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시사

전세 제도의 감춰진 함정

명랑쾌활 2021. 1. 15. 09:04

'정말로 전세 제도가 세입자에게 유리하다면, 집주인이 바보냐? 내키면 얼마든지 월세로 돌릴 수 있는데.'

구구절절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한 마디면 끝입니다.

설마 집주인의 선량함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설마 없겠죠.

그런데도 많은 세입자들이 전세 제도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비정상적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무지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가난한 걸까요?
 
 
세입자가 생각하는 전세의 장점
- 전세금은 고스란히 돌려 받는 돈이다. 전세금에 저금을 합쳐 점점 더 큰 전세로 옮겨가고, 마침내 전세금에 대출을 합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했을 때 받는 이자에 비해 월세가 훨씬 비싸다.
- 따라서,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묻어 두면, 전세 기간 내내 은행 이자율과 월세의 차액만큼 이익을 보는 셈이다.
 
집주인이 생각하는 전세의 장점
- 내 집을 담보로 돈을 벌리면 이자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전세금은 이자가 없다. 원금만 돌려주면 된다.
- 원금도 돌려 줄 필요 없다. 다음 세입자에게 받아서 넘겨 주면 된다.
- 따라서, 전세금은 집을 담보로 받는 '무기한 무이자' 대출이다.
 
정말로 세입자가 은행 이자율과 월세의 차액만큼 이익을 보는 거라면, 집주인은 그만큼의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주인은 그 목돈을 굴려서 은행 이자보다 더 벌 방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 부분 맞습니다. 근데 그 방법은 도대체 뭘까요?
은행 이자보다 더 버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알량한 은행 이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벌자고 머리를 굴리다 굴리다 결국 주식이나 펀드를 합니다.
설마 전국의 그 수많은 집주인들만 아는 다른 방법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전국의 그 수많은 집주인들이 모두 사업을 하고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집주인도 세입자처럼 '내 집 마련'을 합니다.
세입자는 전세금에 대출을 합쳐 내 집 마련을 합니다.
집주인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집주인도 전세금에 대출을 합쳐 내 집 마련을 합니다.
다른 건 세입자의 전세금은 자기 돈이라는 거고, 집주인의 전세금은 남의 돈이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무기한, 무이자인 남의 돈이요.
 
세입자가 사려는 '내 집'이나 집주인이 사려는 '여섯번째 내 집'이나 같은 집입니다.
무주택자가 사든, 다주택자가 사든 집은 집이예요.
그런데 이 경쟁은 집주인 쪽이 무조건 한 발 빠를 수 밖에 없습니다.
집주인은 세입자의 돈을 받아서 사는 거고,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돈을 돌려 받아서 사는 거니까요.
세입자는 결국 집주인이 선점한 집을 다시 사기 위해 다시 웃돈을 얹어 줘야 합니다.
죽어라 돈을 모아도 집값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른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세입자가 집사려고 모은 돈을 집주인에게 '전세금'으로 맡겼고, 집주인이 그 '전세금'으로 먼저 집을 사니까요.
 
집값이 올라서 집 사기 어려운 건 집주인에게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집값이 오른다는 건 집주인이 '이미 소유한' 집값도 오른다는 거니까요.
집값이 오른 만큼 전세금을 올리면 됩니다.
집주인이 질래야 질 수가 없는 경쟁입니다.
 
은행 이자와 월세의 차액만큼이 세입자의 이익이 아닙니다.
집주인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바보도 아닙니다.
세입자가 집을 사려할 때가 되면 세입자는 자신이 봤다는 이익의 몇 배를 한꺼번에 뜯기게 됩니다.
전세의 숨겨진 구조가 그렇습니다.
 
 
월세가 전세보다 나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매월 뜯기나, 나중에 한꺼번에 뜯기나 매한가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월세와 전세는 당연히 다릅니다.
 
