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Go East. 01. 자카르타 Jakarta - 족자 Jogja. 분명 해외여행이건만 어쩐지 국내여행 같은 출발.

명랑쾌활 2010. 8. 8. 18:47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 BIPA(국립 인도네시아 대학의 랭귀지스쿨)의 정규 과정 사이에 속성 과정을 듣지 않고 스스로에게 방학을 주었다.
이 나이에 방학이라니, 아마도 살면서 마지막 방학이지 않을까 싶다.
인니에서 산 지도 거의 1년이다.
' 여행 온 것'과 ' 사는 것'은 역시 다르다.
서울에 여행 온 외지 사람치고 남산 타워 안가본 사람 없지만, 학교 뒷편이라 막걸리 마시러 그 근처까지 걸어가 본 적은 있어도 올라가 본 적은 없다.
이 곳에 살면서도 대강 1시간이면 갈 자카르타의 남산 타워 격인 모나스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방학 동안 인니 국내(?)를 여행해 보기로 했다.

원래는 이 곳에서 알게 된 친구와 자와 섬의 시골을 돌아보기로 했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시골은 아직도 순박한 정서를 가진 곳이 많지만, 그래서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진실이라는 단어가 얼핏 좋은 의미 같지만 상황에 따라 가장 잔인할 수도 있듯, 순박함이라는 단어 역시 그 안에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혼자서는 무리인지라 포기, 그래서 옛적 배낭 여행 마인드를 일깨워 관광지를 중심으로 돌기로 했다.

예정은 우선 비행기로 족자에, 거기서부터 동쪽으로 주욱 가다가 시간이나 돈이 떨어지면 귀환하는 것으로 느슨하게 잡았다.
해외에서 비자로 들어오는 여행이 아닌지라 리턴 티켓도 필요 없다.
그냥 한국에서 국내 여행하다 돈 떨어지면 기차타고 돌아가듯, 편도로 끊고 훌쩍 떠난다.
그래서 그런지, 분명 해외여행 임에도 국내 여행이라는 기분이 든다.

한국의 기차표 만도 못한 도트 프린터의 출력물이 소위 비행기 티켓이다.
그 티켓 검사만 있을 뿐, 여권이나 비자 검사 따위는 없다.
한국에선 대한항공이 비싸듯, 인니에선 가루다 항공이 비싸다.
그래서 선택한 비행기는 끝발 날리는 저가 항공사 중 하나인 라이언 에어.
인니에서 국내선 비행기는 꽤 심상한 편이다.
나라 자체가 섬들로 이루어져서, 자동차는 못만들지만 비행기는 만드는 나라라서 그럴까.
접하기 드문 물건이라서 그렇지, 사실 공학적으로는 자동차가 더 복잡하고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자동차 정비업계는 항공정비 쪽을 은근히 깔본다나 어쨌다나.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비행기 내부.

앞좌석 등받이에 무릎이 닫는다.
의외로 저 자세로 잠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3시간이 한계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비지니스 석이 무려 6좌석이나 있다.
가루다항공의 이코노미보다 약간 비싼 편.

* 내가 탄 기종이 라이언 에어의 가장 일반적인 기종인데, 이코노미 석은 양쪽으로 3열씩 배치되어 있다.
각각 A~F인데, A와 F가 창측이다.
1~3 까지는 비지니스 석이고 4부터 이코노미 석 시작이다.
그래서 4번 줄이 그나마 가장 공간이 넓은 편이다.
즉 4A와 4F가 이코노미 석 중 가장 좋은 자리이니, 티켓 체크인을 일찍하는 사람은 한 번 노려볼 만 하다.

족자에 거의 도착할 즈음의 자와 섬 남쪽 해안선과 인도양.
끝도 없이 일직선으로 펼쳐진 해변이 신기했다.
실제로 족자 쪽으로 비행기가 방향을 트는 바람에, 저 해안선이 굽는 부분은 끝내 볼 수 없었다.

족자 시내 상공.
국기가 메라뿌띠 Merah Putih (Merah는 빨간색, Putih는 흰색)라서 그런지, 대부분 하얀 담벼락에 빨간 지붕이다.

