결과물 중 하나가 제대로 된 재고 데이터다. 이 시점에 최준영이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으니 인수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최훈 차장이 출장 기간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나 다름 없었고, 회사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 최준영은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데이터를 인계 받았다. 최훈 차장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찌됐든, 일단 인수한 시점부터 책임은 최준영의 몫이었다. 국순 본사 자재구매 담당인 전성만 차장이 확정 데이터 언제 넘길 거냐고 닥달을 해도 최준영은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새로 만드는 건 시간적으로 불가능했다. 통상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쪼개 몇 년간 쌓인 먼지 구덩이를 헤치며 자재 더미를 까 확인하고, 퇴근 후 집에서 잠을 줄여가며 데이터 보정 작업을 했다. 일치율 90%에 근접할 정도는 됐다는 판단이 들고 나서야 데이터를 국순에 넘기고 자재 오차 문제를 마무리했다. 인수인계 받은지 2주 만이었고, 그사이 최준영은 멍청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아마 엑셀도 제대로 못다루는 등신 취급이지 않았을까 싶다. 대외적으로는 최훈 차장이 거의 마무리 된 데이터를 넘긴 것으로 되어 있었고, 그 걸 정리하는 작업은 하루면 충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욕을 잃은 현지인 창고 직원들의 비협조인 태도도 근무 내내 최준영을 힘들 게 했다. 아무리 대화를 하고 다독여도, 직원들은 지시에 알았다고 대답만 넙죽 할 뿐 어영부영 시간을 떼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창고 직원들은 국순 소속이었기 때문에 인사권을 행사할 수도 없었고, 소유통운으로부터 자금 지원도 없기 때문에 당근책을 쓸 수도 없었다. 그리고 직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최준영은 남의 회사 외국인 아저씨였다. 국순에 인사권 행사 협조를 요청해도 당신 휘하 직원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할 뿐이었다. 소유통운에 지원 요청을 해도 직원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해서 '심성 관리'를 하라는 동화책 빨고 자빠지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최준영은 직접 작업하기 시작했다. 일선 직원이 해야 할 일을 직접 한다는 건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 관리자로서 실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준영은 매일 사무 보는 틈틈히 짬이 나는대로 현장에 나가 자재들을 까뒤집고 정리했다. 땀과 먼지로 온몸이 얼룩 투성이가 됐고, 옷은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현장 직원들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러워졌다. 한바탕 박살을 내려 잔뜩 인상을 쓰고 내려온 국순의 한국인 직원이 최준영의 추레한 몰골을 보고선 몇 마디 말만 하고 올라갈 정도였다. 창고 직원들이 보기에도 측은했는지, 먼지 구덩이에서 구른지 한 달 여가 지나자 현지인 직원들도 최준영의 말을 어느 정도 따라 주기 시작했다. 하긴, 맨날 고래고래 소리나 지르는 거만한 한국인들만 봤으니, 불쌍한 꼴을 하고 바닥 박박 기는 최준영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동정심도 생길만 했다.
창고 자재가 지속적으로 사라지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강찬승 부장은 창고 직원들이 자재를 외부로 빼돌려 팔아 먹은 거라고 주장했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작업 중 불량으로 인해 모자라게 된 자재를 충당하려고, 생산 직원들이 정식 절차 없이 창고에서 빼돌려 오기 때문이었다. 근무 시작한지 1주일도 안된 최준영도 알아차린 사실을 봉젯밥 최소 10년 이상은 먹었을 강찬승 부장이 모를리 없었다. 뻔이 알면서도 뒤집어 씌우려는 거였다.
