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

안받기도 애매한 뒷돈

명랑쾌활 2024. 1. 17. 06:59

인니 물정 잘 모르던 시절, 다니던 회사의 공장을 신축하는 건설업체 사장으로부터 봉투를 받은 적이 있다.

사장은 내 또래 젊은 중국계였다. 외부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헤어졌는데, 차에 타고 나서야 자켓 주머니 안에 봉투가 있는 걸 발견했다.

2천만 루피아 짜리 수표였다. 크다고 하기엔 어정쩡한 액수다.

어째야 하나 몰라서 인니 거주 선배에게 물었다. 거주 20여 년차에 공장 건축이나 증축도 많이 진행했던 법인장이었다.

받으면 뒷탈 난다고, 돌려주라고 해서 돌려줬다.

'이런 거 받을 생각 없다. 업무 깔끔하게 해줘서 늘 고맙고, 앞으로도 오래 같이 일하고 싶다.'라고 했는데, 어째 돌려 받는 사장 표정이 영 안좋았다.

그 후 사장은 만나더라도 업무적 얘기만 했다. 거리를 두는 기색이 역력했다.

공장 건축이 끝난지 한 달쯤 후 식사라도 같이 할까 해서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후로 연락은 끊겼다.

 

중국계 비즈니스 스타일이 종종 그렇다는 사실을 훗날 알게됐다. (전부 그렇지는 않다.)

구린 거 봐달라 거나 챙겨달라는 게 아니라, 앞으로 비즈니스 잘 해보자고 주는 의미라고 한다.

거절하면 준 쪽의 체면을 무시한 거고 다시는 거래 안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차라리 다른 선물로 돌려주는 편이 낫다고 한다.

 

그렇다고, 월급쟁이가 그 돈을 꿀꺽하면 뒷탈 날 수 있다.

사장이나 상급자에게 솔직하게 보고하고, 처분을 맡기는 게 정답이다.

거절하는 게 실례라고들 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고 보고하면 된다.

 

덕분에, 아무리 인니이 오래 살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맞는 말만 하는 건 아니라는 교훈은 얻었다.

같은 법인장이라고 해도 상황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정확히 맞는 조언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의견을 받되 참고만 하고, 스스로 궁리하는 편이 낫다.

 

<호랭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