비행장에서 바라본 공항 청사.
즉 저 아스팔트 도로는 공항 외부의 일반 도로가 아니라, 내부의 도로라는 얘기.

인니가 문화적으로 가장 밀고 있는 문화관광 도시답게 잘 보이는 곳에 여행자 정보 센터가 있었다.
게다가 지도도 무료!!였다.
인니에서 지도가 무료라는 건 굉장한 거다.
그 국제적 관광지 발리마저도 유료, 그것도 6천원 상당이다.

태사랑에서 얻은 정보대로 씩씩하게 트랜스 족자로 갔다.
물론 말이 통하니 물어봐도 되겠지만, 사전 정보가 주는 든든함은 다르다.
요금은 3천 루피아로 올랐다. (거리 불문 동일)
여행자 거리인 소스로 위자얀 Sosro Wijayan 으로 가려면 A1 번 버스(말리오보로 Malioboro - 쁘람바난 Prambanan 노선)를 타야 하는데, 주의할 점은 말리오보로 방향이나 쁘람바난 방향이나 둘 다 같은 정류장에 정차한다는 것.
그러니 그냥 속편하게 정류장에 있는 직원(?)에게 지도로 찍어 주거나 소스로 위자얀 이라고 말하면 탈 버스를 가르쳐 줄 것이다.

약 40여 분 정도 걸려 말리오보로 거리에 도착했다.
트랜스 족자는 버스 내부에 차장이 있는데, 차장에게 소스로 위자얀 간다고 하면 내릴 때 알려 준다.
말리오보로 거리에만 정류장이 세 군데라, 그냥 말리오보로 라는 말만 듣고 내리면 잘못 내릴 수도 있다.

내리면 길 건너 왼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소스로 위자얀 거리 입구가 나온다.
내리자 마자 베짜 Becak (자전거 택시. k는 묵음) 기사가 삐끼처럼 따라 붙는데, 웃으면서 단호하게 노 땡스라고 하길 권한다.
(웃으면서 단호하게, 이게 중요함. 인상 쓰면 무시 당한다는 기분을 줄 수 있으며, 단호하지 않으면 무지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인니어로 대화가 어느 정도 되니까, 괜찮다, 아는 데 있다, 거기 묵을 거다 얘기했는데, 아무리 얘기해도 끝까지 꾸역꾸역 따라 붙었다.
이 때부터 인니인의 그악스러움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들어가자는 강 1 Gang 1 (차도 못들어갈 작은 골목을 뜻함) 앞에서 내가, " 난 안들어간다. 저 쪽으로 가겠다." 하면서 걸음을 옮기자, 거의 배신자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마도, ' 내가 여기까지 같이 와줬는데 니가 이럴 수 있냐, 이 나쁜 놈아.' 뭐 이런게 아닐까 싶다.
이들의 감정 셈법은 우리와 아주 많이 다르다.
한국인 관점에서 봤을 때, 다른 동남아 국가 보다도 더 그악스럽고, 뻔뻔한 느낌이다.

혼자 휘적휘적 찾아 들어간 소스로위자얀 거리 강3 입구에 있는 빈땅 까페 Bintang Cafe (Bintang 별).

하지만 결국에 결국은 악마같은 베짜 기사에게 잡히고 말았다. -_-;
각 골목의 입구 마다 베짜들이 죽치고 있는데, 이들은 손님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 숙소 찾는 외국인을 안내하는 일도 한다.
문제는 그게 거의 반 강제라는 것.
내가 아무리 됐다고 됐다고 해도 끝까지 따라 붙는다.
" 나 인니말 할 줄 안다, 그냥 혼자 찾겠다." 아무리 얘기해도, 실실 웃으며 " 괜찮다, 안내해 주겠다." 이러며 졸졸졸 따라 붙는다.
하는 품이 마치, 꺼지라고 따귀를 때리고 콧잔등을 패도 코피 질질 흘리면서 " 사랑해!" 하고 덮치려는 인간 같다고나 할까.
징그러울 정도다.

