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20분 경, 숙소 2층에서 바라본 엔데 동네 풍경
자와 지역은 밤이 되면 가로등을 대신하고, 치안 목적으로 집앞 처마 밑에 달아 놓은 전등을 켜두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가로등 없기로는 인니 다른 지역과 매한가지인데, 집집마다 불이 켜진 곳이 별로 없다.
아직 6시가 안됐는데, 빵을 가져다 놓았다.
3,4성급 호텔도 보통은 조식 제공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 외에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이 숙소는 시설은 썩 좋진 않지만, 무심한듯 친절한 구석이 있다.
동네 제과점 빵이라 기대를 했으나, 마트에서 파는 기업 대량생산 빵보다 맛이 더 없다... =_=
잼도 불량식품 맛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어, 꾸역꾸역 빵 두 쪽을 먹었다.
새벽의 숙소 앞 풍경
6시 정각에 숙소 앞에 나가 보니, 승합차 한 대가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킨다는 점과 정말로 무료 서비스라는 점에서 놀랐다.
엔데 지역의 고급 축에 속하는 다른 호텔들은 3만에서 5만 루피아 정도의 별도 요금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좀 외진 곳이라 그런 건지, 이 지역 사람들은 하루의 시작이 좀 늦은 편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공항 가는 길에 지난 도심 지역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자와 지역은 새벽 4시 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Azan 소리로 시작해서, 5시 반 쯤이면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집 밖에 보인다.
공항 바깥에서도 비행기 이착륙 광경을 볼 수 있는 구조 역시 다른 시골 공항과 같다.
티케팅 부스가 딱 다섯 곳.
그나마도 1곳만 직원이 있었다.
기내 반입 화물 외 수하물에 요금을 따로 물리는 라이온 에어.
고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내 반입 가방에 최대한 쑤셔 넣고 타려고 하게 될테니, 라이온 에어측도 티케팅 시 가방이 좀 크다 싶으면 무게를 잰다.
내 배낭도 제한 무게에 1kg 초과가 됐는데, 검사하는 직원이 짐 일부는 일행 가방에 옮겨 담고 나머지는 손에 들고 다니라고 코치를 해준다. ㅋㅋㅋㅋ
회사가 지시한 규칙에 따르면서도 고객에게 야박하게 굴어서 받게 될 반발도 피하는 영리한 처신이다.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이 아저씨... 팔에 용문신 문양 토시를 차고 있다. ㅋㅋㅋㅋ
공간이 워낙 작아, 공항 내부로 입장할 때 검색대 통과하고 몇 발짝이면 티케팅 부스고, 다시 몇 발짝이면 탑승 대기실 입구인데 또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짐 검사도 상당히 꼼꼼하게 한다.
엑스레이 통과해서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가방을 까본다.
내 보조 배터리의 용량이 20,000 mAh를 넘는지까지 검사 받았다.
일행 셀카봉은 압수 당했다.
원래 규정이 그렇긴 하지만, 지금껏 여행 다니면서 이런 검사 받은 적도 없고 걸려 본 적 없었다.
국제 공항도 아닌 이런 시골 국내선 공항에 누가 테러를 하겠나.
지금껏 다닌 공항들 모두가 국내선 검색은 대충 했었다.
아마 승객이 별로 없어서 심심해서 그런가 보다.
관료주의 공무원이 한가해서 괜히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보조 배터리 관련 규정이 검색대 옆에 비치되어 있다.
전엔 한 번도 보조 배터리 검색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원래 이런 규정이 있는데 대충 넘어간 건지, 엔데 공항에만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내용은 대강...
1. 이륙 시 휴대 가전과 보조 배터리 연결 금지
2. 반드시 기내에 가지고 탈 것. (수하물로 반입 금지) -> 이 규정은 인천 공하에서도 본 적 있다.
3. 보조 배터리 용량 20,000 mAh 이하는 신고 없이 반입 가능
4. 20,000 ~ 32,000 mAh 는 항공사측에 신고 후 반입 가능
5. 32,000 mAh 이상은 반입 금지
6. 보조 배터리는 2개까지만 반입 가능
7. Wh (와트시) 계산 공식
아마 5V 이상인 방송 장비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법적 기준을 명시하고자 했겠지만, 7번 항목은 좀 웃겼다.
인니인 거의 대부분이 이 공식 봐도 자기 보조 배터리 용량을 mAh 에서 Wh 단위로 환산하는 거 암산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ㅎ
그도 그럴 것이, 인니 정규 산수 과정에서는 구구단을 외우지 않는다. (아니, 구구단이란 게 없다!)
