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A(종교청) 앱에 혼인 신고 등록을 할 때, 결혼식 장소와 일시를 입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혼인 신고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할 적에 결혼식장도 정해야 합니다만, 분량이 많아서 챕터를 따로 뺐습니다.
원래 계획은 그냥 KUA 가서 혼인 신고만 하고 나중에 스몰 웨딩을 하든 마을 잔치를 하든 발리 리조트 웨딩을 하든 할 셈이었습니다.
아내 역시 집안 형편 어렵던 시절, 달삼쓰뱉 하고 뒷다마 씹뜯맛즐 하는 친척들 냉대와 무시에 학을 땠던지라 (마을 잔치 이틀씩 하는) 인니의 일반적 결혼식은 질색이었고요.
그런데, KUA에 신고만 하는 건 안될 줄이야. '반드시' 예식을 거행해야 할 줄이야... ㅋㅋㅋ
그 사실을 알았을 적엔 뭐 이런 개같은 법이 다 있냐고 며칠을 씩씩거렸습니다.
한국 기준으로 생각해서 당연하다고 방심하면, 반드시 뒤통수를 후려맞는 게 외국 생활입니다.
결혼식장 정하는 것도 수월하진 않았습니다.
일단 장인장모와 상의를 했는데, 동의해주시면서도 최소한 장인의 형제자매들은 참석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장인장모 양친, 장모의 형제자매는 작고하셨음)
체면 때문이라기 보단, 무슨 추문을 - 혼전 임신이나 첩실 결혼 따위 - 수근거릴지 몰라서 그러시는 거라고 아내가 귀띔을 했습니다.
그마저도, 한두 다리 걸치면 다 친족인 마을 주민들이 자기들은 왜 초대 안하냐고 수근거릴 건 장인이 감내하시는 거랍니다. 결혼식이라면 '당연히' 마을 주민들도 초대를 해서 잔치를 해야 하는데, 그 당연한 걸 하지 않으니 뭔가 떳떳치 못한 거 아니냐는 거죠.
그러니, 직계 가족만 참석하자는 제 뜻을 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체면 중시하고 추문 피하려 허례허식 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도 생소하진 않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결정했다고 끝이 아니더군요.
한국처럼, 당사자가 결정했으면 그냥 통보만 하는 되는 식으로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을 모아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게 순리라고 합니다. 장인이 맏형인데도요.
날짜를 정해 형제자매들이 모였습니다.
그냥 의례적으로 모인 거고 동의는 형식이겠거니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인의 동생들은 각자 자기 의사 조목조목 말하면서 동의하기도, 뜻에 따르겠다고 하기도, 반대하기도 하더군요.
인니는 무샤와라 Mushawara (협의) 와 무파캇 Mufakat (합의) 문화가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직원 모아놓고 간담회를 하면, 말단 직원이나 청소부도 자기 의견을 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상명하복 한국식 직장 문화에 익숙했던 제가 당황했었지요. ㅎ)
그런 문화가 가족 사이에도 적용된다는 걸 직관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니 직장에서도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겁니다.
장인의 큰 동생(차남)이 최소한 촌수가 가까운 마을 친족들은 초대하자는 의견을 끝까지 고집해서 좀 난감했습니다.
말이 친족들 초대지, 이웃들도 같이 올게 뻔합니다. 그렇다고 분별해서 받을 수도 없고, 그냥 마을 사람 전부 다 초대하겠다는 뜻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모이게 되면 과장 안보태고 정말로 1천명이 훌쩍 넘습니다. 그래서 마을 잔치를 하면 기본 이틀 이상인 겁니다.
결혼식에 뭐 보태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잔치는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장인 큰 동생이 얄밉더군요. ㅎㅎ
한참 설왕설래하다 결국 장인이 "얘네들이 예식 비용 전부 자기들이 부담하고, 부조도 일절 안받겠다는데 취지를 좀 양해해라"라는 말로 일단락 짓고, 다들 (몇명은 마지못해) 동의하는 걸로 마무리했습니다.
듣자하니 장인 큰 동생은 그 후로도 며칠간 전화로 친족 중 누구는 초대해야 한다는 둥 질척거렸다고 합니다.;;
* Mushawara (협의) 와 Mufakat (합의)
인니 특유의 의사 결정 문화. 집단의 구성원 전부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발언권이 있으며, 지위가 낮거나 소수라 해서 의견이 묵살되지 않는다. 구성원 간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경우 진행자가 중재를 하며, 구성원 전원이 합의함으로써 결정 사항이 정해진다.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문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분명한 문제도 구성원 일방의 희생이 클 경우 해결책으로 쓰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인니인들은 법도 무시하고 우기기 떼쓰기 한다'고 오해를 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보통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효율을 우선으로 하는 방편일 뿐이다.
협의를 통해 전원 합의로 결정하는 문화가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깝다. (모두가 주인이니까)
뭐 그래서 한국이 발전이 빠르고, 인니는 느리지만.