불량을 내면 박살부터 내고 보는 게 한국 봉제 공장의 관리 스타일이다. 사실대로 보고하느니 알아서 해결하고 덮는 한국 스타일을 현지인 직원들도 금새 배웠다. 시골 깡촌에 있는 공장이 다 그렇듯, 국순 수방 공장도 한 두 다리만 걸치면 모든 직원이 친척 관계였다. 생산 부서의 사촌이나 이모가 와서 자재 좀 빼달라고 사정하면 창고 직원이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디 갖다 파는 것도 아니고 같은 회사 생산 부서에 넘기는 것이니 도둑질이라는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을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창고 구역과 창고 구역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건 한국 봉제 공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얄궂게도 국순 수방 공장의 창고는 그렇지 않았다. 구역을 분리하는 펜스는 허술했고, 높이도 2m 밖에 되지 않았다. 단추나 지퍼 등 부자재는 물론, 부피만 크지 그닥 무겁지도 않은 원단 롤도 펜스 위로 얼마든지 넘겨 줄 수 있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자재를 빼돌릴 여지를 물리적으로 막아 버리면 된다. 자신의 행위가 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정신 교육, 윤리 교육을 하라는 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하고 싶어도 못하게 만들면 된다.
최준영은 창고 구역 분리 펜스를 보강할 것을 국순 측에 요청했다. 비용도 문제지만, 공장의 모든 설비 자재는 국순의 소유였기 때문에 국순이 동의를 해야 했다. 하지만, 국순 측은 마치 죽어도 그러기 싫다는듯 진행을 방해했다.
처음 요청했을 때, 국순의 강찬승 부장은 치수가 어떻게 되는지 도면을 그려오라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공장 설비팀이 따로 있고, 외주를 주더라도 기술자가 실측해서 견적을 내야 할 일인데, 창고 관리자인 최준영에게 도면을 요구한 것이다. 마침 캐드를 좀 다룰 줄 알았던 최훈 차장 덕분에 최준영은 도면을 강찬승 부장에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 다시 확인을 하자, 강찬승 부장은 뜬금없이 '자기는 생산 관리만 맡고 있으니, 이런 문제는 관리부서장인 김욱종 차장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김욱종 차장은 설비팀이 지금 일이 많다는둥, 자재 구하기 어렵다는둥 핑계를 대며 한 달을 끌었다 본사에 품의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메일로 품의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본사 상무가 방문하면 그 때 구두로 직접 품의를 하겠다는 요상한 이유를 대기도 했다. 결국 최준영이 소유통운 본사를 통해 국순 부사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국순 부사장은 펜스 보강 작업을 시행하라는 지시를 이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강찬승 부장과 김욱종 차장은 부사장의 지시마저도 모르는척 다시 한 달 이상을 질질 끌었다. 결국 국순 부사장의 지시를 직접 받고 출장 온 전성만 차장이 추진해서 마침내 설치할 수 있었다. 요청한지 4개월 만이었다. 축구 골대 그물로 보강하는데 든 설치 비용은 약 30만원이었고, 설치 작업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펜스 보강 조치가 유효했다는 증거는 명백했다. 최준영이 근무해온 지난 4개월 간 단 한 번도 없었던 작업 불량으로 인한 자재 추가 요청이 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늘어갔다. 지난 4개월 간 없던 작업 불량이 이제 와서 갑자기 발생하기 시작할 리는 없다. 창고에서 몰래 자재를 갖다 쓰는 방법이 막혔으니, 어쩔 수 없이 요청을 하게 된 거다.
정식 절차로 요청하면 작업 불량률이 본사까지 공유된다. 작업 불량과 생산성 저하는 공장장인 강찬승 부장 책임이다. 창고에서 자재를 몰래 가져다 쓰면 불량율을 낮출 수 있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창고가 자재를 잃어 버린 탓이라고 돌릴 수 있다. 강찬승 부장은 창고가 정상화 되는 걸 절대로 바라지 않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부사장 지시까지 뭉개가면서 펜스 보강을 막았을 거다. 회사의 손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김욱종 차장이야 강찬승 부장이 시키는대로 동조했을테고.