입사 테스트로 내는 두자릿수 곱셈 나눗셈도 틀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기실도 한국의 버스 터미널 수준으로 소박하다.
소박한 공항이다 보니 비행기 기장도...
승무원도 비행기까지 걸어 간다.
심심해서 공항 앞을 잠시 나와 봤다.
엔데는 남북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동서는 해변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지는 완만한 경사의 평지인데, 도시가 형성될 정도 넓이의 평지는 이 일대에 이 곳 밖에 없다.
엔데 공항의 관제탑은 특이하게도 활주로 지역에서 공항 건물을 너머 그 바깥에 있다.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이 우루루 게이트로 몰린다.
엔데 공항 남쪽, 엔데 화산의 작은 봉우리
아침 7시 반인데, 태양빛이 따갑다.
프로펠러 비행기는 처음 타본다.
기내 천정 높이가 낮다.
비행기는 엔데에서 출발하여 라부안 바조를 경유해서 발리로 간다.
라부안 바조에서 엔데까지 육로를 통해 왔는데, 고스란히 반대로 되짚어 가는 셈이다.
플로레스는 대부분 산지에 지형들이 각 지역마다 특이하기 때문에, 항공기에서 내려다 보면서 어디어디인지 금새 알아 볼 수 있었다.
여행했던 곳들이 눈에 보일 때마다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일일이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여타 비행기를 타면서 내려다 보던 경치와는 다르게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 풍경을 감상하려면 비행기 왼편 좌석이 좋다.
바자와 Bajawa 동쪽의 이름 모를 화산 (구글에 이름이 표기되지 않음)
엔데까지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인데 12분 만에 지난다.
저멀리 이네리에 Inerie 화산이 보인다.
오늘은 봉우리에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다.
산 발치를 둘러 이어진 저 길을 오토바이로 지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 하단에 보이는 곳은 바자와 근처 산간 지역 중에서도 꽤 번화한 읍내다.
플로레스는 대부분 산간지역이다 보니 저렇게 평지가 좀 넓게 펼쳐져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에 비례한 규모의 촌락이 있다.
논밭 테두리나 수로, 도로가에 늘어선 나무들이 그물 모양의 선을 이룬다.
멀리서 봐도 이네리에 화산의 완전한 고깔 모양은 눈에 확 뜨인다.
이네리에 산 밑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는 하얀 얼룩이 바자와 Bajawa 시내다.
루똉 Ruteng 에서 바자와로 가던 여정 중 지나쳤던 해변 지역 깜풍 음보롱 Kampung Mborong 도 보인다.
20여 분 만에 루뗑 (화살표시) 근처 상공을 지나친다.
그 밑으로 거미줄 모양의 방사형 논이 군데 군데 있다.
내가 가봤던 곳은 큰 길 옆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 곳이라서 가장 유명한 곳이었고, 그 외에도 일대에 여기저기 꽤 많았다.
직통으로 가면 육로 8시간 거리, 여행 여정으로는 3일이 걸렸던 구간을 불과 30분 만에 지나니 기분이 묘하다.
산으로 사방이 둘러 쌓인 분지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라부안 바조 공항 도착
라부안 바조에서 루뗑까지 4시간 동안 고생고생 갔었는데, 불과 16분 걸렸다.
라부안 바조에서 엔데까지 4일의 여정으로 갔는데 올 적엔 총 38분 걸렸다.
라부안 바조 공항에 도착하여 내릴 승객들은 내리고, 발리까지 갈 승객들은 앉아서 대기하고 있다.
주유하고 있는 중이니 안전벨트를 풀고 앉아 있으랜다.
안전벨트 매라는 방송만 들어봤지, 풀고 있으라는 건 처음이라 신선했다.
뒷자석에 산디아가 우노 Sandiaga Uno 가 앉아 있었다.
산디아가는 지난 4월 대선에 쁘라보워 Pwabowo 의 런닝 메이트로 출마하기 위해 자카르타 부지사직을 그만 둔 사람이다. (결국 조코 위도도 Joko Widodo 에게 패함)
플로레스 지역에 유세를 하러 온 거였다.
저가 항공사 일반석에 앉아 있었는데, 근처에 경호원들이 둘러치고 접근을 막거나 수행원들이 주변을 우루루 떠받들고 다니지 않는,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광경이 놀라웠다.
"설마, 산디아가 맞으세요?"
"네, 맞아요."