하필 타이밍도 뭣 같은 것이 이때 쯤 배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차분히 대응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머라삐 호텔 Hotel Merapi (Merapi 타오르다, 족자 근처 화산 이름)에 숙박을 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방 둘러보고 계약하는 동안, 나를 끈질기게 따라 붙었던 베짜 기사는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자, 이쯤되면 그들이 왜 그리 꾸역꾸역 따라 붙는지 감 잡았으리라.
그들은 커미션이 목적이다.
자기가 손님을 데려왔다는 거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손님이 숙소에 왔을 때, 같이 있었으면 안내한 거다.
숙소 측에서도 손님에게 저 사람이 안내한 것이 맞냐고 확인할 바보는 없다.
그냥 커미션 만큼 손님에게 받으면 될 일이다.
(제대로 된 호텔이 아니면 아직도 가격 내고는 가능한 편이다. 흥정 없는 장사 없고, 가짜 없는 시장 없는게 인니.)

너그럽게 보면 생활력 좋은 걸 수도 있겠다만, 질린다는 느낌이다.
존심도 없는 선인보다는 존심 있는 악인을 높게 보는 성격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다.
하긴, 먹고 사는데 존심 내세우면 굶어 죽기 딱 좋겠지.
게다가 인니의 자존심과 한국의 그것은 개념이 전혀 다르다.

그렇게 그 베짜 기사는 그예 따라 붙은 결과로 커미션을 챙겨 갔을 테고, 난 아픈 배를 붙잡고 방으로 갔다.

헐크가 왔다 간듯 초록색 녹(?)물이 보인다.
에휴... 그 놈의 배만 안아팠어도... -_-;;


후일담.
잘 비웠겠다, 뭣 좀 줏어 먹어 볼까 하고 골목을 나서는데, 그 베짜 기사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니, (속으로는 천불이 났다!!) 사람 좋은 표정으로 하는 대답이 끝내준다.
" 내가 널 거기에 안내해 줬으니, 나중에 베짜 탈 일 있으면 꼭 내 걸 타야한다."
그 죽통으로 돌진하고 싶어 움찔거리는 주먹을 진정시키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 뜬뚜 사자 Tentu saja. (물론 당연하다.)"


* 인니 여행 하면서 가장 많이 쓰게 될 말은, 하우머치도 아니고, 헬로도 아닙니다.
  바로 ' No, Thanks.' 입니다. (호객 장난 아니거든요. -_-;;)
  표정과 억양이 중요한데, 어조는 단호하게, 입가에는 약간 미소를 띄면서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미간을 약간 찌푸려 ' 귀찮다' 라는 기색을 살짝 드러내는 것도 효과적입니다만, 그 때에도 입가에 미소는 꼭!)
  한국 정서(죄송하지만 필요 없습니다 뭐 이런 정서)처럼 난처하다거나 미안하다는 기색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런 기색이 보이면 두 배는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달라 붙습니다.
  여행 중 후일 경험한 것인데, 평상 시 호객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지만, 그러다가 뭔가 구실을 잡았다고 판단했을 때의 이들의 돌변하는 태도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미안함이나 난처함 같은 약한 감정은, 그들에겐 자신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아니라 그저 구실일 뿐입니다.
  하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예의 차린 거절 보다는 돈이겠지요.

  그런데 미소는 잊지 마세요.
  당신의 인상이나 혹은 한국인의 평판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혹시 당할 지 모르는 해꼬지를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한국 사회에 있어서 거절은, 청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거절 당하는 것 역시 어떤 식으로 거절 당하든 청한 사람이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행동이지만,
  이 곳에서는 청한 사람의 기분이 상했다면 거절의 방법을 잘못 사용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인니의 대화 패턴을 보면, 부정적인 대답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인이 보기에 긍정적인 답변인데, 실상은 99%도 아니고 100% 완전한 거절의 뜻인 경우가 흔합니다.
  거절의 표현이 그리 부드럽고 완곡한 곳이니, 한국인 생각에는 그냥 별 거 아닌 듯한 거절의 표현에도 심한 모욕감을 느껴 원한을 품을 수도 있겠죠.
  문화가 다르니 한국에서는 사소한 일이 여기에선 사소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은혜는 잊어도 어지간한 원한은 절대 잊지 않고 갚으려는 성향까지 있습니다.
  (더군다나 목숨 값도 싼 나라입니다. ㄷㄷㄷ)
  그러니 미소는 잊지 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