이제 예식을 할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인니는 한국처럼 결혼식만 전문적으로 찍어내는 결혼 공장 예식장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집이나, 마을 공터에 천막 세우고 2~3일 잔치를 하는 게 '보편적'이거든요.
잔치니까 음주는 아니더라도 가무는 당연합니다.
당둣 Dangdut (인니 트로트) 밴드 불러다 밤늦게까지 놀기도 합니다.
분홍색 입은 여성분이 신부입니다. ㅋㅋ 나중에 신부 친구나 자매들도 올라오네요.
형편이 안되면 노래방 기계라도 설치합니다.
롬복 Lombok (발리 동쪽의 섬) 지역에서는 신랑이 신부 데리러 처갓집에 가는 길 내내 이 짓을 하기도 합니다. ㅋㅋ
저렇게 처갓집 가서 혼인 의식 하고, 잔치 하고, 첫날밤 치르고, 신부와 본가로 돌아옵니다.
참고로 롬복은 1990년대까지 약탈혼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이 아니라면 보통은 호텔입니다.
웨딩 페키지를 운영하는 호텔도 꽤 흔합니다.
한국과 달리 호텔 웨딩이라고 해서 반드시 호화판인 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마을에서 하는 것보다 저렴하기도 합니다.
컨벤션 홀에서...
초호화판으로 하기도 하고...
한국으로 치면 가든 비스무리 한 곳을 빌려서...
프라이빗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도 비용이 꽤 센 편입니다.
하여튼, 한국 같이 결혼식을 전문으로 하는 예식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관할 KUA 근처에 단독 건물로 깔끔하고 규모 적당한 레스토랑을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빌렸습니다.
결혼식하려고 대여하는 사람이 이전에도 꽤 있어서 복잡하지 않게 해결했습니다. KUA에서도 잘 알더군요.
아직까지는 마을에서 결혼 잔치하는 게 월등히 많지만, 인니도 도시화의 물결에 점차 퍼져 나가는듯 합니다.
꽃 장식, 메이크업, 사진, 진행자는 아내 인맥을 통해 구했습니다.
결혼식은 뭐 별 거 없었습니다.
새벽 6시부터 2시간 반 동안 신부 화장을 하는 아내가 대단해 보이더군요. ㄷㄷㄷ
진짜 결혼식은 나중에 따로 할 계획이고, '이건 종교청에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넘어야 할 절차일 뿐'이라고 간주한터라, 전 딱히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가능한만큼 최대한 간소하게 했기 때문에 복잡하지도 않으니 돌발 상황이랄 것도 없었고요.
혼인 의식 중 이잡 까불 Ijab Kabul (혼인 계약) 읊는 건 좀 쫄리데요. ㅎ
* 이잡 까불 Ijab Kabul
인니의 이슬람식 혼인 계약. 보다 정확히는 계약을 위해 읊는 문구.
언약(구두 약속)으로 이루어진다. (아랍 무슬림 문화권에서는 서면 계약보다 언약을 더 무겁게 여긴다고 한다 )
문구 내용은 이슬람의 신랑 지참금 문화에서 유래했으며, 지역마다 문구에 쓰인 단어나 조사가 약간씩 다르지만 뜻은 동일하다.
신부 부친이 읊는 대목 :
Saya nikahkan dan kawinkan 신랑 이름 bin 신랑 부친 이름 dengan anak saya yang bernama 신부 이름 dengan maskawinnya berupa 지참금 목록, tunai.
나는 OOO의 아들 OOO과 내 딸 OOO을 혼인시킨다. OOO, OOO, OOO의 지참금과 함께
신랑이 읊는 대목
Saya terima nikah dan kawinnya 신부 이름 binti 신부 부친 이름 dengan maskawinnya yang tersebut tunai.
나는 OOO의 딸 OOO과의 혼인을 받아들인다. 언급한 지참금과 함께
지참금을 준다, 받는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함께'라고 하니까 애매한데, 당연히 신랑 측이 지참금을 주는 거다. ㅎ
지나치게 지방 자치제가 잘된 나라답게(?), 혼인 의식 역시 지역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체험한 바를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1. 종교 지도자, 신랑, 신부, 신부 부친(or 후견인), 신랑신부 증인, 총 6명이 배석합니다.
종교 지도자가 의식을 주재하고, 혼인 계약의 주체는 신랑과 신부 부친입니다.
제 경우, 황송하게도 KUA 지부장이 직접 왔습니다. 여간해선 쫄다구가 온다고 합니다. 해당 KUA 지부에서 외국인이 결혼하는 건 처음이라 봉잡았... 더 신경 써준 모양입니다. 이런 신경 부담스럽네요.
증인은 원칙적으로는 누구든 가능하지만, 보통 양가 각각 가장 유력한 사람이 맡습니다. 사정상 어느 한쪽 집안 측에 증인을 맡을 사람이 여의치 않을 경우 상대편 집안의 사람이 맡아줘도 상관 없습니다.
