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가 거의 다 되어 간다.
수카르토 유배지 기념관을 나와 바로 옆 해변까지 걸어간다.
Ende Beach 라는 이름의 이 해변까지는 걸어서 2~3분 정도 걸린다.
입구에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었고 2천 루피아라고 쓰여 있긴 한데, 정작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150여 미터 정도 길이의 해변 끝에는 엔데 항구가 있다.
그다지 볼 건 없었고, 영세 규모의 식당 몇 군데가 있었다.
그 중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바다 건너 보이는 섬 이름도 엔데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조그마한 어촌 마을 두 군데가 있었고 관광지로 개발된 곳은 아직 없어 보인다.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화장실 겸 샤워장
로띠 바까르 Roti Bakar (roti 빵, bakar 굽다) 2만 루피아
구운 토스트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고, 치즈 비스무리한 가루와 초콜릿 시럽을 뿌렸다. (인니는 낙농업이 낙후되어 유제품 가격이 엄청 비싸다.)
불량 식품 맛이었다.
삐상 고렝 Pisang Goreng (pisang 바나나 goreng 튀기다) 1만 루피아
고구마 튀김 비스무리 한 맛
안달고 바삭바삭해서 괜찮았다.
바나나 튀김 찍어 먹으라고 같이 나온 삼발 Sambal (인니의 매운 소스) 맛이 좋았다.
특이하게도 단맛이 전혀 없이 깔끔한 매운 맛이다.
바닷가 지역답게 생선 액젖이 들어 갔는지 감칠맛도 있었다.
나시 고렝 2만8천 루피아
평범했다.
맥주를 주문했더니 10분 정도 기다려 달랜다.
집에서 가져와야 한댄다. ㅋㅋ
5시 반 쯤부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옷차림으로 보아 거의 현지 주민들로 보이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두세 테이블이었다.
외국인은 내가 유일한듯 하다 (하지만 나도 현지인으로 보인다는 게 함정).
사진 속에 보이는 정도에서 사람들은 더 늘지 않았다.
현지 주민이 야외 테이블에 맥주를 시켜 놓고 앉아 있는 광경이 이슬람 지역에 살고 있는 내 눈에는 좀 생경해 보인다.
확실히 내가 기독교 지역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엔데 해변은 서쪽을 향하고 있어, 멋진 해넘이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항구 쪽에 있는 또다른 식당가
여기도 그리 사람이 많진 않았다.
해변 입구에서는 오젝이 보이지 않았다.
해넘이의 여운이 남은 풍경을 즐기며 항구 입구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엔데 유일의 운동장
<세계 테마기행> 촬영팀은 이틀 전인 토요일에 엔데 도착해서 이거 찍고, 다음날 모니로 왔었나 보다.
운동장을 지나쳐 조금 더 가자 큰길이 나왔다.
멈춰 서서 오젝을 찾아 두리번 거리자, 눈치 빠른 아저씨가 바로 다가온다.
오젝을 타고 빠리 꼬로 레스토랑 Pari Koro Restoran 으로 갔다.
해변 식당에서 먹은 걸로는 양이 차지 않아서 2차 저녁을 먹고 싶었다.
오젝 요금은 5천 루피아였다.
해가 지고 나면 요금이 1만 루피아로 오른다는 글을 어느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씌운 모양이다.
구글맵으로 검색해서 찾은 곳인데, 엔데에서 가장 좋은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라 수준이 좀 있어 보일 거라 예상한 곳이다.
예상대로 인테리어부터가 그럴듯 하다.
안에 들어서니 홀 내의 모든 종업원들이 "Selamat Datang(어서오세요)." 하고 일제히 인사하는 것도 신기했다.
외국인이나 돈 좀 있는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발리 스타일의 고급 레스토랑인데, 한국 물가에 비하면 그리 비싸지 않다.
아얌 바까르 라다 히땀 Ayam Bakar Lada Hitam (ayam 닭, bakar 굽다, lada 후추, hitam 검은) 을 시켰는데...
살코기도 많고 실했다.
메뉴판에 맥주가 없어서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외국인에게만 판댄다.
나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약간 놀라는 눈치다. ㅋㅋ
맥주가 병 째 나오지 않고, 큰 사이즈 한 병을 모두 따를 수 있는 피처 잔에 따라서 나왔다.
아마도 주류 파는 게 그리 자유롭진 않은 모양이다.
나중에 한 병 더 주문하니, 살짝 놀라며 괜찮겠냐는 표정을 짓는다. ㅋㅋㅋ
이 레스토랑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거의 오지 않은 모양이다.
바닐라 푸딩도 시켜봤는데, 초콜릿도 그리 달지 않고 깔끔한 단맛이었다.
모기 기피제를 미리 바르고 나왔기 때문에 모기가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바람이 거의 없어서 밤인데도 홀 안이 더워서 좀 지친다.
아마도 한동안 산간 지역을 여행했었기 때문에 더 덥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
8시 반 쯤 되어 오젝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요금으로 5천 루피아를 내미니 기사가 약간 미묘한 기색을 지었지만, 내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잘 가라고 하니 별 말 없이 떠난다.
숙소는 이미 조용했다.
고양이가 왔었는지, 먹고 남은 포장 음식이 담겨 있던 옆방의 쓰레기통이 쓰러져 파헤쳐진 흔적이 있다.
한국이라면 숙소 주인이 쥐약이라도 풀어 놨겠지만, 인니는 그러려니 한다.
숙소 한 켠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니, 어릴적 시골에 살 때 봤던 농약사에서 돌렸던 달력이 생각난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
밤 9시가 좀 넘은 시간이지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