강찬승 부장은 모든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창고 직원들을 도둑질 한 거라고 몰아 붙이고, 창고 관리 부실 탓에 생산성이 떨어져 부사장에게 쌍욕까지 먹어가며 깨졌다며 최준영을 잡도리했던 거다. 비단 강찬승 부장 뿐이랴. 국순 본사의 전성만 차장이나 상무, 부사장도 거친 봉제판에서 굴러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뻔히 알면서도 생산 목표를 달성하면 내버려 두는 거고, 모자란 자재를 하청에 클레임을 청구하는 거다.
이런 저런 회사 제법 겪었던 최준영이 보기에도, 국순만큼 지저분한 진흙탕은 처음이었다. 평생 봉제업계에 몸담았던 최준영의 아버지가 봉제 쪽은 절대 가지 말라고 한 뜻을 실감하게 되었다.
창고가 정상화 되어간다는 사실이 최준영의 지옥 생활이 나아지는 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타인의 탓으로 돌리게 마련이다. 강찬승 부장을 위시한 국순 한국인 직원들은 창고가 생산의 문제를 들춘 걸로 간주했고, 최준영에 대한 적대감은 점점 심해졌다. 심지어 입사 2개월차 신입 사원까지 20살 가까이 윗줄인 최준영을 무시하거나 질책했다. 자기가 충성하는 우두머리가 미워하는 대상이고, 가뜩이나 유일하게 소속도 다른 하청 회사의 직원이라면 죄책감이나 뒤탈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게다. 덕분에 최준영은 학생 때도 당해 본적 없는 따돌림을 마흔이 넘어, 외국에 나와서 같은 한국인들에게 당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 국풍과 소유 로지스틱스의 창고 외주 계약이 끝났다는 메일이 온 것이다.
최준영은 시기가 공교롭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창고 문제는 국순이 위탁 관리 계약을 작년 말로 종료함에 따라, 올해 초부터 방치되어 터진 문제다. 국순의 억지 컴플레인을 받은 소유통운이 4월에 최훈 차장을 파견하여 해결해왔고, 7월부로 입사한 최준영이 최훈 차장의 바톤을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마침내 11월 경에 어느 정도 정상화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된 시점에서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연말 시점으로 외주 계약 종료를 결정했다. 작년 말에 종료했었고, 다시 올해 말에 종료 통보하기까지 딱 1년 사이의 일이다.
국순이 소유통운에게 클레임을 청구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지속적으로 무리한 생산 일정을 강요 받은 직원들이 작년 하반기에 파업을 결행했고, 그에 따른 납기 지연으로 결국 항공 운송을 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국순은 납기 지연에 창고 관리 측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하며 발생한 항공 운송 비용의 일부를 소유통운 측에 클레임으로 청구했다. 창고 직원들도 파업에 동참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소유통운 입장에서는 클레임을 순순히 받아 들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 잘라 거부할 수도 없었다. 갑이 억지를 부릴 때는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고, 그 절박함을 거절한다면 반드시 원한을 품게 마련이다. 소유통운은 이호병 상무를 국순측에 보내 몇 차례 협상을 한 끝에 클레임을 받아들였다. 대신 국순 수방 공장의 창고 관리 외주 계약을 연장하고, 국순이 소유통운에 매월 지급해야 할 외주 비용 중 일부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클레임 변상액을 분할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공교로운 점은 창고 관리 외주 계약을 올해 말까지 연장함으로써 취하게 될 소유통운의 이익과 클레임 비용으로 지출해야 할 손실이 거의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소유통운이 손해를 보긴 하지만, 경영상 큰 이슈 없이 덮을 수 있을 정도의 액수였다.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 정말로 우연일 경우는 드물다. 비즈니스 상 돈 문제는 더욱 그렇다. 우연이 아니라면 어떻게 된 일일까, 최준영은 알고 있는 사실의 단편들을 짜맞춰 봤다. 그리고, 한 가지 가설에 다다랐다.