증인 서달라고 할 적엔 결혼식 전에 날짜 여유있게 미리 부탁해야 합니다. 예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 증인을 맡는다는 게 그저 이름 빌려주는 정도의 가벼운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 신부측 증인은 장인의 질척질척 큰 동생이, 신랑측 증인으로 저와 가장 오래 알고 지낸 현지인 지인이 맡았습니다.
대놓고 티는 내지 않지만, 증인의 사회적 지위로 상대편 집안의 급을 평가하는 눈치였습니다.
2. 의식 순서는 먼저 종교 지도자가 의식을 여는 말과 기도, 코란 구절을 암송합니다.
이슬람식 기도는 기독교의 '기도하겠습니다' 같은 신호가 없이 훅 들어가기 때문에 같이 기도하는 시늉을 하려고 타이밍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시선을 45도 하단으로 두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기도 후, 종교 지도자가 혼인 관련 얘기(주례사 비슷)를 줄줄이 말하고, 신부와 신랑에게 각각 혼인할 의사가 있음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면 됩니다.
3. 드디어 혼인 의식의 엑기스, 하일라이트, 클라이막스인 이잡 까불입니다.
언약은 신부 부친과 신랑이 오른손을 서로 맞잡은 상태로 진행합니다.
종교 지도자가 본 혼인 계약에 따른 남편과 부인, 기타 당사자들의 권리와 책임을 설명하고 계약 절차를 여는 말을 하면, 이어서 신부 부친이 자신이 말해야 할 내용을 읊고, 다시 이어서 신랑이 자신이 말해야 할 내용을 읊습니다.
종교 지도자-신부 부친-신랑 순으로 순서가 넘어갈 때 잠시라도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하며, 더듬거나 틀리거나 발음이 헛나가거나 멈칫하거나 하면 될 때까지! 처음부터 다시해야 합니다. 언약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정한 규칙인 거 같습니다.
문구를 외워서 해야 하지만, 프린트한 종이를 앞에 놓고 하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다음 사람이 바로 이어서 말하기 수월하도록 문구 마지막 단어에 강세를 주면서 길게 늘여서 발음하라고 하더군요. '뚜나이'인데 '뚜우우우우나이!'라는 식으로요. ㅋㅋ
제가 한 번 버벅거린 바람에 두번째에 끝냈습니다. ㅎ;; 속사포랩 3초 컷으로 귀에 때려 박을 수 있게 딸딸 외웠는데, 프린트한 종이를 앞에 두고 속도를 늦춰 읊으려니 오히려 헷갈리더군요.
그래도, 두 번째에 성공이면 무난합니다. 신랑이 너무 긴장해서 10여 차례 이상 계속 틀려서 반복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 있습니다. (하객들이 쿡쿡 웃으면서 지켜보다가 마침내 성공하니까 와아~ 하면서 박수를 치더군요.)
신랑까지 문제 없이 계약의 말을 끝내면, 종교 지도자가 양측 증인에게 계약에 문제가 없냐고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준비해 온 부꾸 니까 Buku Nika (혼인 확인서) 2부에 신랑, 신부, 양측 증인, 종교 지도자 순으로 서명한 후, 혼인이 성립됐음을 하객들에게 공표하면 끝입니다.
아, 종교 지도자의 휴대폰으로 신랑 신부가 각자 자신의 부꾸 니까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찍더군요.
증거 같은 건가 봅니다.
이슬람식 혼인 의식이라고 해서 엄격 근엄하게 무게잡고 그러진 않습니다. 진지하게는 합니다.
식을 진행하는 내내 하객들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도 상관없는 분위기입니다. 시끄럽게 떠들거나 잡담하면 당연히 안되지만요.
이슬람을 부정적인 뉴스로만 접했기 때문에 편견을 갖기 쉽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뭐 좀 틀렸다고 못마땅하게 노려보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이 더 경직적이고 근엄합니다.
인니 이슬람은 특히 융통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랍은 인니 이슬람을 날라리 취급합니다. ㅋㅋ)
부패한 부분도 융통성이 있으니 부패할 수도 있는 거 겠지요. 사람 사는 건 다 같습니다.
4. 실질적인 혼인 의식은 이잡 까불이 전부입니다.
이후 일정은 다 부대 행사입니다.
포토 타임 하고, 음식 먹을 사람은 먹고, 자유롭습니다.
종교 지도자가 늦게 오는 바람에 9시 반쯤 시작했는데, 11시쯤 되니까 한 두 팀씩 빠지기 시작해서 12시 전에 파했습니다.
얼굴만 내밀고 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정말정말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만 그러는 모양입니다.
이제 부꾸 니까도 손에 쥐었으니, 큰 고비는 다 넘은 셈입니다.
*** 주의!!
가급적이면 결혼식 마치고 '당일'에 KUA에 가서 부꾸 니까 복사본에 원본대조필 스탬프를 찍은 서류를 받길 권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 챕터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