"와, 반갑습니다. 전 한국인이예요. 하지만 당신을 알지요."
"오, 한국인이시군요. 인니어 정말 잘하시는데요? 저도 한국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산디아가는 바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라는 한국어를 꽤 자연스럽게 발음했다.
같이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하니 산디아가는 선뜻 그러라고 하면서, 손가락 하트 모양을 그렸다.
산디아가는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특히 가족들이 K-Pop과 K-Culture의 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 거 같았다.
사진을 찍고 나서 산디아가는 비행기를 내렸다.
이후 발리에 있으면서 산디아가의 라부안 바조 지역 유세에 대한 뉴스를 TV로 봤는데, 공약 내용이 거지 같다고 지역 주민들에게 어어엄청 비난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ㅋㅋ
대선 후, 조코위의 당선이 확정되자 쁘라보워는 대선 결과에 불복한다는 발표를 했다.
산디아가는 쁘라보워의 질척거림에 환멸을 느꼈는지, 대선 불복 발표장에 참석은 했지만 굳은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아직 정치판의 더러운 때는 덜 탄듯 해보여 호감이 간다.
산디아가는 젊은 층의 높은 지지를 받았었는데, 대선 이후에도 산디아가의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비난 받는 부분은 왜 하필 쁘라보워의 런닝 메이트를 선택했냐는 정도다.
비행기는 다시 이륙하여 코모도 섬 상공을 지난다.
저 멀리 빠다르 섬 Pulau Padar 도 보인다.
코모도 섬 서쪽 해안
이 큰 섬을 통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개발을 금지하다니, 땅덩어리 넓은 나라나 가능하겠다.
해발 2,850m의 땀보라 화산 Gunung Tambora
롬복 Lombok 과 플로레스 사이, 숨바와 Sumbawa 섬의 중부에 있는 대형 화산이다.
사진 왼편 새 부리 모양으로 톡 튀어나온 곳은 딴중 소라에 Tanjung Sorae 인데, 저 안에 모래사장이 있다면 관광지로 꽤 떳을 거 같아 보이는 지형이다.
아직 딱히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다.
바다 건너 롬복 동부와 마주 보고 있는 숨바와 서부의 딸리왕 Taliwang 지역 해안선
롬복 특산 요리로 알려진 닭요리 아얌 딸리왕 Ayam Taliwang은 사실 이 지역에서 유래됐다.
발리, 롬복을 지나 동쪽 방향으로 순차적으로 여행했다면 이 곳도 들렀을테지만, 이제 아마 딱히 인연이 닿지 않는 한 가볼 일이 없을 거 같다.
롬복 남동부 에까스 Ekas 지역
예전에 여행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https://choon666.tistory.com/618)
롬복 Lombok 남부 꾸따 Kuta 지역
꾸따 : https://choon666.tistory.com/542
스그르 해변 : https://choon666.tistory.com/543
셀롱 블라낙 해변은 그냥 유명해서 표시
롬복 남서부 지역
이미 인프라가 꽤 구축되어 있고, 앞으로 더 유명해질 곳이다.
발리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라, 더 유명해진다면 길리를 뛰어 넘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다음 여행 후보지 중 하나로 꼽고 있는데, 앞으로 인니 외 동남아 국가 여행에 비중을 더 두려 하기 때문에 언제 가게 될지 모르겠다.
===============================================================
플로레스 여행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인니 이곳저곳 여행 다닌지 10년, 소회를 얘기하자면 한 마디로 '몸이 예전 같지 않다'입니다. ㅋㅋ
예전엔 너무 당연히 할 수 있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이제는 힘이 부쳐 고려해야 하고, 또 포기해야 하게 됐네요.
10년이란 시간이면 충분히 그럴만 하겠지요. 가뜩이나 전 따로 체력 관리를 하지도 않으니 더욱 그렇고요.
노화는 자연의 섭리이니 받아 들여야 하겠습니다.
애초에 나이가 든다는 건 싫고 좋음의 문제가 아닙니다만, 굳이 따져봐도 딱히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어지간하면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고, 금새 회복되었던 시절엔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많은 것들을 새삼 발견하고 사유한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보는듯한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체력 여건 상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여전히 아쉽긴 하네요.
힘든 거 불편한 거 피하려면 당연히 그만큼 돈이 더 들어가겠지요.
젊을수록 비용이 가장 적게 들면서도 선택지는 넓어진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여행을 가고 싶으시다면, 현시점에서 가장 젊을 때 가시길 권합니다.
바로 지금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