만약에... 국순은 이미 종료한 창고 관리 외주 계약을 재연장 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고, 최준영이 입사한 이후로도 변함이 없었다면 어떨까? 그리고 소유통운도 그런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다면?
올해 초 창고 문제가 터졌을 당시엔 국순이나 소유통운이나 창고 문제를 해결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기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소유통운은 본사 고객지원팀 최훈 차장을 파견하는 조치만 한 것이고. 하지만, 최훈 차장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을 것이다. 외주 계약이 종료된 상황이라 최훈 차장의 파견은 어디까지나 고객 서비스다. 2개월 정도의 단기라면 모를까, 반년 이상 걸릴 수도 있는 장기 파견 비용을 실무 선에서 덮을 수는 없다. 아무리 고객사라지만 너무 억지스러운 컴플레인을 수용한 터였으니, 임원급 이상에 알려지면 곱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고, 장기 파견도 할 수 없다면 결국 사람을 뽑아야 한다. 사람을 그냥 뽑을 순 없다. 소유통운은 국순 측에 창고 관리 외주 재계약을 요구했을 것이다. 국순 측도 마냥 억지만 부릴 수는 없다. 경영진까지 보고가 올라가야 하는 문제에 억지를 부린다는 건 상대방 모가지 날리겠다는 짓이나 다름 없다. 아무리 갑을 관계라지만, 피차 월급쟁이끼리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을쪽이 모든 걸 오픈해서 터뜨려 버리면, 갑쪽에서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갑이든 을이든 월급쟁이 입장은 피차 마찬가지다. 국순 측 역시 재계약을 순순히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재계약을 한다는 건 정식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 즉 손실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건 애초에 계약을 종료하자고 결정한 어느 높으신 분의 판단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셈이 된다는 점이다. 창고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높으신 분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면, '재계약이되 재계약이 아닌' 마술을 부려야 했다.
만약 일회성으로 끝나고 상대 회사에 이익 없이 실비만 지급하는 방식이라면, 계약이 아니라 일시적인 조치라고 적당히 무마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재계약이지만 연장은 하지 않는다. 계약으로 인해 소유통운이 받을 비용 중 실비를 제한 이익은 클레임의 형식으로 다시 국순 측에 돌려 준다. 생돈 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받을 돈 까주는 거다. 그 받을 돈이라는 것도 억지 트집 잡아 우기기만 할 뿐 실제로는 못받을 돈이다.
이로써, 소유통운의 높으신 분은 재계약을 성사시켰다는 공훈을, 국순의 높으신 분은 클레임을 받아냈다는 공훈을 세우고 적당히 덮을 수 있게 됐다. 문제 해결 후 버려지게 될 예정으로 채용된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앞에 그딴 문제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최준영은 어쨌든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회사가 개인의 인생을 신경 쓸 리 없다는 이치는 진즉 깨달았었다. 애초에 믿지를 않았으니 실망할 것도 없었다. 소위 회사원이라는 족속들이 여상하게 내뱉는 '회사 방침'이라느니, '회사 사정'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다 헛소리일 뿐이다. 회사는 다수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다. 뇌도 없고, 감정도 없다. 양심이나 동정심도 없다. 구성원 각자가 자기 생존만 중시할 뿐이다. 가상의 존재가 자신을 책임질 거라고 믿고, 배신 당했다고 화를 내는 건 바보짓이다. 그리고 최준영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었다.
