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

공무원이 되면 뒷돈 뜯는 게 당연해지는 건가?

명랑쾌활 2024. 5. 1. 07:01

난장판 마을 반장 선거 포스팅을 했던 적 있습니다. (https://choon666.tistory.com/1601)

(반장 자리 안놓겠다고 버티다 결국 떨어져 나간 전임 반장은 선거 사건 후 1년이 안되어 코로나로 사망했습니다. 인생무상...)

포스팅 마무리 글에 '이제 갓 두 달이라 평가하긴 이르지만, 전임 반장보다는 훨씬 나은 거 같습니다'라고 썼네요.

평가가 일렀습니다. ㅋㅋㅋ

전임 반장은 돈 밝히고 권위주의 쩔기는 했지만, 최소한 발급은 해줬는데, 신임 반장은 발급을 안해줍니다.

 

반장 취임한지 2년 무렵입니다.

자동차 세금 때문에 도미실리를 발급 받으려 아내가 반장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반장이 집에 있을 때 가서 받아야 하거든요.

읽음 표시는 떴지만 답장이 없습니다.

다음날 오전 아내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자 그날 밤이 되어서야 답신이 왔습니다.

반장 - 당신 남편 서류인데 왜 나는 당신 남편을 본 적이 없냐?

당연히 아내가 대신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인니 10여년 살면서 이런적 없습니다. 심지어 결혼 전에도 아내가 대신 받아준 적도 있어요.

 

뭐 어쨌든 일리있는 말이라 다음날 밤 반장 집에 찾아갔습니다.

인니 산지는 얼마 됐냐, 무슨 일 하냐, 회사는 어디냐...

그러다 근래들어 이 주택단지에 사는 한국인들이 사고를 친 게 있어서 발급이 좀 까다로워졌다는 얘길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5년째 지금 집에 살고 있다, 모든 서류의 주소지가 다 지금 집이다, 이번에 세금 내려는 차량도 주소지가 여기다, 원한다면 전부 복사본 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반장은 일단 알았다며, 지금 용지가 없다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A4 용지 프린트해서 서명만 하면 됩니다. 거짓말인 거 같지만, 추궁할 방법이 없으니 그날은 그냥 돌아왔습니다.

 

다시 사흘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습니다.

세금 납부 기일 열흘 전부터 여유를 두고 진행하려 했는데 이제 1주일 남았습니다.

아내가 문자를 보냈더니, 다시 그날 밤이 되어서야 답신이 왔습니다.

반장 - 요즘 바빠서 시간이 안난다. 동사무소에서 도미실리 발급에 신중을 기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기다려라.

아내 - 세금을 내야 하는데 도미실리가 없어서 못내고 있다. 기한 넘기면 벌금이 나온다. 벌금 대신 내줄 거냐.

반장 - 동사무소 가서 받아라. 난 못내준다.

아내 - 도미실리는 반장이 발급하는 게 법이다. 동사무소에 가서 누구한테 발급 받냐.

이후로 반장에게서는 답신이 없습니다.

또 하루가 날라갔습니다.

 

다음날 오전 아내를 시켜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내 - 그러면 동사무소 지침으로 도미실리를 발급할 수 없다는 확인서를 써가겠다. 거기에 서명해달라. 그거 들고 경찰서 차량 세금 납부 창구에 제출하고 양해를 구하겠다.

그날 밤 반장에게서 답신이 왔습니다.

반장 - 이틀 뒤 밤 8시에 집에 오면 도미실리 발급해주겠다.

또 하루가 날라갔습니다.

 

이틀 뒤 오후 5시쯤 반장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내 - 전에 약속한대로 오늘 8시에 찾아가겠다.

30분 쯤 지나서,

반장 - 동내 통반장들 전체 회식 일정이 잡혔다. 오늘 안되겠다.

아내 - 회식 끝나고 귀가하면 받으러 가도 된다.

반장 - 안된다. 오지 마라.

