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시사

대기업은 납품 단가 인하를 흥정하지 않는다

명랑쾌활 2024. 4. 26. 07:14

대기업은 단가 인하를 흥정하지 않는다.

대기업은 납품 단가를 조정하고 협의한 후 통보한다.

 

하청의 원자재 및 부품 사입 단가표를 펴놓고 납품 단가를 조정한다.

하청의 담당직원 불러다 놓고 조정한 납품 단가 리스트와 원가표를 들고 협의한다.

그리고 통보한다.

그 과정은 격정적이지 않다. 숫자만 본다. 앓는 소리는 좀 해도 그냥 나오는 소리다. 그런 거 안통한다는 거 서로 뻔히 안다.

 

대기업 구매부 정도 되면 하청이 납품하는 제품 원자재 하나 하나의 사입 가격을 다 파악하고 있다.

하청의 인건비, 설비비 및 감가 상각, 수도광열비, 관리 지원비까지 거의 정확하게 추정한다.

무슨 첩보원이 정보 수집이라도 하듯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하청의 거래선 뻔히 파악하고 있고, 조달하는 자재나 부품도 대기업이 사려면 못살것도 없다. 가격 알아보는 것 정도는 어려울 것 없다.

중소기업 총무나 회계부서에서 5년 정도 근무만 해도 비슷한 규모, 비슷한 업종의 타회사 인건비나 설비비 등등은 대충 때려 맞춘다. 아주 특수한 경우 아니면, 기업 구조는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맘먹으면 언제든지 하청 회사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는 대기업 직원이 그깟 거 예상 못할리 없다.

대기업이 조정하겠다고 제시한 단가표는 이미 하청의 이익이 얼마인지까지 다 감안된 결과다.

더 조이고 말고 할 게 없는 최저가다.

 

대기업 직원은 하청이 먹고 살지 말지 신경 안쓴다.

손해보고 팔라는 양아치 짓이 아니라, 직원들 쥐어짜면 유지 가능할 정도로 최소한의 이익은 깔아준다.

어차피 하청 사장의 재산 증식은 기업 이익이 아니라 부동산과 세금 혜택에서 나온다.

그리고, 대기업 직원이 하청 사장 먹고 사는 거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오지랍도 없다.

대기업 1차 하청은 중견 기업 수준이고, 자금과 기술 좀 있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판이 아니다.

대기업 내부에 아무리 못해도 부장급, 보통은 임원급 이상의 줄이 있어야 낄 수 있다.

1차 하청 사장 정도면, 현금 유동성 사정은 각자 다르지만 자산 가치만 따지면 대부분 몇 백억대 부자다.

대기업 직원 따위가 불쌍하네 마네 할 레벨이 아니다. 대기업 직원 거의 대부분이 꿈꾸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1차 하청 사장이다.

 

대기업 직원의 냉혹한 선택에 하청이 망하고 사장이 자살하는 스토리는 2천년대 이전 종합상사 시절 얘기다.

그나마도 아주 드문 일이다.

요즘은 그런 일 없다.

일개 대기업 직원이 독단적으로 선택할 수도 없고, 당했어도 그리 쉽게 망할 규모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대기업 직원도 그 여파를 유야무야 넘어가지 못한다.

흔히 알고 있는, 사장이 찾아가 '이 단가면 우리 죽습니다'하고 무릎 꿇고 비는 장면은 그 불쌍하다는 하청이 가해자가 되어 밑의 재하청 짜낼 때나 볼 수 있다.

물론 그 원인은 대기업이 단가를 압박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대기업은 그런 상스러운 짓 직접하지 않는다.

인간성 배제하고 상대를 숫자와 도구로만 보는 게 대기업의 세련된 방식이다.

 

 

기업물 웹소설들에 현실과 영 동떨어진 기업 관계 묘사가 종종 눈에 뜨여서 나도 소설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