최준영의 뒤를 이어 창고를 관리하게 될 후임자는 국순의 베트남 공장에서 근무하던 필리핀인이었다. 최준영이 소유통운으로부터 창고 관리 외주 계약이 종료됐다는 메일 통보를 받기 일주일 전, 그가 이미 수방 공장에 와있었다. 외주 계약 종료는 훨씬 이전에 결정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역시 최준영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인수인계를 빨리 끝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덕분에 12월 말보다 열흘 정도 이른 시점에 공식적으로 인수인계를 마칠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수인계가 시작되면서 국순의 한국인 직원들은 더이상 최준영을 깔아뭉개지 않았다. 그 대단하신 갑 회사 간판 등뒤에서 떼고 나면 피차 안면 좀 있는 아저씨일 뿐이다. 개중 좀 양심 말랑말랑한 직원들은 오히려 최준영을 피하는 기색도 보였다. 그럴만 하다. 회사 대 회사 관계에서 벌어진 일은 그 관계가 끊어지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했던 짓들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군인이 명령을 받아 적군을 사살했다면, 제대를 했다고 해서 사람 쏴죽인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듯. 심지어 명령 받은 일도 아니었다면 자기 인성의 표출일 뿐이다.
전성만 차장은 자신이 본사에 최준영의 업무 능력을 부정적으로 보고했던 것은 입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식으로 애둘러 덮고 들어왔다. 최준영도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실제로도 본사와 수방 공장을 왔다갔다 한 사람은 전성만 차장 밖에 없었다. 전성만 차장이 출장 올 때마다 강찬승 부장은 자신의 면피를 위해 무던히도 최준영을 깎아 내리며, 그 사실이 본사에 흘러 들어가길 바랐을 거다. 우습게도, 강찬승 부장은 자신이 모함때문에 뒷통수 여러번 맞았기 때문이 모함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했었다. 그러고서 정작 최준영을 모함한 셈이었다. 칼에 찔렸던 피해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을 찌르는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흔하다.
전할 필요가 없는 뒷말을 흘린 전성만 차장도 분명히 잘못한 거지만 최준영은 그냥 웃으며 이해한다고만 했다. 그들의 세계엔 그들 나름의 규칙이 있고, 그들에게는 그 게 딱히 원한과 악행이 아닌 일상적인 생존의 방식일 터였다. 어차피 최준영 따위 몇 달이면 까맣게 잊고, 서로를 경계하고 탐색하며 살아갈 거다.
강찬승 부장은 인수인계 기간 내내 최준영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공장 근처의 한인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됐다. 강찬승 부장은 업무상 부딪혔던 일들에 사적인 감정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과도 뭣도 아닌 이상한 말을 했다. '업무상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은 가책을 피하는데 편리한 논리다. 하지만 그를 보지 않게 되면 그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되는 최준영과 달리, 강승찬 부장은 평생 그의 방식대로 살아갈 거고,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그가 평생 치뤄야할 대가다. 최준영은 그와 다시는 상관 없을, 혹여 훗날 물에 빠진 걸 봤어도 아무 마음 들지 않을 인연인 그 사람에게 그냥 웃으며 이해한다고 했다.
직장 상사를 따라 최준영을 무시했던 신입 사원은 좀 달랐다. 어렵게 취업한 청년이 보통 그렇듯, 그는 자신의 모든 무례한 태도와 행위들이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는듯이 또랑또랑한 눈으로 당당하게 최준영을 쳐다봤다. 첫 직장이 하필 이런 곳이라 업무상의 냉정함과 인격적인 무례함은 전혀 별개라는 이치를 깨닫기까진 아주 오래 걸리듯 하다. 어차피 깨닫든 말든 이젠 상관 없는 일이지만. 최준영은 그에게 "정호영 담당님은 국순에 가장 적합한 인재 같아요. 지금이야 고생 좀 하시겠지만, 지금처럼만 계속 하시면 분명히 높은 자리에 올라 가실 거예요."라고 덕담을 했다. 하청회사 실패한 인생 주제에...라는듯한 그의 표정으로 보아 최준영의 말이 감명 깊은 모양이었다.
직제 상으로 상사인 이호병 상무는 최준영에게 당분간 자카르타 오피스로 출근할 것을 지시했다. 원래 자카르타에서 1시간 반 거리인 찌까랑에서 살았던 최준영이, 국순 수방 공장으로 출퇴근 하기 위해 자카르타에서 3시간 거리인 뿌르와까르따로 이사간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