전세금은 이미 마련한 '자산'입니다.
월급 1백만원 받는 월급쟁이가 10년에 걸쳐 모은 1천만원이나, 월급 2백만원 짜리 월급쟁이가 5년에 걸쳐 모은 1천만원이나, 부모님이 해주신 1천만원이나 가치는 똑같습니다.
심지어 고스란히 돌려 받을 돈입니다.
그래서 물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아도 반발력이 적습니다. (=얼마든지 높게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월세는 '생활비'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매달 수입에서 당장 쪼개어 내야 하는 돈입니다.
전세금은 '돌려줄 자산'이기 때문에 5백만원이든 1천만원이든 올릴 수 있지만, 월세는 50만원 받던 걸 80만원으로 올릴 수는 없습니다.
세입자의 수입이 그만큼 오르지 않는 이상, 생활 유지가 당장 불가능해지니까요.
어차피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들 월급 액수는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다른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생활비는 물가나 최저임금과 밀접하게 연동하는 비용입니다.
월세가 높아지면 그만큼 물가에 반영되고, 결국 임금이 올라가게 됩니다.
회사가 아무리 무자비해도, 직원들이 최소한의 생활 유지도 불가능할 정도로 집세가 오른다면 월급을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맨해튼 단칸방 월세가 평균 3백만원이어도 굴러가는 건, 맨해튼 임금 수준이 그 정도 월세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결국 그 피해는 집주인에게도 돌아갑니다.
월세는 전세처럼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올릴 수 없고, 물가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월세는 전세에 비해 세입자에게 덜 불리한 제도입니다.
 
 
 
 
 
 뭐가 있느냐는 
 
 
 
 
세입자는 자기 돈인 전세금을 돌려 받아 대출과 합쳐 집을 사고, 집주인은 전세금을 받아서 대출과 합쳐 집을 산다는 
 
 
 
그럴리가 없습니다.
 
그 방법을 몰라서 
 
매우 정상적인 답변입니다.
그런데, 은행 이자보다 더 벌 방법이 도대체 뭔지는 도통 생각해 보질 않습니다.
 
 
는 점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으면 이자를 물어야 하지만, 전세금을 받으면 원금만 돌려주면 된다.'
이 논리를 집주인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1. 많은 한국인들이 전세금 밖아놓고 살다가 돈 더 모아 보태서 전세금과 합쳐 내 집을 마련하는, 전세금이 내 집 마련의 발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집주인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세입자가 전세금을 빼서 마련하는 '내 집'은, 이미 집주인이 전세금을 받아서 산 집입니다. 시세차익을 고스란히 집주인에게 바치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2.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려 버리는 것으로 세입자가 힘들게 모은 노력의 결실(돈)을 손쉽게 추가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3. 은행의 담보 대출에도 이자가 있는데, 전세금은 이자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다음 세입자에게 받아서 돌려주면 되기 때문에 상환 기일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되돌려 주는 돈이기 때문에 세금도 없습니다. 즉, 전세 제도는 집주인에게 매우 유리한 일종의 사금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상기 1~3번과 같이 복잡한 설명 없이 간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거래 관계는 이익이 완벽하게 대치됩니다. 세입자의 이익은 집주인의 손해고, 집주인의 이익은 세입자의 손해입니다. 전세나 월세로 정할 권리는 온전히 집주인에게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집주인이 전세를 선택하는 이유는 자선사업가이기 때문이 아닐 겁니다.

결론. 나갈 때 전세금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치 공짜로 거주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세입자들은 완벽하게 속고 있는 겁니다. 전세 제도는 가진 자가 만든, 가진 자에게 철저히 유리한 제도입니다. 전세 제도가 사라지면 집주인은 2주택, 3주택 집을 늘리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만큼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을 하기 쉬워집니다. 세입자의 목돈을 받아 굴리는 유리한 입장에서, 적은 돈(월세)을 모아 큰 돈을 만들어야 하는 세입자의 입장과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이 더 유리한 건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