아내 - 그럼 언제 되냐?

반장 - 아직 모른다. 바쁘다.

반장은 밤 8시에 귀가했습니다. 집이 같은 구역 내라 조금만 신경쓰면 반장 집에 차 들어가는 것 정도는 다 보입니다.

괘씸해서 아내와 같이 반장 집에 찾아가 문을 노크하고 사람을 불렀습니다.

집에 뻔히 불이 켜져 있고 TV 소리가 나는데,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한국 같으면 문짝 부서져라 때리겠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랬다가는 감사합니다 하고 냉큼 경찰 부르겠지요.

하는 수 없이 돌아가야 했습니다.

또 하루가 날라갔습니다.

 

다음 날 오전, 아내가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내 - 어제 밤 차가 있길레 집에 온 줄 알고 찾아갔었다.

반장 - 아무도 없었다. 왜 찾아 오냐.

아내 - 주민이 반장 집에 찾아가지도 못하냐. 언제 발급해줄래. 납부 기한 내일까지다. 벌금 나온다.

반장 - 오늘은 바쁘다. 내일 연락 주겠다.

아내 - 내일 해주는 거냐.

반장 - 모른다. 내일 연락 주겠다.

 

뭐 이쯤 되면 되는 걸 안되게 질질 끌면서 은근히 돈을 요구하는, 매우 전형적인 인니 공무원들 수법을 쓰는 게 확실합니다.

안되는 걸 되게 하는 건 혹시 문제 터지면 책임을 져야 하지만, 되는 거 질질 끄는 건 얼마든지 책임 회피가 가능합니다.

내일 안해줄 게 뻔하니, 반장 건너뛰고 통장에게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연락을 해두라고 아내를 시켰습니다.

통장과는 예전부터 안면이 있습니다. 이전 반장이 워낙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서, 그 때마다 통장을 찾아 갔거든요.

반장이 뻔히 있는데 건너뛰고 통장에게 얘기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서 그동안 참고 있었던 건데, 이젠 명분이 충분합니다.

아내는 통장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내일 만약 반장이 해주지 않으면 통장에게 직접 받아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통장은, 반장이 내일 연락준다고 하긴 했으니 일단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해주지 않는다면 도미실리 양식 만들어서 자기에게 오라고 합니다.

 

반장은 당연히 다음 날 연락이 없습니다.

아내가 문자를 보내도 읽기만 하고 씹어버립니다.

그 다음 날 일찍 통장에게 찾아갔습니다.

양식은 다행이 예전에 발급 받았는데 안 쓴 게 있어서, 스캔 밀고 그림판으로 적힌 내용들 지워서 빈 양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통장은 나이가 일흔 줄이신데 해군 퇴역군인입니다. 부산항에도 가본 적 있다고 합니다.

통장은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녀석(반장), 돈 달라는 거겠지. 그 녀석 아버지랑 아는 사이라 그 녀석 어릴적부터 봐왔는데... 쯧쯧. 반장 처음 달았을 적엔 열심히 하는 거 같더니, 정신 못차리네."

준비해간 양식에 시원하게 서명을 해서 건내주며 말합니다.

"그 녀석 언제 한 번 찾아가서 혼쭐을 내야겠어. 멀쩡한 놈도 공무원이 되면 왜 그리 돈을 밝히나 몰라."

 

그렇게 해결했습니다.

자동차세는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벌금 30만 루피아을 추가로 내야했고요.

반장은 그 이후로 연락 일절 없습니다. 기대도 안했습니다.

인니에서 부패는 너무도 뿌리 깊은 관행이라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공무원 최말단 반장이 된지 1년 지나자 고작 1만원 뜯겠다 그렇게까지 아득바득 지랄을 한다는 건, 그 1만원이 안받으면 손해인 자기 돈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일 겁니다.

 

키가 작은 편인데 다리를 굳이 어꺠 너비 이상으로 벌리고 선 포즈를 보면 자의식과 명예욕이 상당히 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